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함이 아름답다.
한국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크레파스에 살색이라는 것이 있었다. 분홍색에 흰색과 노랑을 가미하여 만든 색인데 백인들의 핑크빛 도는 하얀 피부를 원형으로 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색이 인간의 피부를 뜻하는 원형이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살색이 사람들에게 피부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소위 “살색”이라고 이름 붙여진 살색 크레파스로 사람의 얼굴을 그리고 칠하면서 어려서부터 자기도 모르는 새 ‘살색’이라는 색깔을 갖고 있는 피부만이 아름다운 피부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자라게 된다. 그 결과 살색이나 살색에 가까운 하얀 피부가 아닌 까맣거나 다갈색이나 노란 색의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게 되며 어딘가 열등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고 그 고정관념은 이런 피부를 가진 사람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차별을 받았다. 그래서 이를 직시한 한 이주노동자 인권단체 대표가 어느 특정한 피부를 “살색”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였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를 일리가 있다고 받아들여 시정초치를 명하였다. 지금은 크레파스에서 살색이라는 색깔이 없어지고 살색이라고 부르던 빛깔은 살구색으로 부른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일 년에 1억 이상의 인구가 다른 나라로 이동을 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어느덧 외국인 1%시대가 되었다. 이주노동자로, 유학생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이 땅에 거주하고 있는 가운데 무려 21개 이상 나라의 여성들이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매우 편견이 심하다. 단일민족이라는, 민족주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매우 이중적인 태도다. 다같은 외국인이라도 일세계에서 온 사람과 제삼세계에서 온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백인을 대하는 태도와 흑인이나 아시아인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백인에게는 말 한마디라도 더 붙여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반면, 제삼세계에서 온 흑인이나 황인종에게는 배타적이다. .
어느날 국제 결혼하여 한국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이 쓰디쓰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기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아이가 학교에서 잘 적응을 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가 학교에 갔다 온 다음부터 아이가 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이를 자기들과 같은 한국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동남아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차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 아이가 학교 가기가 싫다고 한단다. 그 반 아이들의 인종차별은 어디서 시작이 되었을까? 어른들의 인종편견에 아이들이 물든 것이다. 지구화 시대, 이미 다인종, 다문화시대에 접어든 한국사회에서 인종차별은 반드시 없어져야 할 고질병이다. 모든 사람이 하늘로부터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났음을 믿는 것, 이것이 지구촌 시대에 걸맞는 삶의 가치가 아닐까?
봄기운이 누리를 적시고 있다. 머지않아 봄꽃들이 필 것이다. 노란 개나리, 분홍빛 진달래, 하얀 목련, 그 사이에 돋아나는 신록들…자연의 다양함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온 천지가 모두 빨간 장미뿐이라면 얼마나 지겹고 식상하겠는가? 다양한 여러 빛깔이 어우러지는 게 자연의 질서고, 또 그 어울림이 아름답다고 하면서 왜 인간 세상은 한 가지 색깔만을 고집하고 다른 것에는 배타적인가? 다양한 빛깔들이 어우러지는 봄 빛 속에서 인간 세계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