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중국여성(M)을 상담하였다. M은 경기도에 거주하는데, 집을 나와서 지금 경찰서에 있는데 갈 곳이 없다며 급하게 쉼터에 입소를 요청하였다. 늦은 밤이었고 경찰에서도 어찌하지를 못하는 상황이라 일단 쉼터에 입소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다음날 상담을 하는 중에 문제가 생겼다. 병원에 데려가야겠다는 판단이 들어 병원에 가자고 이야기를 하고 일어서는 순간 M이 상담실 밖으로 뛰쳐나가 4층 베란다 밖 난간으로 몸을 던지려고 한 것이다. 이미 몸은 베란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와, 같이 있던 쉼터 선생님이 4층 베란다에 매달린 여성을 겨우 부여잡고 있기를 몇 분… 소리를 질러 다른 층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여성을 끌어올리고 나니 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리가 하얘졌다.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이 이렇게도 순식간일 수 있구나 라는 두려움과 놀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한 사람의 목숨을 좌우할 수도 있는 일이구나 라는 무거움, 자신을 가눌 수 없는 그 여성에 대한 안타까움…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겨우 M을 안정시키고 119를 불렀고 119와 경찰에서 출동을 하기는 했으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병원에 강제로 입원을 시킬 수도 없고 마땅히 보호를 할 수 있는 곳도 없다는 것이다. 119도 돌아가고 경찰도 돌아가고..
막막한 심정이었다.
]결국 센터에서 M을 차에 태우고 겨우 모 병원으로 데려가 정신과 상담을 받았더니 긴급히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지만 보호자도 없을뿐더러 M 본인이 절대 입원에 동의를 하지 않으니 입원을 시킬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현행법상 정신병원에 외국인을 입원시킬 경우 본인의 동의가 없이는 어떤 경우에도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설득을 해도 본인이 절대로 입원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병원에서 데리고 나오는 수 밖에 없었다. 무조건 수원역에 데려다 달라고 떼를 쓸 뿐 어디로 누구에게 가겠다고는 도통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남편은 하루종일 연락이 되지를 않고 정말로 암담한 기분이었다. 병원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고 나오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근처 전철역에 내려주면 찾아가겠다고 해서 내려주고 다시 돌아오는데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돈 한 푼 없는데 그 정신으로 어디를 가겠나 싶어 다시 역 주변으로 찾으러 갔더니 역시나 M은 아무데도 가지를 못하고 역 주변을 헤메고 있다. 이미 어두워진 뒤라 내가 수원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더니 이번엔 가지 않겠다고 해서 한참 실갱이를 벌였다. 결국 겨우 설득을 해서 늦은 밤, 우리 쉼터에 M을 데려오게 되었다. 쉼터에 들어오자마자 쉼터 선생님에게 무릎을 꿇고는 잘못했다고 손을 모아 빈다. 그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M이 잠드는 걸 보고 쉼터 선생님들은 그 옆에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다음날, 어디에서도 M을 보호할 곳이 없었기에 중국 대사관으로 데려갔다. 자기들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너무나 곤란해하는 중국 대사관측을 겨우겨우 설득하여 M을 대사관에 인계하고 올 수 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해결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거기까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마도 대사관 측에서도 어떻게 하지 못하고 남편의 집으로 데려다줬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남편집에 들어가기가 죽기보다 싫다고 했던 M의 말과 또 이 정도 상황이면 M의 남편 또한 크게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 짐작되기 때문에, M은 집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비슷한 상황에 다시 놓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즈음 심심찮게 깊은 우울증 또는 정신분열과 같은 정신질환 때문에 고생하는 이주여성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또 그런 아내와는 살 수 없다며 아내를 유기하는 경우도 보게 되고 그보다 좀 나은 경우에는 시설에서 보호를 해 달라고 하는 한국 가족들의 요청을 듣게 된다. 난감하다. 도울 수 있는 방법도 여력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며 여성의 한국 가족들에게만 책임을 맡기기엔 그들의 삶 또한 편치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과제인데, 우리 사회가 이렇게 힘겨운 여성까지 끌어안고자 하는 넉넉한 품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할 때 고개가 쉽게 끄덕여지지 않는다. 한국인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에 대해서는 점점 데 체류의 폭을 제한하는, 아내와 엄마가 아닌 한에서는 그들의 한국에서의 삶을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요즈음의 팍팍한 분위기는 오히려 더욱 고개를 젓게 만든다.
물론 우리 사회는 현재 다문화 가정을 위한 많은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와중에 손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런데 혹여라도 그 사각지대에 속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의 벼랑과도 같은 끝자락에 놓여 있는 여성들은 엄마가 아니라서, 아내 역할을 할 수 없어서, 또는 혼자서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없으므로 우리가 돕지 못하겠다고 계속 방치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의 정책이 또는 내가 하고 있는 활동조차도 외연을 확장하는데에 치중되어 가면서 한 개인, 한 생명의 아픔과 어려움에 대해서는 눈감아 버리고 도망치고 싶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반성이 필요할게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깊은 관심과 애정 없이 만들어지는 정책은 어쩌면 만드는 이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베란다에 매달렸던 그 투박하고 갈라져 보였던 M의 손이 오랫동안 기억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