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들 “결혼이주여성 폭행·사망 어제오늘 일 아니다”
“법원이 다음 피해자에게도 똑같이 판결을 내릴까 결혼이민자로서 슬픔과 두려움을 전합니다. 한국에 가족이라도 있었으면 사건이 이렇게 쉽게 묻히지 않았을 겁니다.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남편만 믿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한국에 온 저희 결혼이민자들을 지켜주세요.” 의정부 캄보디아 공동체 소이셍하잉 씨’캄보디아 만삭 아내 사망사건’이 지난 10일 최종 무죄판결을 받은데 대해 이주여성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25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자리에 참석한 이주여성들은 “결혼이주여성 사망사건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며 “기댈 곳 없는 약자의 억울함에 귀 기울여달라”고 호소했다.
“캄보디아에서 온 김하늘입니다. 지난 8월 10일 벌금 95억 노리고 만삭인 캄보디아 아내 살해한 남편에게 무죄판결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캄보디아인, 아이 엄마, 여자로서 이런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마치 가난한 나라에서 시집 온 저 같은 사람은 한국 사람의 보험금을 위해 죽음을 당해도 법이 눈감아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슬프고 화가 났습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봐도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중국 출신의 왕지연 씨도 “법원에 큰 실망을 했다. 이주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법원에서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고 하는데 판사님이 보는 앞에서 사람이 죽어야만 살인이라고 판단할 것인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가벼운 처벌이 모방범죄로 이어져 수많은 이주여성, 나아가 이 사회 약자들의 생명을 위협할 거란 우려가 든다”고 했다.
필리핀 출신의 이자스민 정의당 이주민인권특별위원장도 참석했다. 이 위원장은 “상식있는 누가 봐도 이는 명백한 계획 살인”이라며 “재상고 절차를 앞두고 있는데 대법원이 정의롭고 상식적인 판결로 정의가 구현될 수 있도록 올바른 판단을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당시 아내 앞으로 90억 상당의 보험금이 가입돼 있었던 점, 사고 직후 이 씨가 환호하는 듯한 자세를 보인 점, 바로 아내 구조요청을 하지 않은 점, 아내의 혈흔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된 점, 아내가 사망한 후 부검하지 않은 채 서둘러 화장한 점 등의 정황으로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사고를 낸 것 아니냐”는 혐의를 받았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로 판단이 엇갈렸지만 대법원은 살인과 사기에 대해 최종 무죄로 판단했다. 지난 10일 파기환송심에서도 피고인 남편에게 교통사고특례법의 치사죄를 적용해 금고 2년을 선고했다. 금고형은 강제노동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징역형과 구별된다. 재판부는 “범행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며 이 씨가 졸음운전을 한 것으로 봤다.
검찰은 지난 15일 재상고했으나 대법원 판단과 같은 취지의 파기환송심 결과가 재상고를 통해 다시 바뀌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 법조계 설명이다.
[조성은 기자(pi@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