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좀 시켜주세요”
“언제 끝나나요,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잠도 잘 수가 없어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되요, 머리가 너무 아파요….”
경화 씨는 지난달부터 불법고용단속이 심해지자 일을 못하게 되었다. 이혼재판을 진행 중인 경화 씨는 F1(방문자격)으로 체류 중이다. 경화 씨가 소지한 자격으로는 취업을 할 수가 없다. 취업을 할 수 없으니 생계가 막막하다. 재판 중인 사람은 어떻게 살라고 하냐며 눈시울을 글썽인다. 고국이 이렇게 살기 힘들게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경화 씨는 한국에서 아버님이 일했던 식당주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남편에 대한 첫인상은 점잖아 보였으나 홀몸이라는 것에 측은한 생각이 들게 했다. 초로에 병까지 앓고 있다니 연민이 생겼던 것이다. 그 뒤 남편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생활을 했다. 경화 씨는 남편 몸에 좋다 싶은 약은 다 구해서 정성껏 다려 먹였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지난 후에야 미화 씨는 혼인신고를 한 후 한국으로 올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슈퍼마켓을 할 거라고 했다. 입국 두 달 후 경화 씨는 슈퍼마켓 주인이 되었다. 사업자등록을 경화 씨 이름으로 낸 것이다. 경화 씨는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혼자서 물건을 받고, 정리하고, 배달도 했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1년 뒤에는 월세로 있던 살림집을 전세로 재계약했다. 그렇게 재산은 늘어 가는데 경화 씨는 자신이 주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중국에서 지낸 시간이 있고, 한국에 들어와서도 일년이 넘었건만, 남편은 가족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질 않았다. 하루는 남편을 찾는 전화를 받았다. 남편에게 수화기를 건네주자 남편은 상대방에게 경화 씨를 가정부라고 말했다. 시어머님의 부고를 알리는 전화였다. 경화 씨가 상을 당했으니 집에 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자신을 부인으로 소개하지 않는 남편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그 뒤에도 남편이 자신을 종업원이라고 했다는 얘기가 들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법적으로 혼인한 부부인데 말 못할 사정이 있겠다 싶어 그냥 지나쳤다. 남편은 귀화신청도 해줬다. 가끔 경화 씨에게 손찌검 하는 것도 몸이 아파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러려니 하고 넘기며 지냈다.
그런데 지난 3월, 경화 씨는 치루로 고생했다. 몸에 염증이 있으니 열이 나는 것은 당연한데, 남편은 엄살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통증을 견디다 못해 경화 씨는 동네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냥두면 심각한 상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말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 뻔해 미화 씨는 병원에서 남편에게 직접 전화를 해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병원에서 수술해야 한다고 했는데도 남편은 경화 씨를 집으로 보내라고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병원에서 수술해야 한다는데 와보지는 못할망정 그냥 집으로 보내라는 남편이 야속했다. 미화 씨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병원은 무료로 응급처치를 해 줬다. 집으로 돌아온 경화 씨 보고 남편은 집에서 꼼작하지 말라고 했다. 가게에 얼씬거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움직이기 힘든 경화 씨는 남편과 말도 않고 일주일을 꼼작도 하지 않았다. 몸이 좀 나아지자 산보삼아 가게 근처에 있는 문방구에 놀러갔더니, 가게 여주인은 경화 씨가 도망간 줄 알았다고 했다. 남편이 도망갔다고 했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따졌다. 남편은 짐을 싸라고 했다. 나가더라도 당당하게 이혼하고 나가겠다고 맞섰다. 남편은 경화 씨를 끌어내려고 했다. 둘이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경찰이 왔다. 경화씨는 집을 나왔다. ‘도망녀’라는 딱지를 달고 싶지 않아 이혼절차를 밟기로 맘을 먹었다. 서둘러 이혼소장을 접수했다. 경화 씨가 처음으로 남편에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남편의 도움없이도 국적을 취득할 수 있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경화 씨는 이혼 소송을 통해 남편의 귀책사유로 혼인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 그렇게 되면 남편의 도움 없이도 국적 취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재판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체류연장도 가능하다. 그런데 체류연장을 신청했더니 F1으로 체류자격이 바뀌었다. 이 자격으로는 경화씨가 일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경화 씨 같은 처지의 외국인은 기초생활보호를 받을 수도 없다. 경화 씨는 부모의 조국인 이 땅에서 한국인으로 살길 원한다. 체류는 보장하면서 먹고살 길을 막아 놓놓으니 그것은 경화 씨에겐 조국이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항변하고 있다.
-사진으로 보는 이주여성 삶이야기 ‘꿈의 나라에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