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성폭력으로 인한 출산과 혼인취소, 과연 정당한가?
한국염/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
지난 3월 5일 국회도서관에서 이주여성단체들과 공익변호사그룹, 여성폭력근절을 위해 행동하는 단체들이 모여 “아동성폭력으로 일한 출산경험과 혼인취소: 법적 쟁점과 입벅적 과제”라는 제목으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의 동기는 한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13세 어린 나이에 발생한, 납치에 의한 성폭력으로 출산한 사실을 은폐했다는 이유로 1심과 2심에서 혼인취소 판결을 받은 데서 비롯되었다. 이 사례의 발단은 이주여성이지만 선주민여성들에게도 “성폭력에 의한 출산경험과 혼인취소”의 첫 사례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안이다. 아동성폭력에 의한 피해결과인 출산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혼인취소’의 판결이 내려진 것이 과연 정당한 판결인가? 하는 것이 사건의 쟁점이다.
베트남 여성 A씨가 혼인취소판결을 받게 된 과정도 매우 무참하다. A씨는 한국에 입국해서 남편과 열심히 살았는데, 6개월 만에 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시아버지는 7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 성폭력재판과정에서 A씨가 결혼하기 전 출산한 경험이 밝혀지자 남편이 혼인무효소송을 내었고, 재판부는 남편의 손을 들어 혼인취소판결을 내렸다. A씨는 베트남에서 13세 때 놀러갔다가 납치되어 성폭력을 당했고 그 결과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 약탈혼의 피해자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비록 아동성폭력의 결과로 빚어진 임신과 출산이라도 결혼할 때 남편에게 고지하지 않은 것은 혼인취소의 사유가 된 다고 판단했다. 아동성폭력피해자인 A씨에 대한 혼인 취소 판결은 A씨가 시아버지에게 당한 성폭력을 무위로 만들었다. 혼인이 성립한 적이 없으니 시아버지가 있을 수도 없게 되었고, 이제 A씨는 친족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기만으로 혼인을 한 자로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되었다. 아동성폭력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린 여성이 다시 시부에게 성폭력을 당해 트라우마가 중첩되고 있는데 이제 한국사회가 아동성폭력의 피해 책임을 성인이 된 여성에게 다시 묻고 있다.
A씨의 경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혼이 아니라 혼인 무효가 되었기 때문에 혼인비자가 성립되지 않고 그로인해 A씨가 추방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충분히 혼인무효소송을 할 수 있다. 또 한국의 경우 출산사실을 숨긴 것은 혼인취소 사유가 되기 때문에 단순 법논리 적용을 하면 형평성에 입각해서 혼인취소 판결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례는 통상적 출산경력이 아니라 약탈혼에 의한 출산경험임으로 다르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본다. 아동성폭력피해로 인한 출산경험은 인권침해의 결과인데 그렇게 단순논리로 혼인취소 판결을 내릴 수 있는가? 아동권리협약에 의하면 이동은 범죄피해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며, 따라서 그 아동의 정보도 보호되어야 한다. 여성차별철폐조약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두 번의 성폭력경험이 혼인취소의 결과가 된 베트남 여성 A씨의 경우 아동성폭력,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차별,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 국제결혼과정에서의 문제, 체류 등 다각적인 현안들이 얽혀져 있다. 이 사례를 통해 아동성폭력으로 인한 출산경력과 혼인취소의 법적 쟁점이 확립되고 아동성폭력 뿐만 아니라 성폭력으로 인한 출산경험 피해자를 위한 입법적 과제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중개업체 알선에 의한 국제결혼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도 함께 점검함과 동시에 재판과정과 판결에서 젠더관점의 결여나 인종차별적 요소가 없었는지도 반추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A씨에 대한 ‘혼인취소“판결이 부당하다고 판단되어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이 문제를 부각하고 이주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아동 성폭력으로 인한 출산경험과 혼인취소”라는 토론회는 이주여성에게 뿐만이 아니라 한국여성에게도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되는 토론회다. 성폭력피해자가 그 피해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이 과연 혼인무효 사유가 되는지?, 특히 아동성폭력피해자가 자기의 과거를 혼인한 배우자에게 밝히지 않는 것이 기만이 되는 것인지? 성폭력피해자의 권리보호는 어디까지 이루어져야 하는지, 입법적 과제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이 사건이 유엔에까지 가지 않고 대법원에서 ’혼인취소‘판결의 무효가 선언되기를 희망한다. 이는 성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 특히 이주여성들이 피해자에서 생존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는 기틀로 이어질 것이다.
대법원 상소에는 전대법관을 비롯해 저명한 변호사들이 변호인단으로 결합했다. 언론에 의하면 호화변호인단이라나? 그만큼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된 사건이었다. 다행히 대법원(제3부, 주심 김신 대법관)은 2016년 2월 18일 ‘아동성폭력범죄로 인한 출산 경험을 이유로 한 혼인 취소 베트남여성사건’에 대하여 혼인을 취소하고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전주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하는 판결을 하였다. 대법원은 판결 이유에서 “당사자가 성장과정에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동성폭력범죄 등의 피해를 당해 임신을 하고 출산한 경우, 이러한 출산의 경력이나 경위는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 비밀의 본질적 부분에 해당하므로 사회통념상 당사자나 제3자에게 그에 대한 고지를 기대할 수 있다거나 이를 고지하지 아니한 것이 신의성실 의무에 비추어 비난받을 정도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단순히 출산의 경력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하여 그것이 곧바로 민법 제816조 제3호 소정의 혼인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서는 아니 되며, 국제결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판시했다.
아동성폭력범죄 피해 결과 출산에 이르게 된 특수한 출산 경위에도 불구하고 피고 여성에게 고지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인격권 및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현저하게 침해하는 것이고, 또한 성폭력 피해 아동을 보호하고자 하는 국내법과 국제법의 취지에도 반하는데, 우리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원심의 법리 오해를 바로 잡아주었다. 국내 판례에서 ‘출산 사실 미고지’ 그 자체는 혼인 취소의 사유가 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베트남 여성 A씨의 사례는 아동 성폭력이라는 매우 끔찍한 경험을 통해 출산한 것이었고, 그것이 혼인 취소 사유가 된다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징벌적 성격을 띠고 있음으로 이에 대하여 우리 이주‧여성단체들은 강력 항의하였다. 그럼에도 1심과 2심 재판부는 남편의 손을 들어 혼인취소와 남편에 대한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렸다.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단체들은 공동변호인단과 함께 대법원에 상고하였고, 그 결과 2심 판결에 대한 파기 환송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혼인 취소의 책임을 물은 1, 2심 판결의 부당하였음을 인정한 지극히 당연한 선고이기도 하다.
이번 선고는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 결과가 미칠 파장은 매우 크다. 단순한 출산 사실이 아니라 성폭력으로 인한 출산일 때, 성폭력으로 인한 출산 사실을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대법원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 그동안 없었던 판례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선고는 모든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인권적 판례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