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결혼이주여성 강 체책 씨의 죽음이 남긴 숙제
지난 17일 새벽, 가정폭력 피해자인 자국출신 이주여성을 보호하려다 폭력가해자에게 칼로 온 몸이 난자당했던 몽골 출신 결혼이주여성 강 체책 씨가 운명했다. 올해 26세인 체첵 씨는 작년 2009년 3월에 한국인 남편 하모 씨(40살)와 결혼을 해서 전남 나주에서 살았는데, 시어머니와 남편의 배려 속에서 아들도 낳고(4개월) 잘 정착을 한 편이었다고 한다. 이런 강체책 씨에게 예기치도 않았던 참변을 당하게 된 것은 같은 몽골 출신인 E 씨를 보호하다 생긴 일이었다. 고향 후배를 도와주려다 죽임을 당한 이 사건은 한 달 전에 발생한 베트남 여성 탁티황옥 사건처럼 언론의 조명도 받지 못하고 조용히 묻혀버렸다. 정신질환자 남편에게 살해당한 탁티황옥의 경우 한국과 베트남 양국에서 엄청난 보도가 있었고, 장례식은 물론 대통령까지 가족에게 위로금을 전달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런 불상사를 막기위한 사후 대책회의가 다각도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몽골여성 강체첵 씨의 의로운 죽음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히 다루어졌다. 장례식도 조용히 치루어졌고, 언론이나 정부 어디서고 이 문제가 주는 심각성, 즉 폭력피해를 입은 사람을 보호하다 피해를 입는 사람들의 보호대책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체첵 씨 사건의 후유증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주여성들의 입에서 앞으로 보복당할까 무서워서 어려운 일을 만난 동료를 도와주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들이 오가는가 하면, 이주여성을 지원하는 한국인들도 이주여성들이 남편이나 시집식구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말들이 오가는 형편이다. 실제로 폭력 가해자 남편들이 이주여성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나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를 협박하며 괴롭히고 있는 마당에 정부나 언론이 이 사태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계속 침묵한다면 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의로운 사람들이 없어질 것이고 폭력가해자의 횡포는 계속 자행될 것이다. 이런 사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몽골 여성 강체첵씨가 살해당한 경위는 이렇다. E씨(21세)는 채첵 씨 친구의 동생으로서 역시 작년 12월에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해서 체책 씨와 한 마을인 영암에 살게 되었다. 친구 동생이 영암에 살게 된 것을 안 체책 씨는 물심양면으로 E 씨를 도왔다. 그러나 E 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중개업은 남편 양 씨를 학교 교사로 소개했는데 와서 보니 놀고 있었다. 허긴 한국에 들어오기 전날 중개업자가 남편 직업이 교사가 아니라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이미 결혼절차도 다 끝낸 마당에 입국 하기 하루 전날 그걸 알았다 한들 무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단지 남편이 잘 해주기만을 기대하면서 한국에 왔는데 남편은 술을 먹기만 하면 허리띠를 풀러 E를 때렸다. E의 시아버지는 아들이 며느리를 패는 것을 보면서도 지켜보기만 했지 말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허구한 날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E는 더 이상 맞고 살 수 없다 생각하고 평소 자신을 잘 돌보아주던 체책 씨에게 도망쳐 왔다. 평소 E가 남편에게 심한 가정폭력으로 고통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체책 씨는 E를 자기 집에서 보호해 주었다. E는 무료함도 달랠 겸 돈도 벌 겸해서 마을 공장에 며칠 일했다. E가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양씨가 E를 찾으러 왔지만, E는 무서워서 숨어 체책 씨에게 연락을 했다. 체책 씨 부부가 공장에 와서 양씨를 타일렀지만 양씨는 경찰을 불러 E를 잡아달라고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부부간의 문제이니 둘이 잘 해결하라며 돌아가 버렸다.
