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무가 되어주자 – K의 이야기
권미주(상담팀장)
얼마 전 우리 쉼터에 한 명의 여성을 입소시킬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왔었다. 쉼터까지 들어오게 된 여성치고 안타깝지 않은 여성은 없지만 이 여성의 경우는 그 처한 상황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 K라는 여성은 이제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인데, 중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와서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친척집에 머물던 중에 친족 성폭행을 당했다. 몇 달을 참고 지내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무작정 거리로 뛰쳐나왔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던 중 또 알지 못하는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였다. 이후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을때는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아이를 임신한데다 결핵을 앓고 있었고 정신분열증상까지 보이고 있었다. 결국 아이는 중절수술을 시키고 K는 국립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6개월 정도 입원 치료를 받고 난 후 K를 퇴원시키려 하였지만 K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남편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고 중국에도 한국에도 이 여성이 몸을 의탁할 만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여러 쉼터에 문의하였지만 한국국적도 아니고 게다가 정신병원에서 갓 퇴원한 여성을 선뜻 받아주겠다고 하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리 센터와 연락이 닿았고 우리 쉼터에서 K를 돌봐주기로 하였다. 며칠 생활하는 동안 K는 계속 불안정해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지금 한강에 이 여성이 있으니 데려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른 새벽에 알려주는 장소로 가보니 K는 한강 물에 빠졌다가 고수부지 근처 어느 컨테이너 박스에서 옷을 말리고 있었다. 너무나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여 사연을 물으니 전에 남편 집이 이 근처였는데 무작정 이 곳에 와서 남편을 찾아보려 하였다고 한다. 왜 한강물에 빠졌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끝내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계속 무섭다, 살고 싶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좀 안심시키고 잘 설득한 후 다시 쉼터로 데려와서 약도 먹게 하고 계속 심리치료도 받게 하면서 안정을 취하게 하니 이제는 조금 안정된 모습으로 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K의 눈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내가 쉼터에 갔다가 돌아나오면 빤히 서서 엄마 떨어지는 아이처럼 눈을 크게 뜨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 있는다. 사실 본인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겠는가..
한국에도 중국에도 끈 떨어진 연처럼 일가붙이 한 명 없이 막막한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처지. 어떻게 이렇게 고단한 삶의 끝자락까지 밀려왔는지를 생각하면 답답함이 가슴을 메운다. 이러한 처지의 여성 한 명 보듬어 줄 공간이 없는, 여유가 없는 이 서울이라는 도시가 오늘따라 더욱 삭막하게 느껴진다. 사회에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에 대해 모두 함께 나눠져야 할 책임이 있다. 그 구성원들 중에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잘난 사람들도 있지만 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나갈 수 있는 이들도 있다. 바로 K와 같은 여성들이다.
책임을 나누는 시작의 자리는 “이렇게 이렇게 해 주십시오”라는 요구에 대한 응답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함께 어떻게 책임을 감당할 것인가에 대해 머리 맞대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의 시작이고, 사람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책임에 너무나 둔감한 채 살고 있지 않은가 자문하게 된다. 경제성장률 몇 퍼센트 달성을 목표로만 삼아서 달려가는 사회가 아니라 K와 함께 기꺼이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사회, 이 여성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나누어주는 책임을 감당하는 사회, 이제 K가 삶의 끝자락에서 되돌아서 자기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얼마간 함께 걸어가주는 그런 사회에 살고 싶다. 그 속에서 이주여성들과 함께 기꺼운 마음으로 길동무가 되는 이들이 늘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