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활동가들, 한국사회 인종차별을 말하다
[오마이뉴스 이향림 기자]
지난 7월 20일부터 이틀간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한국사회 내의 인종차별에 대한 보고대회가 있었다. 학계와 현장 전반에 걸친 전문가들은 대한민국 인종차별의 역사 및 배경과 함께 국가는 인종차별 강화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누가(미디어, 종교집단, 혐오조장 단체, 민간자본 등) 인종차별 강화에 기여하고 있는지 발표했고, 시민들과 논의 및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서울지방변호사회와 ‘UN인종차별철폐협약’ 한국심의대응 시민사회 공동사무국이 공동 주최한 이번 보고대회는 올해 12월 예정되어 있는 ‘UN인종차별철폐협약’ 대한민국 심의에 제출하는 시민사회보고서에 반영될 예정이다. ‘UN인종차별철폐협약’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을 규탄하고,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기 위하여 1966년 UN총회 결의로 선포. 우리나라는 1978년 위 조약의 비준에 동의하였다.
보고대회의 마지막 시간에는 3명의 이주노동자 및 난민 관련 단체의 활동가들에게서 한국에서 겪은 차별적인 경험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 상담소 ‘의정부 엑소더스’에서 2014년부터 일을 시작한 강슬기 활동가. 그녀는 해고, 폭력은 일상이 되어버린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에 충격을 받았다며 이주 노동자들이 열악한 사업장에서 일을 하게 되더라도 3년간 단 3번 밖에 사업장을 옮기지 못하는 고용허가제는 폐지되어야 하며 “(이주민들에게만 적용하는) 고용허가제는 한국판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백인들의 인종분리정책)”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한번은 리베리아(서아프리카) 출신의 외국인이 은행 창구에서 몇 백만 원 정도를 인출하려 했는데 그때 은행 직원이 이 큰 돈이 어디에 필요가 있냐, 어디서 났냐, 훔친 것은 아니냐며 따져 물었다고 한다. 매니저까지 불렀지만 직원과 같은 말을 했고, 결국 몇 십 분의 실랑이 끝에 돈을 챙겨 은행을 나왔다고 한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평등에 대해 더 대중에게 알릴지 고민하고 있다. 편견의 뿌리가 싹트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편견이 차별을 낳고 차별이 폭력을 낳는다. 일상에서 변화해야 한다”며 케이시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필리핀 아버지를 숨겨야 했던 어린 케이시
케이시의 아버지는 1979년에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넘어왔고, 한국인 여자와 결혼하였다. 케이시가 15살 때야 비로소 아버지는 한국 국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는 다문화라는 단어가 없어서 ‘혼혈’이라 불렸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케이시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무서웠다. 결국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한 반이었던 시골로 다녀서 그나마 왕따 같은 차별은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축적된 남들의 따가운 시선이 어린 케이시를 짓눌려 버린 것일까. 중학생이 되자 케이시는 아버지의 국적을 숨겼다. 그때 친구들은 아직까지도 케이지의 아버지가 필리핀 사람이란 것을 모른다.
지금은 그 케이시가 청년이 되었다. 그 사람이 바로 강슬기 활동가. 그녀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다른 나라를 다니면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이 세상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많구나’라는 동질감을 얻었고, 한국 활동가들을 만나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자신은 운이 좋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힘을 얻을 수 있었지만 요즘 이주민 아이들은 본인때보다 한국인들의 차별 분위기에 더 살기가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 사회자(이탁건 변호사)와 한국에서의 차별 경험을 말하는 활동가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레티마이투가 발언을 하고 있다 |
ⓒ 이향림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레티마이투는 12년 전 베트남에서 왔다. “사무국장 일을 하면서 사무실에 오는 전화를 내가 받거나 전화를 하는 일이 많다. 그럴 때 보이스피싱 아니냐고 오해 받은 적도 많다.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라 한국말을 잘 못해서 따지지 못했다.” 국적을 취득하기까지 보통 1년이 걸리지만 그녀는 출산을 하지 않아서 2년 반이 걸렸다고 했다.
