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인터목소리
개발을 위한 이주와 이주의 여성화 그 현실 앞에서
한국염(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이주와 인신매매 경계 사이에서
지난 9월 13일부터 14일까지 제9차 ‘아시아 이주노동자회의(Regional Conference on Migration in Asia’가 서울 감리교여선교회관에서 열렸다. 이 회의는 이주노동자 인권옹호를 위해 활동해온 아시아의 활동가들이 모여서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논의하고 전략적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이 회의에 아시아 19개국에서 참여를 했고, 한국에서는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에 소속한 단체들이 참가했다.
이번 회의의 주제는 “개발을 위한 이주와 이주노동의 여성화”로 그동안 아시아 각국이 추진해온 개발과 이주노동의 문제, 그 과정에서 점차 늘어나는 여성이주노동자의 문제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이 회의에서는 이주노동과 인신매매의 불명확한 경계, 세계화와 개발과 이주의 관계, 인간 안보와 충동하는 국가안보, 이주의 여성화와 이주노동에 있어서 여성문제, 노도의 비공식화와 귀환과 송금, 이주노동자의 건강과 복지, 이주노동자 권리향상을 위한 국제기준과 체계 등이 중요한 논제로 제기되었다., 그리고 2005년 1월 종결 예정인 WTO GAT Mode 4 개발 아젠다 협상의 주요 이슈 중의 하나인 서비스분야 인력이동에 관한 주제발제와 토론이 있었다. 이와 관련한 다섯가지 주제의 워크숍에서는 각국의 이주노동자 상황을 특별히 1) 국가/인간안보, 2) 여성과 이주노동의 여성화, 3) 지속가능한 개발, 송금과 귀환, 4) 노동의 비공식화, 5) 이주노동자 건강과 복지 등의 주제와 관련하여 각국의 상황과 문제들을 살펴보고 전략을 논의하였다. 참석자들은 이 회의를 통해 인권과 안보, 개발과 이주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이 상충하는 국제적 노동이동의 복잡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특별히 “이주의 여성화”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아시아에서의 이주의 여성화의 현황과 경향, 파생되는 문제등이 논의되었다. ‘이주의 여성화’ 현상에서 특히 문제로 떠오른 것이 “여성의 이주와 인신매매의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인신매매성 이주의 실제
각국의 개발 정책과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빚어낸 ’빈곤의 여성화‘로 인해서 아시아에서 “이주의 여성화”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주노동자 중 37%가 여성으로서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지만, 가사노동 이주가 허용된다면, 이주의 여성화는 급물살을 탈 것이 예측되고 있다. 아시아 전역에서는 해외이주자 중 여성이주자들이 69%를 차지하고 있으며,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의 경우 70% 이상이 여성들이라고 한다. 그 여성들은 가사노동이나 공장노동, 성산업에서 일을 하며 때로는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를 한다. 이번 회의를 통해 드러난 것은 여성이주자들의 많은 경우가 이주와 인신매매의 모호한 경계선에 서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경우, 자신들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알선업체를 통해 막대한 브로커 비용을 물고 불법으로 은밀하게 입국이 이루어지고, 불법으로 입국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기 의사에 반한 고용주의 강제와 협박이 있기 마련이다. 연예인 비자로 입국해서 성산업으로 유입되는 경우 이주와 인신매매의 경계선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주를 할 자본이 없기 때문에 몸을 담보로 가족에게 선금을 주거나 타국에서 벌어 갚기로 하고 이주에 필요한 비용을 꾸어서 오는 경우도 있다. 이 계층 여성의 이주는 국제인신매매 조직이나 사설 브로커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들 브로커들의 횡포와 사기가 엄청나다. 그 수법도 다양해서 취직시켜 준다고 여성들을 데려다가 성산업 업체로 넘겨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단속을 피해 국제결혼으로 위장시켜 이주시키기도 한다.
국제결혼 경우도 인신매매성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 타국 남자와 결혼해서 이주하는 경우,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놓고는 집안 식구 생계를 위해 다달이 집에 얼마를 보낸다는 조건하에, 또는 부모가 일시불을 받고 어린 딸을 국제결혼으로 내몰기도 한다.
