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을 개발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염/대표
지난 11월 1일에서 11월 5일까지 아테네에서 열리는 “이주와 개발 ”이라는 주제로 정부 간에 열리는 Global Forum on Migration and Development(GFMD) 회의가 있었습니다. 이 회의는 이주가 송출국과 유입국의 개발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면서 보다 나은 환경과 정책을 만들기 위해 마련된 회의입니다. 그러나 송출국과 유입국의 이해관계가 뒤엉켜 이주민의 인권과 삶의 질은 뒷전에 밀리곤 합니다. 이에 민간 이주단체들이 국가 중심의 개발논리에 대항하고 이주민의 기본권과 사회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반영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국가 간의 회의가 열리는 또 다른 한편에서 “전지구적 민중행동(People’s Global Action)”을 엽니다. 작년의 경우 마닐라에서 개최된 민중행동에 한국의 “외국인 이주노동․운동협의회” 회원단체들이 대거참여하여 열띤 민중대항집회를 연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현지 이주단체들의 사정으로 집회 보다는 워크숍을 중심으로 열렸습니다. 이번 워크숍의 주요 주제는 “경제 위기가 이주노동자에 미친 영향”이었습니다. 아시아 여성 이주의 대부분이 가사노동이주이다보니 자연히 가사노동자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여성 이슈는 작년 GFMD 직전에 열렸던 ” 여성, 이주, 개발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다루어진 주제였던 가사노동자, 이주여성들의 인권과 건강 등 사회권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의 고용허가제도 도마 위에 올랐고요. 워크숍의 세부 주제는 현재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 이주의 주요 이슈로 제기되는 다섯가지 쟁점들이 다루어졌습니다. 그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1)2008년 9월 세계 경제위기 이후의 이주정책과 환경의 변화, 2) 문화적 통합의 장애물로서의 인종주의, 외국인혐오증 및 차별이슈제기,3)재통합과 귀환프로그램 담론, 4)국경정책과 경류및 통과 이주(Transit Migration). 이런 쟁점을 갖고 어떻게 이주여성의 인권을 보호할까 하는 대안들을 국제협약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ILO세계노동협약과 관련하여 2011년에 가사노동자의 노동권에 대해 협약에 포함해 줄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이었다. 가사노동자의 인권문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세계 이주사회에서 가사노동이주를 용인하지 않고 있는 한국의 참가자는 소외자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아무튼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끝없이 다양한 주제로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위 행동은 단 한번 아테네 대학 광장 앞에서 캠페인을 벌였을 뿐입니다(나중에 들으니 GFMD에 반대하는 대항집회가 하루 저녁 크게 열렸다고 하는 군요). 솔직히 이주의 문제에 대해서 보다 깊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닷새 동안에 진행된 워크숍 보다는 간간히 체험한 아테네에서 본 이주민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첫 번 째 경험은 언어에 대한 것입니다. 아테네는 그리스의 수도로서 그리스말을 씁니다. 간간히 영어가 같이 씌어져 있긴 하지만 당연히 모든 글자가 그리스어로 씌어있지요. 이 그리스어를 보면서 이주여성들의 고충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신학교에서 그리스어를 배웠기 때문에 40년 가까이 되었어도 글자를 대충 읽을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읽긴 읽는데 뜻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라고는 지하철 입구에 씌어있는 엑소더스(exodos) 즉 ‘탈출’이라는 의미의 단어 하나입니다. 그나마 이것은 ‘출애급’을 엑스도스라고 하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일 뿐입니다. 가는 곳 마다 이런 답답함에 부딪히면서 우리 센터에 나오는 이주여성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센터를 찾은 여성들 중에 읽을 줄을 알면 한국어를 안다고 대답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막상 뜻을 물어보면 하나도 모릅니다. 그리스어 글자를 읽기는 읽으면서 뜻을 몰라 답답함을 겪으면서 한글을 읽기는 읽어도 뜻을 모르는 이주여성들이 얼마나 답답할가를 톡톡히 경험한 셈입니다. 그들의 고통을 몸으로 인지하게 된 것도 나름대로 수확이라고 봅니다.
