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희망과 절망의 뒤안길에서
한국염
국제결혼이 과연 대안인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여성들의 이주가 늘고 있다. 전 세계에서 1억 이상의 인구가 이동하는데, 그중 65%에서 75%가 경제적인 이유로 이동을 한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하에서 부자 나라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나라는 더욱 가난해지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빈곤의 여성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빈곤의 여성화 영향으로 “이주의 여성화” 현상이 야기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이미 이주의 70% 이상을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여성들은 노동자로, 국제결혼으로, 성산업 서비스 영역으로 해외 이주를 한다. 여성들이 이주를 하는 세 영역 속에서 여성노동자보다는 국제결혼이, 국제결혼보다는 성산업 서비스 여성의 인권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의 경우 1990년부터 2005년 사이에 한국남성과 결혼한 외국 여성은 159,942명에 달한다. 이들 중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여성들이 약 8만 명가량(국적취득자 포함) 된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2005년 한 해 우리나라 국제결혼 건수는 43,121건으로 전체 결혼의 13.6%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국민결혼 8쌍 중의 1건이 국제결혼임을 의미한다..
왜 이렇게 한국에서 국제결혼이 증가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남아 선호 관습이 빚어낸 자업자득의 결과다. 현재 한국의 남성과 여성 인구 성비는 100:115로 남성 7명 중의 1명은 한국 여성과 결혼할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있다. 자연히 한국 여성과 결혼할 수 없는 사회 계층의 남성 집단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한국 남성과 아시아 여성의 결혼중개업에 의한 결혼이 대안처럼 되어 버렸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아예 장가 못 가는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까지 도입하여 국제결혼을 장려하고 있다.
이런 국내 사정과 아울러 국제결혼이 개발도상국 여성들에게 자국과 가정의 빈곤을 탈출하기 위한 대안이 되고 있다. 그런데 국제결혼을 택해 한국에 오는 여성들이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한국에 오는 것은 아니다. 빈곤이 기본 이유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새로운 삶을 향한 꿈과 도전이 깔려 있다. 따라서 이 여성들이 자기 삶의 개척자로 자리 매김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국제결혼해서 한국에 오는 여성들에 대한 무시가 사라지고 이들을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될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대다수의 한국인 남편들과 국민들이 이 여성들을 단지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돈에 팔려 온 여성이라든지, 잘 해야 효녀 심청이 정도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한다.
한국, 더 이상 꿈의 나라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삶을 개척할 의지를 갖고 “코리안 드림”의 꿈을 안고 국제 결혼해 한국에 온 여성들은 문제에 부닥뜨리게 된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배우자 여성은 함부로 해도 된다는 사고가 배인 이들이 가정폭력을 휘두른다. 여기에 평균 연령차가 10살이고 많게는 30살 이상의 차이도 나고 보니 의처증이 생기고, 언제 도망갈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으로 아내를 대하다 보니 쉽사리 폭력이 이어진다. 최근에는 부쩍 아내를 버리는 남편들이 늘었다. 현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에서 돌아와서는 신부를 초청하지 않는다. 이럴 경우 신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에 되어 버린다. 설사 신부를 초청한다 할지라도 일 년도 못 되어 이혼을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 말이 안 통해서 못살겠다니 그럼 이런 것도 각오 안 하고 국제결혼을 택했단 말인가? 그냥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내쫓기는 국제결혼 신부들이 늘고 있다. 어떤 경우는 생활비도 안 주고 때로는 자기는 무위도식하면서 부인을 식당이나 공장에 취직시켜 그 월급을 통째로 가로채는 경우도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일 년에 한 번씩 체류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데 돈을 안 주면 비자를 연장해 주지 않겠다거나 국적 신청을 안 해 주겠다며 협박을 하는 경우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이혼하려고 할 경우 이건 가정폭력 범주에 들지 않아 헤어질 수도 없다. 그래서 이렇게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경우, 외국인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서 가정폭력 범주에 넣어 처리해 줄 것을 법무부에 제안 중이다. 현재 국제결혼한 가정은 명확하게 혼인 파탄 귀책사유가 한국인에게 있다는 것이 입증되어야만 이혼한 여성이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데 위의 경우는 귀책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자냐? 도우미냐?
