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고, 주위에 믿을만한 사람들이 있고, 적절하게 노동을 할 수 있고, 쉼도 찾을 수 있고.. 등등. 수도 없이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희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 남겨져 있던 단 하나의 선물.
그런데 이주여성과 상담을 하다보면 이들에게 이 ‘희망’ 이라는 말이 때론 너무나 사치스러운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든 고향에서 한국 땅을 향해 올때 품었던 잘 살 수 있을거라던 희망은 물거품이 된 채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을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근심으로 바뀐채 이들은 희망을 잃고 눈물을 흘린다.
얼마전 상담했던 베트남 여성 P도 그랬다. 21세, 정말 작고 야윈 몸에 왕방울만한 눈을 가진 작은 여성이었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특별히 병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몸이 너무 약하여 건강하게 아이를 가지고 낳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시집 온지 4달. 시어머니는 이 여성이 언제 어떻게 아프고 어떤 치료를 시켜줘야 할지 모르니 도저히 데리고 있을 수 없다, 여기서 아픈 거 보다 고향 가서 친엄마 밑에서 고향 음식 먹고 살라고 한다. 시어머니 당신 말로는 며느리가 너무 약하니까 자기 몸 챙기고 아끼려면 그 방법 밖에 없다고, 우리는 우리 식구 벌어먹고 살기도 힘든데 아픈 애 원하는대로 돌봐줄 수가 없다고 했다. P라는 여성은 계속 남편이 나서서 중재를 해 주고 남편이 자기를 선택해서 같이 살아주기를 원했지만 워낙에 우유부단하게 살아온 듯 보이던 이 남편도 자기는 부모님 말씀에 따를 수 밖에 없다고, 안됐지만 돌려보내야겠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너댓차례에 걸쳐 시댁 식구들 모두와 P라는 여성과 함께 상담을 진행했지만 시댁에서 원하는 건 만약 이 여성이 한국에서 계속 결혼생활을 하려고 한다면 무조건 시부모님과 남편 말에 복종할 것을 각서로까지 쓰기를 요구했다. 결국 이 여성은 더 이상 한국에서 결혼생활에 대한 어떤 희망도 발견하지 못한 채 ‘나는 종이 되어서는 살 수 없어요’ 라고 이야기하고 이혼을 선택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마지막 상담을 끝내고 나오는 날 남편은 고작 이 여성의 손을 잡고는 “베트남 가서 건강하게 잘 살아요” 라고 말할 뿐이었다.
P는 나에게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울음이 나와서 그 목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은 채 그저 가녀린 어깨를 더 움츠리고만 있었다. 그 큰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P는 자신이 한국으로 시집 올때는 남편의 사랑 받고 아이 낳아 기르면서 시부모님 귀염받고 돈 많이 없어도 그냥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거라는 희망이 있었다고, 하지만 남편과 시집 식구들은 나를 그저 아이 낳고 가족을 위해 가정부처럼 일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결혼에 무슨 희망이 있고 의미가 있겠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합의이혼을 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고향에 가서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그저 눈물만 흘린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챙피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이제 21살, 인생을 시작할 나이, 이 여성이 한국에서의 아픈 기억을 잊고 고향에서 다시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