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등록 결혼이주여성의 어이없는 죽음과 사회안전망
한국염
세계여성에 대한 폭력추방주간에 연이은 결혼이주여성의 살해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보험금을 노린 남편의 아내 살인사건에 이어 20대 여성이 한국인 남자에게 목이 졸려 죽임을 당한 사건이다. 앞서의 사건은 남편에 의한 살해사건이고, 뒤의 사건은 한국인 남자에 의한 살인사건이다. 그러나 두 사건에 공통점이 있는데 두 피해자 모두 국제결혼으로 이주한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전자는 결혼생활 중에 발생했고, 후자는 이혼한 후에 발생했다.
우리가 제주에서 발생한 사건에 주목하는 것은 결혼으로 한국에 이주해 온 여성들이 혼인이 파기된 다음 겪는 삶의 질곡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제주에서 살해당한 베트남 여성 흐엉씨는 2012년 4월 혼인비자로 제주에 입국하였으며, 6개월 만에 이혼당했다. 법적으로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고향의 사정상 돌아가지 못하고 미등록상태로 소위 불법체류자로서 생존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악착같이 살다가 한 주점에서 한 관광버스 운전사에게 성관계를 거부한다고 무참히 목졸려 죽은 것이다. 만일 이 여성에게 체류권이 주어지고 한국에서 취업할 자유가 있었다면 보다 안전한 일자리에서 일을 하며 살 수 있었을 것이고, 이토록 어이없는 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차 지적하지만 오늘 이같은 참변의 원인은 국제결혼중개업의 알선에 의한 ‘인신매매성’ 결혼과 한국인들의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 결혼관, 여기에 다문화가족이라는 이름의‘가족유지’ 원칙에서 만들어진 통제와 규제중심적인 체류법이 그 정점에 있다.
결혼이민자의 이혼은 통상 한국의 이혼과 같이 합의이혼과 재판이혼의 과정을 거치는데 결혼이민자의 경우 혼인생활을 중단할 경우 한국에 체류할 수 없다. 단 예외적으로 혼인파탄의 귀책사유가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을 경우 혼인이 중단되어도 한국에 체류할 수 있고, 체류연장과 국적신청이 가능하다. 예외적인 경우란 ①한국인 배우자가 사망․실종한 경우 ②한국인배우자에게 혼인파탄의 잘못이 있는 경우, ③한국인배우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양육하는 경우다. 이 외의 경우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결혼이주여성들의 체류권문제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사유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귀책사유의 범위가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다. 현행 가정폭력의 정의에 의하면(가정폭력방지법 2조) “가정폭력이란 가정구성원 아시의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폭행, 상해, 유기, 학대, 체포, 감금, 학대 등의 행위”를 말한다. 즉 신체적 폭력만이 아니라 언어폭력, 정서폭력으로 일어나는 모든 경우의 폭력을 가정폭력의 범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이주여성에게는 이 가정폭력의 정의가 차별적으로 적용되어 신체폭력만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이고, 가정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법률규조공단에서도 신체폭력피해자만을 지원하고 있다. 가정폭력 정의 자체가 한국에서는 ‘가족유지’라는 이름 하에 인종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고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사유도 폭넓게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차별적 법 적용으로 결혼이주여성은 물리적 폭력으로 이혼한 경우나 한국인 배우자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를 양육한 경우가 아니면 체류권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가정폭력방지법의 정의에 따라 귀책사유를 가늠한다면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안정적으로 체류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취업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주민에게 체류권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다. 이혼 후 체류권을 보장받지 못한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어려움 해소를 위해서라도 결혼이주여성의 가정폭력과 귀책사유 적용 범주를 가정폭력방지법 정의에 따라 넓혀야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결혼이주여성에게 이혼하고 자기 나라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나 한국인과 달리 결혼이주여성이 이혼하면 본국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연애결혼도 아니고 중개업체의 알선에 의한 국제결혼을 결심하기까지, 그리고 결혼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처럼 이혼해서 돌아간다는 것 역시 부모님의 걱정과 경제상황, 이혼하고 왔다는 사회통념, 귀환 후의 삶에 대한 불안, 이런 것들 때문에 어렵다. 그러다보니 이혼 후 귀환하지 못하고 미등록 상태에서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많다.
2013년 말 한국에 거주하는 전체 미등록 체류자 183,106명 중 여성의 비율이 32%이며, 그 가운데 결혼이주여성이 2.4%인 3,187명이다. 결혼이주여성의 상황에서 살펴 볼 통계 하나는 국제결혼의 이혼 통계다. 2013년 국제결혼은 국민결혼의 8%를 차지하고 있으나 이혼의 경우 국민이혼의 9.1%를 차지하고 있고, 한국인 남자와 외국인여성의 이혼이 72.4%로서 한국인 여성과 외국인남성의 이혼율보다 3배로 높다. 특히 눈여겨 볼 것은 국제결혼 가정의 이혼 경우 동거기간 1년 미만이 13.4%, 2년미만이 20.6%, 3-6년이 16.2%로서 5년 미만 동거가 50%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이혼 후 미등록자가 되는 경우는 5년 미만 동거자들로 이들 중에는 이혼 후 귀국하지 않고 미등록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소위 불법체류자가 되면 아무런 법적 보호 즉 취업을 할 수 없고 건강이나 사회보장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강제출국의 대상이기 때문에 생존의 어려움은 물론, 개인안보를 전혀 보장받을 길이 없다. 이들 중 많은 여성들이 한국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 하다가 한국인이나 자국민 브로커들의 꼬임에 빠져서 유흥업으로 유입되기도 한다. 미등록이라는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성폭력을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고 임금착취를 당해도 고발할 수 없다. 제주에서 살해당한 베트남 여성 흐엉씨의 경우도 결혼 6개월 만에 이혼당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전전하다가 살해당한 것이다. 저출산․고령화사회의 문제해결을 위한 동력으로서의 결혼이주여성 도입과 가족유지강화에만 관심할 것이 아니라 이혼 후 결혼이주여성의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죽임을 당하는 결혼이주여성의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국제기구의 권고사항을 이행할 필요가 있다.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 제9조에 부합하게 국적을 다루는 법과 제도를 개정할 것을 권고하고 자녀가 없는 경우 직면할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차별적 조항을 제거하고 법을 바꿀 것을 권고하였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17조에서 “위원회는 한국이 국제결혼 여성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 특히 한국인 남편의 전적인 귀책사유로 인하여 결혼이 파탄에 이르게 된 경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국제결혼 여성이 이혼 혹은 별거하게 된 경우에 법적인 거주 자격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채택할 것을 권고하였다. 유엔사회권위원회는 한국국민과 결혼한 외국인 배우자들이 아직도 거주자격(F-2)과 관련하여 한국인 배우자에 의존한다는 것을 우려하면서(제2조) 한국정부가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한 외국여성들이 거주자격을 얻거나 귀화하기 위하여 한국인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도록 이들 여성에게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받는 차별을 줄일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을 권고하였다. 이러한 국제기구의 권고안을 이행한다면 이혼 후 결혼이주여성의 안전망 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제주에서 비운의 죽음을 맞은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흐엉씨의 죽음 앞에서 이혼 후 부평초처럼 떠도는 결혼이주여성의 애닮은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혼 후 이주여성의 안전한 삶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안이 필요하다. 아울러 결혼이주여성을 비롯해 미등록이주여성이 범죄 피해를 입었을 때를 대비해 필요한 제도는 무엇이며, 손해배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장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대안도 역시 마련되어야 한다. 이주민을 도구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고 공존할 수 있는 틀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2014년 12월 5일 숭인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