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결혼의 덫
한국염
작년부터 우리 센터 상담실을 찾는 이주여성들 중에 위장결혼을 통해 입국한 여성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이전에도 위장 결혼이 간간히 있어왔다. 그동안 센터에서 경험한 위장결혼은 대개 두 가지 경우로 나타난다. 하나는 이주여성 당사자가 위장결혼이라는 것을 알고서 입국을 한 경우와 위장결혼인줄 모르고 한 경우다. 위장결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그것이 불법인줄 모르고 입국한 경우가 많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국제결혼 중개업체에서 한국에 입국해서 남편과 한 두 달 살다 외국인등록증이 나오면 집을 나와 취업해도 된다고 해서 국제결혼을 택한 경우가 있다. 다른 경우는 남편과 같이 살긴 하는데 실제적으로 혼인생활은 안해도 되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취업해서 살 수가 있다고 해서 한국인과 결혼을 할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알고 했건 모르고 했건 국제결혼 알선업자들에 의한 위장결혼 덫에 걸린 것이다.
이런 위장결혼이 발생하는 핵심에는 국제결혼알선업체들의 농간이 있다. 국제결혼중개업들이 중개비용을 챙길 목적으로 허위정보를 제공해서 위장결혼을 알선하는 것이다. 이런 허위정보에 의한 위장결혼 알선은 한국측 국제결혼중개업의 책임도 있지만, 이주여성 당사자 나라의 브로커들의 농간도 만만치 않다. 중개비용을 챙길 목적으로 자국여성에게 거짓정보를 제공해 위장결혼을 했을 경우 한국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그 결과 알게 모르게 위장결혼을 한 이주여성 당사자와 자기 아내의 입장을 모르고 결혼을 한 한국의 남편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된다.
위장결혼을 해 온 이주여성들은 본국에서 브로커들에게 들은 정보대로 빠르면 2,3개월만에, 또는 외국인등록증이 나오면 남편에게 “나 돈 벌어야 한다. 그래서 집을 나간다.”고 통고를 하고는 집을 나가버린다. 그렇게 나가면 남편이 가출신고를 해서 불법체류자가 된다거나 일 년에 한번 씩 체류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것을 모른 채 집을 나가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린다. 잡히면 당연히 강제출국 대상이다. 또 다른 위장 결혼의 경우는 한집에 살면서 부부생활을 거부하고 취업을 하겠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다. 정부나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영락없는 위장결혼이나 이주여성 입장에서는 중개업자의 정보대로 그래도 되는 줄 알고 한 국제결혼이다. 문제가 되어 남편이 알선중개업자를 찾아가면 중개업자는 이주여성이 거짓말한 것이라며 그 책임을 고스란히 이주여성 측에 떠넘겨버린다. 이주여성 당사자는 자기 마을의 아는 아줌마의 말만 듣고 결혼을 했다가 졸지에 위장결혼한 범법자 처지가 된다. 삶을 걸고 국제결혼을 결심한 한국남편이나 취업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알고 국제결혼을 선택한 이주여성 당사자 모두 국제결혼알선업자의 먹이가 된 셈이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진행되고 있는 위장결혼은 도를 넘어 아예 인신매매로 이어지고 있다. 얼마전 방영된 추적60분에서도 보듯이 위장결혼으로 인한 피해사례에서도 들어나듯이 노골적인 위장결혼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국제인신매매조직이 이주여성을 한국남성과 국제결혼시켜 주겠다고 속여서 한국에 데리고 와서는 기지촌이나 유흥업체에서 성매매를 시키고, 그 남편이라는 정체불명의 사람)일명 기둥서방)들에게 돈을 얼마씩 주며 여성을 감시하게 하는 일을 해온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런데 이 작태가 형태를 약간 변형해서 국제결혼중개업체에 의해 태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중개업자들이 한국에서 노숙자나 일정한 직업이 없거나 혹은 신용불량 위기나 빚에 몰린 남자들을 물색해서 3백만원에서 5백만원 정도의 돈을 주기로 하고 국제결혼을 알선한다. 물론 이 돈은 이주여성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베트남이나 네팔에서 한국에 와서 취업을 해 돈을 벌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일인당 일천만원에서 일천오백만원의 비용을 받고 소위 한국인 법적 남편을 알선해 준다. 따라서 결혼하는 당사자들은 앞의 경우와 달리 일백프로 자신들이 위장결혼을 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중개업자들의 허위정보제공과 착취가 발생한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네팔여성은 브로커에게 육백만원을 주고 위장결혼을 해서 한국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돈을 낸 것을 감췄다. 