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 한국어수업
-임안나 선생님

  여름의 시작과 함께 이루어진 태국 여성들과의 만남. 6월 24일 비**씨네 집을 처음으로 방문한 이후, 매주 비**씨의 친구들이 한명 씩 늘어갔다. 비**씨, 폰**씨, 파**씨, 그리고 자**씨.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면서 기쁘기도 했는데, 나 혼자 4명과 함께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먼 곳에서 아이를 업고 한글을 배우기 위해 비**씨의 집을 찾아온 모습에 감탄이 되기도 했다.

4명의 한국어 구사수준이 제각기였기 때문에 한꺼번에 모여 공부하는 것이 어렵긴 했지만, 서로 가르쳐 주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어려운 대목에서 한명만 이해시키면 다른 세 명은 저절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태국 북동부 지역의 농업지대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그녀들은 모두 통일교를 통해 한국 남성과 결혼한 뒤 한국에 정착하였다. 동남아, 특히 필리핀과 태국은 친족체계에서 양변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부계중심의 가부장적인 한국 가족에서 겪는 갈등이 나름대로 클 것 같았다. 수업 시간에 본문과 관련된 내용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종종 가족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곤 했다.
  
  비**씨는 태국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한국 불교와 태국 불교도 매우 다르며 한국의 가족관계와 태국의 가족관계가 다르다고 강조하여 말해주었다. 불교의 나라인 태국에서는 사원에서 절을 할 때 한국 불교도들과 손바닥 뒤집는 방향이 다르다면서, 만약 태국에서와 같은 소승불교가 한국에도 있다면 아마 그 사원에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폰**씨는 결혼식 때 한국에서는 신랑측 가족과 신부측 가족이 확연히 구별되며, 일상적 가족관계에 있어서도 양측의 가족들이 한 가족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태국에서는 남편의 가족과 아내의 가족이 모두 한 가족이어서 한 집에서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마 한국에 와서 처음 맺는 관계는 가족관계일 것이기 때문에, 이분들이 한국을 인식하고 한국에서 적응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가족들일 것 같다.  

  처음에 비**씨네 갔을 때에는 시원한 태국 차(tea)를 주셨는데, 사실 내 입맛에 맞지 않아(복숭아맛 쿨피스와 밀키스 섞은 맛?) 다 안마시니까 그 다음주 부터는 오렌지 쥬스를 주셨다. 그것도 제주도감귤 주스. 마셔본 사람은 알겠지만 감귤 주스 역시 신맛은 거의 없고 쿨피스에서 신 맛을 제거한 뒤의 맛이라고나 할까… 태국의 입맛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비**씨는 복숭아도 굵은 소금과 고춧가루에 찍어 먹는다. 나도 그렇게 한 번 먹어보았는데 좀 독특한 것 같다. 항상 태국의 고향과 음식에 대한 깊은 향수를 표현하는 분들… 어떻게 보면 한국 가족 내로 편입되어 일방적으로 한국 문화에 적응해야만 하는 태국 여성들에게 있어서, 고향에 대한 향수와 성장하면서 체화한 태국 문화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의 한글공부는 주로 교재의 본문 내용과 관련된 신변잡기적인 ‘대화’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단어시험에서 항상 실수하는 덜렁대는 비**, 옆에 앉아 그런 비**를 구박하는 장난끼 많은 파**, 남편과 비**이 잔소리가 많다고 투덜대는 폰**, 얌전하고 진지한 자**. 각자 이것저것 근심거리를 한아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만 빼고 서로 태국어로 왁자지껄 수다떨던 모습을 이제 볼 수 없어서 아쉽지만, 언젠가 한국어로 수다떨 수 있게 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