센터에 상담하러 오는 동남아시아 여성을 만나면서 왜 한국 남성들이 국제결혼을 하려고 하는지 그 진의가 의심스러운 때가 많다. 물론 살다 보면 성격이 안 맞아 이혼할 수도 있고 싸울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 여성이 아시아 노동자들과 국제 결혼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 남성의 국제결혼 면모를 들여다보면 일생을 동고동락할 배우자가 필요하기보다는 살림해 주고, 자기 뒷바라지하고, 성 문제를 해결해 줄 도우미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이런 도우미를 돈 주고 사려면 엄청나게 많이 드니까 개발도상국 여성들을 데려다 아내라는 이름으로 혹사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든다. 개중에는 거꾸로 개발도상국의 여성들이 한국에 오기 위해 위장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어 한국 남성이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일부고 여성이 피해를 입는 게 대부분이다. 제 나라 남성의 편의를 위해서 남의 나라 여성을 데려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당국자의 말대로 아무리 “사적인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국가가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동화냐, 통합이냐?
국제결혼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국제결혼을 “필요악”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 여성과 결혼 못하는 계층이 생겨났고, 그 계층의 결혼 문제를 위해서는 국제결혼을 감수한다. 어차피 저출산과 고령화 시대에 국제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국민 인구를 늘리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겠다. 국제결혼 가정 사이에서 태어나는 2세의 문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프랑스와 호주의 인종 폭동 사례를 보니 만만히 대처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마침 하인즈 워드 붐도 있었고 우리도 혼혈인 정책을 잘 세워 보자. 어차피 외국인 1%의 다인종 시대에 접어들었으니 다문화사회를 맞이할 준비를 해 볼까나? 기왕 할 바에야 폼 나게 아시아에서 가장 선진적인 정책을 세우자…”이런 게 정부의 생각인 것 같다. 그래서 국제결혼이 진행된지 15년 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없고 이주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일은 오로지 민간단체가 하도록 내버려두었다가 겨우 2년 전에 시동을 하고 작년에야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쏟아지는 정책을 소화하기조차 힘든 지경이다. 청사진과 로드맵을 만들어 몇 개년 계획으로 추진할 일을 마치 일, 이 년 있으면 국제결혼이 없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단기 정책으로 매진한다. 국제결혼 문제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 정립되지도 않은 채, 다문화주의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이루어내지 못한 채 “다문화가족 지원”이라는 이름하에 각가지 정책이 남발되고 있다. “적응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비교적 양성평등문화를 갖고 있는 여성들을 한국의 가부장적 가족문화에 편입시키느라 애를 쓴다. 통합시킨다고 동화정책을 쓰는데 한국인과 결혼했다고 한국인과 동화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화하는 것과 통합하는 것은 다르다. 해외에 나가 살고 있는 교포들은 “재외동포”라는 호칭을 써 가며 한국인으로 남아 주기 바라면서 유독 한국 남성과 결혼한 타국 여성들은 한국인으로 동화해야 하는가?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인데 왜 아시아 여성만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알아야 하는가? 남편들도 자기 배우자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가? 그러나 눈 씻고 보아도 이런 정책은 없다. 정부가 아무리 내년도 교과서부터 단일민족이나 순혈주의에 대한 교육을 수정한다 하더라도 국민 기본 인식이 타인, 타민족, 타인종을 존중하고 국제결혼도 “다양성 속의 일치”라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책이란 그냥 정책일 뿐이다.
9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제2기의 국제결혼 문제를 보면서 고민을 하게 된다. 국제결혼이란 당사자에게는 무엇이며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희망인가 절망인가? 정말로 지구화 시대 결혼문화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국제결혼해서 서로를 존중해 가며 잘 살아가는 국제결혼 가족을 보면 희망이요 대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문제에 부딪혀 찾아오는 여성들을 만나다 보면 꿈으로 시작했다가 절망으로 끝나는 결혼 시나리오를 보는 것 같다. 기왕 지사, 이제는 멈출 수 없는 한국사회현상이 된 국제결혼이 그 어느 한쪽에 고통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듬어 안고 서로를 격려하는, 그야말로 배필이 되어 살 수는 없는 걸까? 그래서 코리안 드림을 안고 온 여성들이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노래를 부르게 할 수는 없는 걸까? 또 이들과 결혼한 한국남성에게는 행복의 기회가 될 수는 없는 걸까? 국제결혼해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여성과 남성이 서로 윈-윈 하는 길이 무엇인가 고민이 깊어진다.
***이 글은 2006년 9월호 우리 교육 세상보기 난에 게제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