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경찰서에서 베트남 여성 한 명이(P) 쉼터로 연계되어 입소하였다.
눈은 겁먹은듯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키도 작고 마른 체형이라 아주 어려보였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였다면서 우리 센터까지 동행한 사람이 사 준 길거리에서 파는 옥수수 한개를 검은 봉지에 담아서 들고 들어왔다. 이제 겨우 한국에 온지 2달이 되었다며 고맙습니다 라는 말만 겨우 할 줄 아는 여성이었다.
P의 나이는 29세이고 남편의 나이는 56세쯤 되었다. 남편은 세 번째 결혼이고 20대 중반을 넘어선 아들이 있는 중년이었다. P는 베트남에서 어릴때 아버지를 잃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재혼을 했는데 새 아버지가 자기를 너무나 구박하고 못 살게 굴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도저히 같이 살 수가 없어서 집을 나와 친척집을 전전하며 생활을 했고 그러던 차에 국제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지금의 남편을 보니 나이도 많고 사람도 너그러워 보이고 또 이미 결혼을 해 봤던 사람이라 따뜻하게 잘 대해 줄거 같아서 나이가 좀 많았지만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한국에 가면 어릴때 받지 못했던 따뜻한 가정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누구도 반겨주지 않을 베트남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녀를 기다린 생활은 쉽지 않았다. 50을 넘어서는 남편과 70을 넘어선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생활이 힘겨웠다. 시어머니는 P에게 엄마처럼 친절하고 따뜻하게 잘 대해주셨다. 하지만 문제는 남편이었다. 팔에 약간의 장애가 있는 남편은 일하러 나가는 날보다 집에 하루 종일 있는 날이 많았다. 그럴때면 남편은 P에게 부부관계를 요구하였고 이를 거절하면 화를 내거나 술을 마시고 새벽녘쯤에 들어와서는 잠을 재우지 않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괴롭히곤 하였다. 부부관계에 응하여야 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 남편은 P의 옷을 벗기거나 매우 거칠게 대하며 화를 내는 등 심한 모욕감을 주었다.
집에서 나오던 날도 전날 밤, 몸이 불편했던 P씨가 부부관계를 요구하는 남편에게 몸이 힘들다고 했더니 남편이 화를 내며 나갔고 술을 마시고는 새벽녘에 들어와서는 또 잠을 재우지 않고 괴롭혔다. 그렇게 새벽을 보내고 아침이 되어 P씨는 집에서 나갔고 이를 본 남편이 쫓아오며 뭔가를 P씨의 몸에 뿌렸다고 한다. P씨는 그것이 가스나 휘발유였고 남편이 불을 붙이려 했었다고 이야기한다. 남편은 절대로 아니라며 그냥 화가 나고 말이 안 통하고 해서 집에 들어오라고 물을 뿌렸다고 했다. 몸이 젖으면 집에 들어올 거 같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P씨는 자기가 물과 기름 냄새는 분명히 구분할 줄 안다며 분명히 기름이었고 불을 붙이려 했다며 서럽게 울었다.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어쨌든 P씨가 느끼는 감정은 이해할 만하다. 남편과 함께 상담을 하는 자리에서 남편이 P의 손을 잡으려 하자 P는 화들짝 놀래며 마치 몸에 닿아서는 안 되는 무엇이 몸에 닿은것처럼 얼굴이 상기된채 몸을 피했다.
상담을 진행하는 두 시간 내내 P는 다시는 남편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남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무섭고 싫다며 절대로 남편과 같이 살지 않겠다며,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내 손을 꼭 붙잡았다. 대부분의 남편들이 그러하듯 P씨의 남편도 자기는 그저 잘해주려고 했고, P가 말하고 있는 것의 상당부부분은 과장되어 있고 자기는 그렇게 한 적이 없지만 어쨌든 P가 힘들어한다면 자기가 고쳐보려고 노력하겠다고 꼭 좀 집에 들어올 수 있게 잘 설득해달라며 얼굴이 상기된채 눈을 붉혔다. 그 옆에 앉아 계시던 70이 넘은 노모도 울먹이며 “내가 너 예뻐한다. 집에 들어와라. 우리 같이 살자” 며 연신 P의 손을 잡고 등을 다독였다. 일단 세 사람 모두에게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고 설명하고 P는 쉼터에 머무르게 하고 가족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상담을 마치고 나니 답답한 마음에,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냥 P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한동안 앉아있었다. 작은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보면서. 남편에게로도 고향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 여성의 앞날은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걸까? P에게는 남편이나 고향의 가족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할 여지는 없는걸까? 어쩌면 P는 본국에서 버림받은 여성이다. 그리고 이제 또 한국사회 역시 그녀를 버리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이 작은 여성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넉넉한 품이 없음에 슬퍼진다.
자기는 잘 살아보고 싶었고 잘 해 주고 싶었는데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며,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여성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좀 알려달라며 눈물 짓는 50이 넘은 남편과 그런 아들을 마치 아이처럼 바라보는 70 넘은 시모의 눈물과 한숨은 누가 위로해주고 닦아줄 수 있는 걸까? 역시 우리 사회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픈 배려도 없다. 온전히 가해자이거나 온전히 피해자만 존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가해자 아니면 피해자로 우리가 보기에 덜 복잡한 방식으로 이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있으므로..
사람은 누구든 행복하길 원한다. P도 남편도 결혼을 통해 행복해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답을 찾는 법을 잘 모른 채 갈팡질팡 하고 나의 어려움과 위기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면 상대방을 배려할 여유를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관계는 맺어지기도 전에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 또 연로한 시어머니에게까지 깊은 연민이 느껴진다. 지금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관계맺음을 향한 마음을 열도록 (그것이 남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래서 세 사람 모두 좀더 편안해지고 그들이 꿈꾸던 행복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것일게다. 그런데 그것이 참 어렵다. 오늘 상담실을 열며 무엇으로 그들을 지지해 줄 수 있을것인가를 고민하며 누군가 나에게 그 답을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