그 단적인 예가 ‘어린 신부’ 이야기다.. 우리 센터에 어느날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 몽이라는 베트남 아이가 왔다. 알고 보니 18살인데 자고 앳되어서 12살로 보인 것이다. 몽은 35살 먹은 남자와 결혼을 해서 한국에 왔는데, 한 달 만에 이혼을 했다고 한다. 여자가 안 살겠다고 칼로 자해를 하는 바람에 시집 식구들이 겁이 나서 이혼을 해준 것이다. 한국에 오게 된 사연인즉, 옆집에 사는 이모가 어디서 이야기를 듣고 와서 몽의 부모에게 몽을 한국 사람에게 결혼시키자고 제의를 했다. 몽의 부모는 달이 한국에 가면 편히 살 수 있고 또 몫돈도 준다는 바람에 딸을 한국남자와 결혼시키기로 했다. 그때 몽은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도 있었는데. 싫다고 했더니 돈을 이미 받았고 계약을 위반하면 세배로 물어야 되니 안된다고 강제로 밀어붙였다. 하는 수 없이 이모를 따라 호치민 시로 갔더니 어떤 집에 베트남 아가씨들이 여러 명 모여 있었다. 한국 남자들이 들어 와 그 아가씨들을 훑어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점을 찍어 데리고 나갔다. 몽도 그런 식으로 뽑혔고, 그 다음 날 결혼식을 하고 한 달 후 한국에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걸려 있는 “베트남 처녀와 아름다운 인연 맺기,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의 한 실상이다.
몽처럼 어린 여성 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 스스로 결정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기 집안 형편을 알기에 스스로 결정하지만, 그 과정은 몽의 경우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사진을 통해서 선을 보고 남자의 진면목도 모른 채, 가정을 위해 아니면 다른 삶을 개척해 보고자 이주를 택한다. 막상 한국에 와보면 사기 당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래도 잘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무엇보다도 배타적인 한국 사람들 속에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주의 여성화에 대한 성인지적 응답의 요청
물론 모든 이주 여성들이 인신매매의 범주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시아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는 ’이주의 여성화‘ 현상 한 복판에 ’인신매매성 이주‘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주 노동 운동가들은 “이주노동이란 근본적으로 빈곤에서의 탈출과 새로운 삶을 개발하기 위한 이주민의 욕구가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주노동을 규제하면 할수록 국제인신매매가 늘어남으로 이주노동을 합법화하는 것이 국제적 인신매매를 줄일 수 있는 길이며, ’인신매매성 이주‘를 줄이기 위해서 모든 나라가 유엔이 정한 ‘이주민과 그 가족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비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9차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는 이주의 여성화 과정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을 검토하고 대안을 모색하면서 ‘이주의 여성화’에 대한 성인지적 응답이 강화되어야 함을 역설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이주여성의 존엄성과 기본적인 인권을 옹호하는 일과 더불어 공정하고 공평한 임금을 통해 여성의 일에 대한 가치를 부여할 것.
– 교육을 통해 이주여성들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하고, 직업적 성별분업에 따른 고정관념을 타파하며, 노조 조직 등을 통해 노동권 보호를 위한 여성능력을 강화할 것.
– 송출국의 경우 유입국에 보건산업 노동자들의 정당한 임금과 서비스를 요구할 것과, 자국에서 훈련된 고급인력의 이주로 인한 “두뇌 유출” 현상에 대해 해당국에 문제를 제기하고 보상을 요구할 것.
– 여성들에게 충분한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여 정당한 임금과 수입을 통해 해외취업이 강제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노동력 송출국 정부에 대한 활동을 할 것 .
– 결혼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교육캠페인을 실시할 것..
– 이주노동자 가족의 재회 보장을 요구하는 유엔이주노동자협약 비준을 촉구할 것.
– 국제결혼가정 자녀 문제와 관련한 국내 정책과 법제화를 촉구할 것.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에 참가자들은 송출국의 활동가들과 유입국의 활동가들이 서로 연대하여 긴밀한 협조체계를 통해 ‘이주의 여성화’ 과정에서 빚어지고 있는 인신매매성 이주를 막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였다. 한국도 조만간 ‘이주의 여성화’ 반열에 들어설 것이고, 이미 인신매매성 이주의 취약성이 노출되고 있다. 여성들에게 이주란 빈곤에서의 탈출뿐만 아니라 새로운 삶을 창출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살려서 이주 여성들이 사람다운 삶을 누리는 좋은 길이 되도록 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신매매성 이주를 벗어나 자유로운 이주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국의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가 제시한 과제들을 연구하고 해결해 나가는 노력을 펼친다면, 이 세상은 ‘작은 세상’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살만한 세상이 될터인데!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함께 느끼는 희망과 공포/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알았네/ 작고 작은 이 세상
산이 높고 험해도/ 바다 넓고 깊어도/ 우리 사는 이 세상/ 이주 작고 작은 곳
이주여성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겪는 아픔, 슬픔, 공포, 불안, 그리고 아주 작은 희망의 징조에도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세상이 이주여성들에게 가까운 이웃사촌들이 사는 작은 세상으로 와 닿는 하는 꿈을 꾸어본다.
* wmigrant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03-17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