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자신만만, 그녀들의 함성!
한국염/대표
지난 8월 19일에서 21일까지 제주도에서 2박3일간 <이주여성 당사자 활동가수련회>가 열렸다. 이 수련회에 참가한 이들은 서울, 충북, 부산, 전북, 전남, 대구 등 6개 지역에서 이주단체나 다문화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주여성들이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지난해부터 “변방에서 주체로”라는 주제 아래 이주여성 당사자 활동가 역량강화와 네트워킹을 위한 프로그램을 본부를 비롯한 6개 지부에서 실시했다. 프로그램은 강좌 40시간, 실습 48시간, 2박3일의 수련회 해서 총 100시간이었으며, 권역별로 10-20명 씩 총 200명이 참석했다. 제주에서 열린 이번 수련회는 2년 동안의 교육을 총 결산하는 자리인지라, 주최측에서는 모진 마음을 먹고 가족동반을 허용치 않았는데도 중국, 베트남, 일본, 몽골, 필리핀, 키리키스탄, 베로루시, 캄보디아, 태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볼리비아 출신 등 12개국에서 100명이나 참석하였다.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라고 해도 결혼이주여성의 조건상 2박3일 동안 아이와 남편을 두고 멀리 나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 동반은 안된다는 조건을 지켜 참가할 수 있었다는 것은 ‘활동가’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 또한 교육을 받은 이주여성들 중에 절반은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입지가 형성되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이주여성 당사자 활동가 전국수련회
이번 수련회는 이주여성들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전국적으로 처음 시도된 당사자 활동가 전국 수련회였다. 사실 교육 초기, 센터에서 보이던 이주여성들의 소극적이고 자신감 없는 모습들, 또 시댁 식구가 허락하지 않아서 못가는 사람들, 아이가 어려서 못간다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이번 수련회가 과연 성립될 수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내 걱정은 글자 그대로 기우였다. 그야말로 당사자들의 기와 끼가 유감없이 발휘된 그런 모임이었다.
이미 이주여성 당사자들의 활동가로서의 역량이 매우 높이 올라와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당사자 자신들이 갖고 있던 에너지가 분출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그 격려와 지지 속에 더 큰 에너지가 증폭되는 그런 벅찬 감동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 있었다.
이주여성 활동가로서의 정체성과 역량을 보여 준 활동가 사례발표
이번 수련회의 압권은 당연 이주여성당사자들의 활동사례발표였다. 활약상이 파워포인트, 동영상, 꽁트, 코미디 패러디, 말하기, 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되었다. 활동현장도 다양해서 이주여성이 처한 현실에 대한 고발, 이주방송국에서 기자로서 아나운서로서의 활동하는 현장, 통역상담사, 다문화강사, 쉼터 상담사로서의 현장보고, 지방선거 참가기, 활동가로서의 자신의 비전, 이주여성인권에 관한 수준 높은 활동사례가 발표되었다.
이 사례발표 가운데서 우수사례를 시상했는데 최우수 사례는 모 방송의 개그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이주여성인권보장위원회>, 우수사례는 <고추 안 떨어졌어요!> 가 선정되었다. <이주여성인권보장위원회>의 메시지는 이주여성을 불쌍한 존재로 보지 말고 한국인과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 이주여성이 당당하게 사는 그날까지 힘차게 노력하겠다 하는 것이었다. <고추 안 떨어졌어요!>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는 한국의 가부장문화를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장려상으로 이번 지방자치선거에서 도의원 비례대표로 나와 선거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발표한 사례가 뽑혔다. 예비정치가로서 결혼이주여성의 당당한 모습이 참가자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이 우수사례 발표는 내용과 표현방식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다른 출신국 활동가들의 발표를 보면서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고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받으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모임이 끝난 후 각 방에서 나눈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새롭게 활동가로서의 정체성과 활동 방향을 고민하는 자극제로서, “함께 있으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체험한 뜨거운 밤이 아니었다 싶다.