사흘 후 E의 남편 양씨가 체첵씨의 집으로 찾아와서 이혼하려면 위자료로 2,000만원을 달라고 했다. 중개업 계약서에 그렇게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의 전화만류에도 불구하고 E가 남편이 무서워서 이혼하겠다고 하자 양씨는 “그럼 당장 이혼하자.”며 목포 가정법원으로 차를 몰고 갔다. 가는 도중에 양씨는 이혼을 고려하자며 자기 집으로 차를 돌렸다. E씨는 두려움에 더 이상 남편과 같이 살 수가 없다며 짐을 챙겨서 나왔다. 이를 본 E씨의 시아버지가 나주에 있는 체첵씨의 집으로 E씨를 데려다주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E의 남편 양씨는 체첵씨의 집으로 여러 번 전화를 해 돌아오라고 했으나 E씨는 무서워서 돌아가기가 싫다고 대답했다. 그날 저녁 7시쯤 양씨가 체첵씨의 집으로 찾아왔는데 이미 술에 취한 상태였다. 양씨는 E씨에게 집으로 돌아가자며 채근하였다. 체첵씨가 양씨에게 “오늘은 술을 마셨으니 술이 깨고 난 뒤에 맑은 정신으로 이야기하자. 내일 와서 데려가라” 고 달랬다. 순간 양씨는 양말 속에 숨겨온 과도를 꺼내 체첵을 찔렀다. 비명을 듣고 체첵의 남편이 그 자리로 뛰어왔을 때는 이미 양씨가 체첵의 몸에 올라타서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른 상태였다. 남편이 막아보려 하였으나 역부족이었고, 양씨는 오히려 말리는 체첵의 남편의 목에 칼을 휘둘러 상처를 내었다. 양씨가 유유히 집을 나간 후 체책의 남편 하씨는 119 구급차를 불러 체첵씨를 급히 병원으로 이송하였지만 과도한 출혈로 인하여 병원에 도착한지 1시간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17일 저녁 전남이주여성인권센터로부터 이 사건을 접하고 이 사건을 보는 우리 센터의 입장을 담은 성명서와 사건 경위서를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언론에 발송했다. 자국인 가정푝력피해 동료를 보호하려다 살해당한 체책 씨를 조문하기 위한 조문소를 센터에 차렸다. 그리고 현지로 내려가서 장례절차를 지켜보았다. 몽골인 이주노동자들과 친구들이 나주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참변을 당한 K씨의 시어머니(65)는 며느리의 영정을 끌어안고 통곡했고, 남편 하모(40)씨도 4개월 된 아들을 안고 아내의 영정을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밤중에 도착한 체첵의 몽골 어머니와 오빠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통한의 울음을 토해냈다. 어머니가 도착한 다음날 아침, 여성가족부 장관이 빈소를 방문해 조문을 하고 가족들을 위로했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조의하러 온 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역 여성단체장들이 대거 참석을 했는데, 아무튼 장관의 방문은 가족들에게 큰 위로가 된듯하다. 장례식 비용은 전남도청 차원에서 해결을 하기로 하고 광주 망월동에 있는 화장터에서 화장을 했다. 화장하는 동안 라마교 예식으로 노음텡프를 틀어놓고 추모가 진행되었다. 검은 판에 애도하는 내용과 정부에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피켓이 화장터 앞에 세워져 있었다. 이 피켓은 어제 준비한 것인데 왜 장례식장에서는 내걸지 않았을까? 이상해서 물어보았더니 누군가 못하게 했다는 것인데, 아무튼 기자 한 명 오지 않은 묻혀버린 장례식이었다. 또 하나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장례식 전날 새벽에 가해자가 잡혔는데, 현장 검사를 하지 않고 있다가 경찰이 발인식에 맞추어서 현장검증을 하겠다고 나선 점이다. 왜 하필 발인시간에 현장검증을 해야 하는가? 결국 반발에 부딪혀 못하고 말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무엇이 두려워서?
체책의 죽음이 남긴 숙제들
화장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체책 씨의 죽음과 관련하여 많은 생각들을 했다. 강체첵의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남겼다. 첫째로 가정폭력의 위험성 범주에 관한 것이다. 체첵 씨의 죽음에서 드러난 것은 남편이 휘두르는 폭력은 단지 그 아내나 가족 구성원에 대한 위협의 수준을 넘어서서 또 다른 폭력을 부른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몸을 숨긴 여성을 보호한 또 다른 여성에 대한 위협과 가해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로 나타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개인적으로 폭력피해 이주여성을 돕고자 하는 이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위압감을 줄 뿐 아니라, 많은 폭력 피해 이주여성을 상담하고 보호하는 단체 및 기관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실제로 현장에서 폭력피해 이주여성을 보호하며 그 가족을 만나는 현장 실무자들의 경우, 남편이나 그 가족으로부터 심리적 위협을 느끼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이들에 대한 보호대책이 절실하다.
다음으로 이번 사건은 경찰을 비롯한 국가 공권력의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교육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드러내주고 있다. 경찰은 가해자 양 씨가 가정폭력 가해자인 것을 알면서도 부부문제이니 둘이 풀라고 하면서 돌아갔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알고 에렌씨에 대한 보호 조처를 취했다면 체첵씨의 억울하고 어이없는 죽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주여성 일선에서 이런 일을 종종 경험하는데, 이번 사건을 일선 경찰과 관계자들의 인식개선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또 하나 국제결혼에서 언제나 문제의 중심부에 있는 국제결혼 중개업체의 문제를 짚을 수밖에 없다. 이번 경우에도 중개업체는 무허가였으며 에렌씨에게 남편 양씨가 교사라고 거짓말을 했다. 또한 결혼계약서에는 두 사람이 이혼시 여성이 남편에게 2,000만원을 배상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렇게 남편의 직업을 속인 것도 모자라서 불공정한 계약서에 의한 결혼을 중개하는 중개업체는 명백한 인신매매 알선업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중개업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서 발을 못 붙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같은 몽골 출신 후배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려다 죽임을 당한 강체첵 씨의 죽음은 술에 취한 사람이 저지른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으로 묻혀서는 안된다. 이주여성을 가정폭력 피해로부터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그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 강체첵 씨의 억울한 죽음이 한으로 끝나지 않고 의미있는 부활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