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절박한 오늘.
권미주(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담팀장)
오늘 우리 쉼터에 거주하고 있는 여성 두 명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찾아왔다. 오전에 센터에서 있는 한국어 수업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평소보다 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어렵게 ‘선생님’ 하며 나를 불렀다. 한 명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무슨 일이냐고 상담을 시작했더니 그녀들이 하는 말이 소문을 들었는데 이제 한국의 법이 바뀌어서 자기들은 이혼하기만 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데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금요일 밤에 들었는데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잤다는 것이다.
이 세 명의 여성 중 한 명은 결혼한지 3개월만에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집을 나온 19살 캄보디아 여성이다. 그녀의 남편은 2년전에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여 5개월만에 이혼하였었다. 짧은 결혼생활 3개월동안 하루종일 시누의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지내면서 일을 잘 못한다고 시누로부터 구박받고, 밤 늦게 집에 들어가면 남편은 부부관계를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하고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우리 쉼터에 들어오던 날도 전날 밤에는 남편으로부터 맞았고, 당일에는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깨뜨렸는데 시누가 때렸고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병원에도 가지 못하게 했고 전화도 걸지 못하게 해서 거의 도망치다시피 나왔다. 우리 나이로 겨우 19살인 이 친구는 쉼터에 들어온 이후 웃음도 많아지고 한국어도 무척 열심히 배워서 지금은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이다.
한 명은 올 해 여름 한국으로 시집을 온 일주일만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신분증도 만들지 못했고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었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장례식을 지켜보고 장례가 끝난 후 시어머니와 시동생과 함께 살았다. 시어머니는 여성 앞으로 나온 보험금을 하나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으로부터 모든 보험금을 시어머니에게 양도하겠다는 각서를 받았다. 그리고는 이 여성을 잘 돌봐주지 않았다. 집에 없는 사람 취급하며 무시하였고 때로는 구박하였고 때로는 나가라고 소리 지르며 불같이 화를 냈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 수 없고 갈 곳도 없던 이 여성은 어쨌든 시어머니가 무서워 집을 나왔고 우리 쉼터에 머물게 되었다.
이 여성들은 모두 현재 센터의 지원으로 이혼 또는 다른 법적 절차를 거치고 있는데 이제 한국의 법이 바뀌었으니 자기네들은 어떻게 하냐며 불안에 떠는 목소리로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마도 요즈음 들어 법에서 규정한 조건을 갖추어 이혼 후 체류연장이나 국적신청을 하여도 심사 과정에서 취하되거나 거절되는 사례들이 점점 늘다 보니 여성들 사이에서 그런 소문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 같았다. 재판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약속할 수 없지만 한국의 법이 바뀐 것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꼭 원하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성들을 안심시켜주었다. 고맙습니다라고 연신 인사를 한다.
그래도 캄보디아 여성의 눈에 눈물이 계속 고여 있다. 무슨 일이 있냐고 재차 물으니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고 한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돌봐 줄 사람도 없고 돈도 없고 해서 너무 걱정이 되고 속이 상하다고. 본인이 일을 해서 돈을 보내드리고 싶은데 자기가 당분간 한국어 배우는 것을 멈추고(쉼터에 있는 여성들은 우리 센터에서 하는 한국어 교실에 일주일에 2번씩 참여를 하여야 한다) 식당에 일을 하러 다니면 안되겠냐고, 선생님이 허락해주면 고맙겠다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이 여성은 한국어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한국어 실력이 눈에 띌 만큼 부쩍부쩍 늘었던 친구였다. 그런데 이제 자기는 아버지 수술을 해 드려야 하니 한국어는 좀 있다 배우고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대부분 식당 설거지나 청소인데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설거지를 하면 일당 55,000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 식당의 일자리를 구했으니 한국어 교실에 그만 나오고 일을 가면 좋겠다고 한다.
쉼터를 운영하다 보면 관계부처 공무원들이나 정부의 지시 및 요구와는 다른 현실들이 수없이 펼쳐진다. 쉼터에 들어온 여성들 대부분은 일반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여성들보다 더욱 간절히 일을 하기를 원한다. 공무원, 또는 외부에서 보면 숙식이 해결되고 있는데 왜 돈이 필요하냐며,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폭력피해자니 심리치료를 해서 빨리 한국사회에 적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니 직장에 다니는 것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틀리지는 않다. 아니, 틀리지 않고 논리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일이 논리적 옳음, 합리적인 계획에만 따라 움직여진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그렇지 않은 것이 또 사람 사는 일이다. 당장 고향에서 아버지가 수술할 돈이 없는데, 오빠는 이번 필리핀의 호우로 재해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식당일 몇 달을 하면 그 가족들을 돌볼 수 있는데 그걸 그만두고 어찌될지 모르는 나의 미래를 위해서 한국어를 더 많이 공부하거나 쉼터에서 진행하는 여러 가지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사치라고 그녀들은 말한다.
그런 그녀들에게 작게는 쉼터가 크게는 사회가 해 줄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고 어떠해야 하는지는 늘 풀 수 없는 숙제처럼 남아있다. 한국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녀들이 이 쉼터를 떠나 자립을 하려면 한국어도 익혀야 하고 한국문화에도 더 익숙해져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녀들에게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문화에 익숙해지면 나중에 일자리를 얻어서 돈을 벌고 자립할 수 있을거라고, 지금은 심리적 안정을 찾는게 중요하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사실 그녀들은 1년 뒤, 5년 뒤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고 그것을 준비할 만한 여유를 가질 수가 없는 이들이다. 한국에서 남편과 잘 살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 바람이 이뤄지지 않은 채 고향의 도움을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뭔가 보탬을 주기 위해 오늘도 하루종일 고된 설거지를 한 노동의 댓가로 받는 55,000원에 희망을 걸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있다. 또 쉼터 퇴소 후에 작은 방이라도 한 칸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 만에 하나 한국에 못살게 될 때를 대비해서라도 이들에게 하루 노동은 절실하다.
사람이 힘겨운 오늘을 버텨내고 내일을 기다릴 수 있게 하는 힘은 희망과 꿈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오늘 내가 하는 그녀들에게 들려주는 말이, 우리 쉼터가 그녀들에게 대안이라고 이야기하는 희망은 그녀들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족하기 위한 어떤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너무나 절박한 그녀들의 처지에서 우린 한 발짝 떨어져 ‘….지금 이렇게 해야지 당신이 앞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그녀들의 오늘 당장 절실한 필요와 미래를 계획하고 꿈꿀 수 있는 희망을 함께 이야기하고 채워갈 수 있을까? 그녀들이 처한 오늘의 현실과 ‘그녀들의 미래’ 라는 말로 우리가 내놓는 대안 사이의 간극은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