발산되는 에너지, 스스로도 놀란 자신들의 힘
둘째 날 오전에는 설문대여성문화센터의 초청을 받아 제주의 특산물인 빙떡체험과 천염염색 체험을 했다. 여성문화센터에서 제공한 ‘웃음치료프로그램’도 있었는데,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바람에 문화센터 관계자들도 이주여성들이 “이렇게 끼가 많으냐”며 깜짝 놀랐다. 강사로부터 사진 찍을 때 ‘김치’ 대신에 ‘고사리(고마워요, 사랑해요, 이해해요.)’ 하는 인사말을 배웠는데 시진찍을 때마다 ‘고사리’ 인사법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오후에는 중문해수욕장에서 파도타기를 하며 몸을 혹사시켜 저녁 캠프파이어 프로그램이 제대로 될까 걱정했는데… 웬걸 주최측의 걱정을 뒤엎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바람에 캠프파이어 진행을 담당했던 놀이패도 놀라 “이 사람들 오늘 해수욕 갔다 온 사람들 맞아?” 하고 감탄을 하고 말았다.
이열치열이라 했던가? “이주여성 활동가 여러분, 불처럼 뜨거운 열기로 이주여성의 밝은 미래를 위해 우리의 힘을 쏟읍시다. 자, 이제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주여성 파이팅!” 하는 대표의 말과 더불어 각 지역의 이주여성대표가 나와 장작불 더미에 불을 붙이자 운동장에 가득 찬 이주여성의 함성과 열기로 무더운 여름밤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강술래…’나 태어나서 그렇게 신난 강강술래는 처음’ 맛보았다. 불빛 속에서 운동장을 지칠 줄 모르고 가로지르며 휘젓는 이주여성들의 모습, 이렇게 끼 많고 열정있는 이들은 한국의 젊은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한국어와 한국문화 배우는데 지쳐있는 이주여성들에게 당당하게 자신감을 갖고 자신들의 끼와 열정을 쏟을 분출구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이주여성들에게 멍석이 필요하다.
제주지역 이주여성들과의 만남, 그들의 활동상을 듣다
이주여성 당사자 수련회 장소가 제주도인 것을 안 이주여성들의 첫 반응은 그야말로 환호성 그 자체였다. 실제로 100명의 이주여성 중에 제주도를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단 2명뿐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설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수련회를 단순히 관광지로서 제주가 아니라 제주지역의 관련 기관을 만나고, 제주지역의 이주여성들의 활동을 들으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들 격려하는 시간도 함께 마련했다.
제주 이주민센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복지관의 이주여성들을 초청했는데 활동가들의 사례발표 시간과 이주여성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격려도 되고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사례발표를 하는 이주여성들이 단순히 현장에서 근무하는 활동가가 아니라 일년동안 <이주여성이 활동의 주체>가 되는 집중교육을 받은 결과라는 것을 알고 주인의식의 중요성과 활동가 교육에 대한 필요성도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제주 지역 활동가들의 참여는 단순히 제주가 수련회 장소로서만이 아니라 현지 지역 활동가의 중요성, 연대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된 의미있는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분출되고 연결된 당사자 활동가들의 전국 네트워크
매일 밤 프로그램이 끝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방별로 모여서 뒷풀이가 열렸다. 이렇게 뒷풀이를 여는 과정에서 특별히 마지막 밤에는 나라별로 모여서 이번 기회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이주여성활동가들의 힘을 모으는 기회로 삼자는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주여성 활동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어떻게 활동가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을까? 등등 아이디어를 내고 의견을 나누더니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이주여성당사자 활동가 카페>를 개설하면 각 지역별 대표를 뽑아 카페를 운영하겠다고 제안을 하는 그룹도 있었다.
또 이주여성 활동가 전국수련회를 해마다 열어달라는 제안도 했다. 이런 제안을 받으면서 이제 <이주여성 활동가 연합>이 결성되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이런 기대와 더불어 이렇게 물이 오른 이주여성당사자들의 요구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새로 하나 생겼다. 이 이주여성당사자 활동가 수련회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은 이주여성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바람이기도 하다.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온 한국이 들썩이며 정부와 기업 할 것 없이 예산을 들이는데, 그 많은 돈 중에 진정 이런 일을 위해 쓰라고 사업비를 주는 곳은 어디 없있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더니.. 그래도 나는 이 떡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번 <이주여성당사자 활동가 전국 수련회>를 통해서 위풍당당, 자신만만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주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변방에서 주체로’ 옮아가는 이주여성의 발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회를 제공하면 무한한 가능성을 표출하는 이주여성들.. 더도 덜도 말고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여성들이 모두 이들만 같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