그리스에서 얻은 또 하나의 경험은 이주한 사람들의 입장과 위치는 모든 나라에서 똑같다는 것입니다. 회의를 마치고 밤에 숙소에 들어오면서 우리네 명동에 해당되는 신타그마라는 광장에서 전철을 내려 그 일대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름답게 보이는 한 건물의 정원 한쪽에서 단식투쟁이라는 현수막을 걸고 있는 천막을 보았습니다. 이란과 파키스탄에서 온 노동자들이 난민을 신청했는데 기각당해 항의하는 농성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름다운 곳에 천막을 치고 있어도 아무도 이들을 막는 사람이 없어 참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림도 없겠지요. 며칠 후 우리가 데모하러 가서 알게 된 것이 그 자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그곳은 아테네 대학으로서 헌법이 발표된 곳이며, 고대 아테네 도시국가 시절부터 억울한 사연이 있는 사람이면 공개적으로 자기 의견을 말하고 청원을 하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민주 헌법을 만든 그런 기념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누구도 막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 부러웠습니다. 그 다음날 보니 약 천명이 넘는 그리스 사람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도로를 점령하고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론 이렇게 도로를 막는 시위는 집회허가를 내야합니다. 그날의 시위는 노조가 중심이 되어 하는데, 청년실업문제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에서도 우리처럼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해서 1200만명 의 그리스 인주 중에 200만의 청년실업자가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안정된 일자리, 덜 위험한 일자리 제공”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는데, 우리 젊은이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왔습니다. 이 집회를 보면서 다른 한쪽으로 우려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일자리가 없는 그리스인들이 그 화살을 이주노동자들에게 겨냥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에서도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많은 이들이 “외국인노동자가 자기들의 일자리를 뺏는다, 외국인을 몰아내자”, 라고 이주노동자에게 적대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일을 합니다. 그리니 이주노동자가 한국인의 일자리를 뺏는 것은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민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면 그 난국을 피하기 위한 사회심리학적 돌파구가 필요, 그 분노의 대상은 항상 이방인, 특히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와 난민에게 향해지곤 합니다. 이지러진 소상이지요.
또 하나는 이주민들의 삶의 거처에 대한 문제입니다. 숙소에서 회의장이 전철로 한 정거장인데 가끔 걸어서 오갔습니다. 오가는 도중에 보니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거리가 있었는데 슬럼가였습니다. 누군가 아프리카와 인도 사람들은 도시 끝 쪽에 살고 있고 , 그곳은 이주민들이 많기 때문에 더 슬럼화되어 있다고 해서 한국에 돌아오기 마지막 날 전철을 차고 종점 쪽으로 가보았습니다. 정말로 아프리카, 인도, 파키스탄 등지의 사람들이 길거리에 서서 무엇인가를 팔고 있었습니다. 길에서 가방을 파는 보따리 장사들은 거의가 아프리카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한번은 커다란 보자기에 가방을 늘어놓고 장사를 하고 있던 흑인이 경찰이 보이니까 냅다 보자기를 움켜쥐고 뛰는 모습을 보면서 이주민들의 불안정한 삶의 자리는 전 세계가 모두 똑같다는 것을 확인한 셈입니다.
그래도 유럽에서는 종종 일정기간이 지나면 장기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사면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고 해서 참 부러웠습니다. 우리 한국은 언제쯤 장기화된 미등록노동자를 합법화하까요? 얼마 전 18년 동안을 한국에서 미등록노동자로 살다가 단속에 걸려 추방된 미누가 생각났습니다. 청춘을 한국에서 보낸 이들, 자국문화보다는 한국문화가 더 익숙한 사람들, 친구들도 다 이곳에 있는 데, 이들이 한국에서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요? 또 하나 부러웠던 것은 비록 부모가 미등록노동자라고 해도 이곳에서 미등록 아동들은 우리 한국보다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중행동(PGA)’ 개막식에 한 필리핀 학교 어린이들이 나와서 그리스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필리핀 노래도 부르고요. 이 아이들은 필리핀문화학교에 대니는 어린이들이라고 합니다. 학교 교장선생님은 필리핀 여성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스 정부가 특별히 지원하는 것은 없지만, 아동국제협약을 준수해서 아이들을 볼모로 부모를 단속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미등록 자녀에 대한 태도는 많이 나아졌지만, 단속 기간이 되면 아이들을 외출 못하게 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입장이 참 안타깝게 여겨졌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에 부모는 잡히고, 아이들은 남는, 그래서 국제이산가족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지요. 여기서 태어난 아동들에게는 영주권을 주고, 아동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하니 그 부모와 같이 살도록 하면 안 될까요? 너무 감상적이라고 비판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이주아동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절실해집니다.
“이주와 개발”이라는 주제를 놓고 정부간 회의나 시민단체들의 모임을 보거나 이주가 이주를 보내는 개발도상국이나 받아들이는 개발된 나라 양편 모두의 개발에 기여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양쪽 나라들에서 이주노동자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명분하에 도구화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더 이상 이주노동자를 개발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고 대우하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