가나 씨는 네팔 여성으로 한국에 온지 6년이 되었다. 그녀는6남매 중 맏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하다 다친 후 일을 못하고, 어머니가 시장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여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카펫 짜는 일을 해 가계에 보탰다. 결혼을 한 후에도 카펫 짜는 일로 시가의 생계를 책임지다가 1997년 12월 15일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비자형태: D3). 원래는 그녀의 남편이 한국에서 일하게 되어 있었다. 남편은 1996년도 6백만 원을 지불하고 산업연수 자격으로 입국했으나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몸이 아파 귀국했다. 연수비용이 이미 지불된 상태라 업체에서는 남편을 대신해 갈 사람이 있으면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제의했고, 남편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으니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녀의 친정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맏딸인 가나 씨가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가나 씨는 일곱 살 된 아들을 두고 남편 대신 한국에 돈을 벌려고 왔다.
가나 씨는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 배치된 연수업체에서 9개월간 일을 했다. 월급은 총 50만 원 정도 받았는데 회사에서 적립금(15만원), 의료보험료(6천원), 연수생 위탁관리비(2만4천원)를 원천 징수하면 실제로 가나 씨가 받는 돈은 3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돈을 모두 집에 보냈지만, 한국에 오느라 꾼 돈도 갚을 수 없었다. 그나마 회사가 잘 운영이 안 되고 급여가 제때 나오지 않아 하는 수 없이 가나 씨는 연수업체에서 이탈해 서울로 왔다. 서울로 올라와서 불법체류자로 어느 봉제공장에서 시다 일을 했다. 처음 받은 급여는 70만원으로 연수생 때보다 두 배가 많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일백만 원 정도 받는다. 그 돈으로 전기와 수도세 등 사용료를 포함해서 월세 20만원을 내고 친구와 자취를 한다, 3~4만 원짜리 전화카드를 사고, 아침과 쉬는 날 식사를 비롯한 식비로 7만 원가량, 용돈으로 10만 원 정도 쓴다. 몇 년 동안 남는 돈은 모두 고향에 다 부쳐서 가족들이 생활하였고, 연수비용으로 꾼 돈도 다 갚았다.
지금 가나 씨는 한국에 사는 것이 매우 힘들다. 한국정부가 고용허가제를 실시하면서 4년 이상 된 사람은 강제로 출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가나 씨는 E9비자(단순취업자격)를 취득하지 못해 불법체류자로서 일자리가 없어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업주도 한국말을 잘하고 성실하고 일도 능숙하게 처리해내는 가나 씨를 계속 쓰고 싶지만,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면 벌금을 내야 하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채용을 기피하고 있다. 일자리가 나올 때도 있는데 그건 새벽 1시나 두시까지 일하는 곳이라 감당하기 어려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가나 씨는 아들이 보고 싶어 집으로 가고 싶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가나 씨가 벌어 보낸 돈은 시집에서 다 쓰고, 모아놓은 것이 없어 돌아가더라도 살 일이 막막하다. 몸이 아파 남편보고 들어가도 되겠냐고 물으면 ‘네가 알아서 해라’라며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가나 씨가 돌아오는 것보다 돈을 벌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일 게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 아들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그녀의 마음은 고향에 가 있다. 한 두 달이라도 돈을 더 벌어 작은 돈이라도 갖고 가고 싶은데, 언제까지 일자리 나오기 기다릴 수 도 없고…. 가나 씨는 한국에서 언어문제로, 인종편견문제로 당한 고통보다 돌아갈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금이 더 고통스럽다.
-사진으로 보는 이주여성 삶이야기 ‘꿈의 나라에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