브로커가 자기에게 돈을 준 것을 발설하면 친정집과 이주여성 당사자가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한 중국 여성은 자기가 한국에 오면 법적인 남편과 동거를 하지 않아도 됨은 물로 2년 후에는 영주권을 얻어서 한국에서 계속 체류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랬는데 막상 와보니 법적 남편이 성관계를 요구하고, 일 년 마다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남편이 몇 백만 원 씩 돈을 요구하면서 돈을 안주면 비자를 연장해주지 않겠다고 해 하는 수 없이 돈을 주었다고 했다. 또 2년 있으면 영주권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것도 거짓말이었다는 것이다. 결혼 후 2년 있으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것을 영주권이 나온다고 중개업자가 거짓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매번 비자를 연장할 때마다 돈을 내야 하면 기껏 벌어놓은 돈을 법적인 남편에게 주어야 하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경우는 남편과 형식적으로만 사는 것으로 하고 아예 처음부터 공장 기숙사에서 일하다가 출입국직원의 단속에 걸린 경우다. 남편과 같이 산 흔적이 없어 위장결혼으로 적발 되었다. 한국에 온지 불과 6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올 때 브로커 비용으로 낸 팔백만원도 빚을 내어 와서 이자만 우선 갚고 있는데 돈도 벌지 못하고 추방당하게 되었다고 하소연했다. 돌아가면 갚아야 할 빚 걱정에 암담하다고 동료가 딱한 사정을 전했다.
지난 2월 3일 방영된 추적 60분 “가짜 신부, 가자 신랑-위장결혼의 덫”에서 보여준 베트남 여성들의 위장결혼 경우도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브로커에게 지불하는 액수도 엄청나서 1200만원에서 1500만원을 낸 경우도 있다. 위장결혼 해서 들어와서 남편과 같이 사는 흔적만 남기고 취업을 하는 경우, 아니면 한 지붕 밑에 같이 살면서 남남처럼 사는 경우도 있는데, 그 과정에서 비자를 연장할 때마다 돈을 뜯기는 경우도 상당하다. 한 사례의 경우는 처음에는 위장결혼으로 왔지만 남편과 마음이 맞아 실질적으로 결혼생활을 했는데 결혼을 알선한 중개업이 단속에 걸려 이 부부의 위장결혼이 들통이 나고 말았다. 그때 여성은 이미 임신중이었기 때문에 당장 추방은 면했지만, 해산 후 출국해야 한다. 그런데 돌아갈 수가 없다. 땅을 담보로 해서 빚을 내어 브로커비용을 내었는데, 그 빚을 무슨 수로 갚느냐, 또 아기는 어떻게 키우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이 경우 재작년 비록 위장결혼을 했더라도 실질적으로 혼인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사면해 준 판례가 있기 때문에 잘 하면 한국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될 가능성은 있는데, 아기를 기르노라면 취업을 하기 힘든데 그 많은 빚을 어떻게 갚아야할지 참으로 딱하다.
위장결혼이 금지되어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위장결혼을 해서라도 한국에 나와 돈을 벌어야 하는 개발도상국 이주여성들의 딱한 상황이다. 방송에서 인터뷰한 현지 여성들은 위장결혼의 폐해를 알면서도 그래도 길이 있으면 위장결혼을 해서라도 한국에 오기를 희망했다. 생존의 위기에 몰린 이주여성들은 경제적으로 자기 집안과 식구들을 위해 어디든지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그 일자리구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만 해도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서 이주여성들이 일자리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또한 가사노동자가 허용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주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일터는 제조업이나 식당등에 한정되어 있다. 그나마 중국동포나 고려인동포들만 식당에서 일할 수 있고, 제조업은 개성공단으로 들어갔거나 아예 개발도상국 현지에 공장을 세워 여성들의 노동이주 틈새를 막아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결혼이 여성들이 이주할 수 있는 대안이 된 셈이며,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도와야 한다는 다급함이 위장결혼도 불사하게 만드는 것이다.
위장결혼은 이주여성들의 덫이다. 누가 이 덫을 놓는가? 위장결혼을 알선해서 이익을 위하는 국제결혼중개업체들이다. 정부는 위장결혼을 해서 한국에 온 개발도상국 이주여성들을 단속하기에 앞서 덫을 놓는, 국제결혼중개업체들의 착취의 고리를 끊는 것과 노동이주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제도마련에 우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