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지 2년이 된 베트남 여성이다.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 고된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해 쉼터에 왔다.
남편은 직장생활을 하긴 했는데 생활비를 조금씩 가끔 주었다. 그녀가 경제활동을 해서 생활을 하기도 했다. 임신을 했을 때는  고기를 사 주면서 투덜거리는 남편의 말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홀 시어머님을 모셨고, 홀로된 시여동생도 조카를 데리고 와 집에서 함께 생활을 했다.  시누이가 한말 “니가 그랬어?…”는 한국어를 배우고 보니 어법이 틀림도 알 것 같다고 한다.

남편은 직장이 끝나면 술을 마시고 밤늦게 들어와 술주정을 하며 가재도구를 부수며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가끔 경찰에 가기도 했는데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시어머니께도 물건을 던졌다. 그럴 때면 시어머님은 가방을 챙겨 어디론가 가시곤 했다. 집에서 술을 마실 때는 술병을 깨뜨려 자해를 해서 팔뚝에 상처자국이 남아있다. 그 자국을 보시고 시어머님께서는 그녀의 손톱자국으로 생각하시기도 했다. 그녀는 시어머님께 한국 요리도 많이 배웠다고 하면서 식혜, 호박죽, 오이냉국도 잘한다.

그녀는 상담을 위해 아들과 남편을 만나러 간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시어머님과 따로 사는 방법도 애기했지만 남편은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아들을 낳고 집을 나온 지 일 년이 되어가고  얼마 전에 아들의 돌을 맞이했다.
시집의 어른들과 친구 분들을 마주함이 불편하여 돌잔치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저녁 늦게 집으로 갔다. 방안에는 친척 분들이 계셨다. 남편은 그날도 술이 많이 취한 상태였다. 남편은 큰절을 하라고 했다. 어른을 뵈면 큰절을 하는 풍습을 몰라 인사만 하고 방으로 갔다. 집에서 자는 일이 불편하여 남편과 함께 집을 나왔다. 남편은 “집에서 자지 않고 왜 쉼터에 가느냐?” 하면서 갑자기 길에서 머리를 잡고 구둣발로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크게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주변에는 어둠뿐이었다. 소리를 듣고 나온 동네사람들의 “도망가”, “도망가”란 소리가 들렸고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가다 잡히기도 했다. 둘째 시누이가 입을 막으며 집으로 가자고 잡기도 했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왔다. 그녀는 많이 맞아서 입원을 하게 됐고 2주간 치료 받고 퇴원해서 고소장준비를 위해 진술서를 쓰고 있다. 이번폭력이 있기 전에 국적신청도 해놓은 상태이다.

그녀는 밤마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아들을 키울 수 있을까?’, ‘남편이 이혼을 안 해주면 어떡하나?’, ‘이혼소송기간이 얼마나 걸릴까?’, ‘증인은?…’, ‘고소하면 남편직장은 어떻게 되나?’…  소송이 잘 진행되었으면 한다. 한국국적도 받고 일자리도 찾아서 방이라도 한 칸 얻어서 아들을 키우고 싶어 한다.
국적이 나오면 베트남에 가고 싶다고 한다. 외할머니도 만나 함께 오순도순 말을 배우면서 커가는 아들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이유식도 제대로 못하고 우유만 먹는 아들을 생각하며 끼니때 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그녀는 가녀린 손가락을 모아 주먹을 들어 보이며 오늘도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지구촌시대에 당당하고 평등한 이주민으로, 여성으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다짐을 하며 소송준비를 위해 이른 새벽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