“이주여성은 계급적 차별, 출산과 가사노동, 아내로서 며느리로서도 차별을 받는다. 아까 사회자께서 한국에서 살면서 차별을 어떻게 극복했냐고 말해 달라고 했는데 나는 극복 못했다(웃음). 학교에 보내는 자녀를 둔 이주여성 중에는 선생님으로부터 학부모 대우보다는 외국인으로 대우 받는 경우도 많다. 그것도 차별이다.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니 기분 나쁜 내색도 못한다”며 이주여성이 겪는 이중고에 대해 꼬집으며 관객들에게 되물었다.
“만약 제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당하지 않을까요?”
까무잡잡하지 않으면 TV에 못 나온다?
그녀는 방송과 관련한 일화도 말해주었다. “베트남 사람을 인터뷰 하고 싶어서 나에게 연락을 했으나 내 피부가 그리 까무잡잡하지 않다는 이유로 취소한 일이 있었다. 특정 나라에 피부색 및 특징을 한정적으로 규정하는 것 또한 사람들의 차별이 더 심각해지도록 돕는 길일 것이다”라며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한국 미디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이주민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책과 미디어는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 발언 차례인 ‘헬프시리아’의 압둘 와합. “저는 차별 별로 안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무슨 말을 할까 되돌아보니 차별 정말 많이 받았더라고요(웃음).” 한국인이라는 존재 자체로서 미안함을 느끼며 숙연해졌던 분위기 속에서 압둘 와합의 첫 마디에 웃음 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왔다.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는 처음 보는 사람들도 나에게 바로 반말 했다. 한국어 배우면서 반말이라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찜질방 사우나에 내가 들어가면 1분 안에 다들 나간다. 나 혼자만 앉아있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버스 탈 때 만약 한국인과 외국인 각각 옆자리가 비어있으면 무조건 한국인 옆자리에 앉는다. 지금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사우나에 혼자서 얼마나 넓게 쓸 수 있나(웃음).” 압둘 와합은 웃음을 멈추고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아랍 사람들은 털이 많다. 특히 티셔츠를 입으면 더 눈에 띈다. 한번은 수영장에 놀러갔을 때 4~5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나를 보고 원숭이라고 했다. 그러자 엄마가 다가와서 원숭이 옆에 있지 말라고 하면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 엄마 때문에 너무 화가 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한테 어릴 때부터 그렇게 가르치면 그 아이는 커서도 인종차별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압둘 와합은 한국에서 법과 대학을 다녔는데 그때 시리아 내전이 터져서 친구들과 ‘헬프시리아’ 단체를 만들었다. 그때도 한국 사람들로부터 “시리아 난민들 한국에 많이 오게끔 하는 거 아니냐”는 공격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반대로 “나는 시리아 사람들에게 한국에 절대 오지 말라고 하고 있다(웃음)”고 말했다.
“한국어 배우지 마세요”
“처음에 한국 왔을 때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어를 배우지 말라고 했다. 영어로 말하고 다녀야 더 대우받고, 특히 영국식보다는 미국식 영어가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한국 사람들과 더 친해지고 싶어서 한국어 열심히 배웠다. 그런데 정말 한국어를 잘하고 보니 안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겼다. 사람들이 얘기할 때 내가 못 알아 들었으면 기분이 덜 나빴을 텐데 이제는 차별적인 대화도 다 이해할 수 있어서 집에 돌아가 그 말을 곱씹느라 잠 못 이룬 적도 많았다. 헬프시리아에 후원금을 내면서도 왜 외국인이 사무국장 하는지 되묻는 사람들도 많다”며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한국어 잘 배웠다고 생각한다. 정부 해결책은 100~200년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웃음) 시민들 스스로 차별이 줄어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관객 중 한 명은 “세 분의 얘기를 듣고 보니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하는지, 국민의 개념을 확대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는 소감을 밝혔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이찬희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인종차별은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인하여 점차 사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인종차별적 인식에 근거한 혐오가 팽배해 있다. 여전히 순혈주의를 기초로 하는 단일민족의 신화를 교육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우울한 자화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며 “낯선 문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토론회의 취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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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한국사회 인종차별을 말하다’ 인종차별 보고대회(2018.7.20.~21)는 UN인종차별철폐협약 한국심의대응 시민사회 공동사무국(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두레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사단법인 이주민건강협회)에서 주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