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혼적 국제결혼, 없애야 한다.
한국염
지난주 베트남 사회는 국내 한 일간지의 기사 때문에 들끓었다. 화근은 ‘베트남 처녀, 희망의 땅 코리아로’란 제목의 기사였다. 한국 남성이 베트남 여성을 ‘고르는’ 맞선 장면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도 되지 않은 10여 명의 베트남 여성들이 다소곳이 앉아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사진도 함께 보도됐다.
기사는 베트남 국민의 자존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베트남 관영 유력지를 비롯해 다수의 일간지는 즉각 관련 기사를 소개하고 문제삼았다. 베트남 최대의 여성단체인 ‘베트남여성연합회’는 한명숙 국무총리를 비롯,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 등에 항의 서한을 보내왔다. 이들은 “기사가 베트남 여성의 명예와 인격과 인권을 침해했다”며 “불법적인 결혼 중개는 여론의 심판과 법률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베트남 유학생은 “베트남에서는 이 같은 결혼이 불법”이라며 “베트남 여성을 상품처럼 대하는 것을 보고 모욕을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사실 기사는 결혼중개업체의 광고내용과 별 차이가 없었다. 기사내용 자체가 틀린 것은 없었지만 비판의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베트남 현지와 국내 베트남 유학생들의 반응은 그동안 매매혼 성격이 짙은 국제결혼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관심 또는 방관적 태도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할 우려마저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농어촌 총각이 결혼한 경우의 35.9%가 국제결혼이라고 한다. 국내에서 배우자를 찾지 못해 외국까지 가서 아내를 구해오는 농어촌 남성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른 한편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한국 땅으로 시집온 아시아 여성들도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와 편견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급증하는 국제결혼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인신매매적 성격과 여성의 상품화다. 노골적으로 ‘후불제’라고 내건 결혼알선업체들의 현수막이나 사이트에 나타난 내용들을 보면 이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현지 국가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신부를 선택하고 다음날 결혼식을 올리는 국제결혼의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 정부는 국제결혼한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국제결혼중개업 관리법을 제정하고 국제결혼이 이뤄지는 전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 인권침해적 요소를 방지하겠다고 했다. 현지 국가에서 신랑.신부 모두를 인터뷰해 결혼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등 비자발급 과정도 강화하겠다고 한다. 학력이나 가족상황을 비롯해 경제력이나 건강상태 등에 대한 잘못된 정보 때문에 가정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비자발급 과정에서 한국인 배우자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얼마나 걸러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또한 법제정으로 인해 영세 중개업자가 지하로 숨어들 경우 중개업체들에 대한 관리는 더욱 힘들어진다. 대만의 경우 이미 이 같은 시행착오를 겪은 바 있다.
제도 마련 못지않게 시급하게 도입돼야 할 것이 국제결혼을 하려는 한국 남성의 인식과 자세를 전환하기 위한 소양교육이다. 아시아 여성을 보는 시각의 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들의 결혼을 ‘빈곤탈출’의 시선으로만 보는 것은 차별적이고 위계적이다. 이들은 ‘새로운 삶을 추구해 보겠다’는 삶의 개척의지에서 국제결혼을 선택한다. 단지 ‘돈을 목적으로 결혼한 여성’으로 인식한다면, 그에 따른 인권침해나 인신매매성 국제결혼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주여성에게만 한국에 동화될 것을 강요하지 말고 한국인 배우자들도 이주여성의 삶과 문화에 마음의 문을 여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이주여성을 삶의 개척자로서 인식하고 배우자로서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사기결혼, 위장결혼, 매매혼적 결혼을 막는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