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 대한 감수성 살피기


우리 센터에서 통역상담원으로 일하던  세 명의 이주여성 활동가가 센터를 그만 두게 되었다. 송별회 겸 점심식사를 이주여성 상담원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장소예약을 맡은 이주여성 활동가가 평소에 즐겨찾던 식당이 공사중이라 다른 곳을 알아보았다. 도착하기까지 식사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하고 안에 들어갔다. 이미 예약이 되어 있던 터라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해물탕 집이다보니 모두 해물로 된 음식이었다. 앗불사, 이걸 어쩐다?  몽골출신 이주여성이 해물을 먹지 않는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다문화와 관련된 교육을 가면 어김없이 예로 드는 일화 중의 하나가 몽골여성의 음식문화로 인한 갈등사례였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해물탕집을 회식집으로 정하다니….


10여 년 전 이주여성 쉼터를 연 어느 날, 한 몽골출신 이주여성이 쉼터를 찾았다. 통역을 통해 사연을 알아보았다. 사연인즉 시어머니와 의견충돌로 쫒겨났다고 한다. 서로 다른 음식문화 때문이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몽골은 유목민의 전통이 있고 바다가 없는 곳이라 생선을 먹지 않고 고기를 즐겨 먹는다. 최소한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고기를 먹는 식생활습관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고기는 주지 않고 김을 비롯해서 생선이나 채소로 된 음식을 주로 주니까 먹을 수가 없었다. 김이나 생선에서 비린내가 나서 먹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고기음식을 달라고 했더니 “가난한 나라에서 온 주제에 고기타령을 한다.”며 구박을 하며 계속 비린 것만 주더란다. 이러다가는 굶어죽겠다고 싶어 울었더니 그럴려면 나가라!고 내쫒았단다. 몽골에서 온지 한 달밖에 안 된 터라 시집 주소도, 남편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터라 가까스로 수소문을 해서 남편과 연결이 되어 시어머니와 남편을 만났다. 그리고 몽골의 음식문화와 한국 음식문화 차이를 설명하면서  국제결혼을 한 경우에 아내의 음식문화도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안 먹든 것을 하루아침에 어떻게 먹느냐?  같이 안 살려면 몰라도  아내가, 며느리가 한국음식문화에 길이 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음식문화 차이에 대한 이해를 시키느라 독일에 살던 때 독일 사람들이 냄새난다고 마늘을 싫어해서 안 먹다보니 마늘 먹는 교포들 만나면 냄새나서 괴롭던 이야기에서부터 생강 씹히는 맛이 싫어 김치를 안 먹던 내 식생활습관까지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과 시어머니를 납득시키느라 애썼다. 마침내 남편과 시어머니가 몽골여성의 식생활 문화를 인정하고 한국 음식에 익숙해질 때까지 돼지고기나 닭고기로 만든 음식을 하루 한번 이상은 먹을 수 있도록 하기로 하고 몽골여성과 함께 귀가시킨 적이 있다. 그후 이 경험은 문화차이로 일어나는 갈등을 소개하는 내 단골메뉴가 되었는데, 정작 나 자신은 센터에서 일하는 동료 몽골출신 이주여성의 음식문화에 대한 고려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11월부터 3월까지 우리 센터가 운영하는 이주여성 쉼터에는 비상이 걸린다. 난방비 요금이 70만원 가까이 나온다. 쉼터에 거처하는 이주여성들, 특히 동남아출신 여성들이 반팔 바람으로 지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민소매로 있는 경우도 있다. 난방비문제, 에너지 문제를 설명하며 옷을 따뜻하게 입고 있으라고 이야기해도 설득이 되지 않는다. 옷을 두껍게 입으면 갑갑하다는 이유에서다. 자기 고향이 더운 나라이다 보니 옷을 얇게 입고 다닌 것이 생활 습관이 되었고, 이게 의식문화로, 체질이 되어버린 때문이다. 난방비 고지서를 볼 때마다 속에서 열이 나다가도 기후에 적응하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니 이해해야지…하고 나를 달랜다. 한국에 이주한 초기 동남아 출신 여성들의 겨울나기는 종종 시댁과 갈등을 일으킨다. 아낄 줄 모른다는 핀잔을 듣는 경우도 생긴다. 한국 겨울날씨에 맞게 사는 것이 아니라 고향 날씨에 맞추어 사는 습관 때문이다. 더욱이 쉼터에 오는 여성들 중 동남아출신 여성들은 대개 한국에 온지 길어야 2년 안쪽인 여성들이다보니 한국 겨울날씨에 길들을 시간이 없다. 한 겨울에도 얇은 티 하나 입고 보일러는 활활, 쉼터 방은 훈훈하다 못해 덥고,  방 온도에 비례해서 쉼터 종사자들의 가슴 졸임이 높아진다.


이주여성 관련 강의를 다니다보면 종종 들어오는 질문이 문화차이로 인한 것이다. 동남아 출신 여성들은 게으르다, 고집이 세다, 버르장머리 없이 말대꾸를 한다, 예의 없이 시어머니 앞에서 잠옷 바람으로 돌아 다닌다 등등이 다 이주여성들의 생활문화와 한국생활문화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이렇게 차이 나는 지점들에 대한 인식이 없이 한국에 시집왔으니까 한국문화를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다 보니 문화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부채질 하는 것이 “빨리 빨리!‘ 하는 한국의 빨리 문화다. 기다려주지 않는 빨리 문화와 이주여성의 생활문화에 대한 이해 없음이 문화갈등을 키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 자신도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던 90년 대 초창기 시절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들과 문화기행을 강화로 가서는 특별히 대접한답시고 당시에 비쌌던 게와 새우찌개를 대법한 실수를 한 적도 있다. 이슬람문화에서는 게나 새우 등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 것이다. 이후 이주민 문화를 하나씩 익혀가기 시작했는데 1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시행착오를 계속하고 있다.


다문화사회를 부르짖는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이주민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열린 다문화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와 다른 이주민 문화를 틀린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다문화 감수성을 일상 속에서 키우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내가 그랬듯이 이주민의 배를 곯게 하는 데서부터 이주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으니까.
일상에서 다른 문화를 대하는 나의 감수성을 살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