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과 함께 이주여성의 마중물이 되기

                    

                                                                     한국염


재작년부터 우리 센터가 깊은 생각 끝에 추진하고 있는 한국어교육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바로 결혼이주여성들이 자국에서 처음 온 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센터에는 한국어 온지 한 두 달 밖에 안 되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많이 찾아온다. 어디서 센터에 관한 정보를 들었는지, 남편들이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아내를 데리고 온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밖에 모르는 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데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어휘야 시간이 지나면 익혀지겠지만 문법을 익히기에는 매우 어렵다. 처음에는 한국어는 한국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는 것이 원칙처럼 머리에 박혀 있어서 처음부터 한국인 자원교사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도록 했다. 허긴 나도 독일에서 독일어를 배울 때 독일어 선생님에게 기초부터 배웠으니까 이런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또 한국어 교사에 의한 한국어수업을 고집한 다른 이유 하나는 한국어 어투를 제대로 익히려면 한국사람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어 문법은 이주여성들에게 장벽과 같았다. 기초 문법을 익히는 것조차 매우 힘들어 했다. 그래서 머리를 모아 생각한 것이 한국어를 어느 정도 익힌 결혼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 교사 교육을 해서 자국에서 처음 온 이주여성들의 한국어 기초를 가르치도록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센터에서 한국어능력시험반이나 고급반에서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는 결혼이주여성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훈련을 했다. 드디어 훈련 중도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끝까지 남은 사람들이 여성들이 선생님이 되어 자국여성들에게 한국어 기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한 번에 두 시간 씩 8차례 내지 10번 즉 16시간에서 20시간을 가르치도록 배정했다. 그랬는데 기대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이주여성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로 배우는 것보다 자국 말로 설명을 들으면서 배우니까 훨씬 알아듣기 쉽고 이해력도 빨라졌고 한국어를 인지하는 능력도 증진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주여성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을 절대반다한다고 기염을 토한다. 한국어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이주여성의 입장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느냐고. 그렇다고 우리 센터에서 이주여성 당사자에 의한 한국어교육이 모든 과정에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기초반에만 적용하고 있다. 기초반 이상이 되면 이주여성이 감당하기도 힘들지만, 각 나라가 갖고 있는 각기 다른 발음과 독특한 억양이 있어 한국어를 계속 가르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배우는 이주여성들이 그 억양과 발음들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이주여성들이 자국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도록 한 것은 이중적인 효과가 있다. 기초반 이주여성들에게만 좋은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이주여성 당사자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우리 센터에서는 훈련받은 이주여성들을 부를 때 깍듯이 “선생님”이라고 호칭한다. 처음에는 우리가 ”선생님“ 하고 부르면 매우 쑥스러워 하고 수줍어한다. 차차 시간이 가면 이제까지 배우는 피교육생으로만 있다가 교사가 되어 ”선생님“으로 불리면서 자긍심이 향상되는듯하다. 학생들에게도 선생님으로 불리면서 본인 나름대로 선생님으로서의 자의식을 갖게 되면서 이에 걸맞게 가르치는 준비를 하게 되고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자신의 한국어 능력도 증진되는, 이중의 효과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몽골 선생님 ‘엔마쉬’ 씨의 힘찬 목소리가 들린다. 한국에 온지 석 달 된 몽골 여성 ‘테르빌’씨에게  한국어 기초 보충수업을 하기 위해서다. 엔마쉬 선생님은 자기가 맡은 10시간을 다 마쳤는데, 제자 테르빌씨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예정된 진도를 다 마치지 못했다며, 자기 스스로 원해서 보충수업을 더 해주고 있다. 센터에서 하고 있는 ‘365일 멘토되기’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는 엔마쉬 씨의 꿈은 열심히 배워서 몽골 후배들에게 좋은 언니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괜찮은 일자리에 취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센터에 오는 것은 다 이를 위한 준비란다.  벽 너머로 들리는 엠마쉬 선생님의 몽골어, 따라 읽는 테르빌씨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엔마쉬씨가 꾸는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안녕하세요? 밝은 목소리로 들어서는 여성은 베트남 출신 은서씨다. 은서씨 역시 우리 센터에서 다문화강사와 한국어기초교육 교사 훈련을 받았다. 지금은 시가 하는 글로벌 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은서 씨처럼 우리 센터에서 훈련받은 이주여성들이 계속 우리 센터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이들 중에는 자기가 사는 동네 기관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또 이주여성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직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우리 센터에서 훈련받았으니까 곡 우리 센터에서만 활동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이주여성들이 훈련을 받아 여기저기서 기를 펴고 자기의 꿈을 펼치며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려 거기서 뿌리를 박고 예쁜 꽃을 피운다면 거기서 의미를 찾는다. 우리 센터의 존재의의와 역할은 이주여성의 마중물이 되는 것이니까.


내가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수돗물이 아니라 펌프로 물을 길었다. 펌프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않을 때는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위에서 물을 한바가지 붓는다. 이 물을 마중물이라고 한다. 펌프로 물을 퍼 올리려면 한 바가지쯤의 마중물이 필요하다. 우리센터는 이주여성에게 바로 이 마중물이 되고 싶다. 그리고 우리센터가 이주여성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서는 센터가 고갈되지 않도록 하는 마중물이 필요하다.  이주여성들이 주변에서 중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마중물 한바가지가  필요하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power of one”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장엄한 빅토리아 폭폭도 바로 한 방울의 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를 변화사켜 가는 이야기다. 오늘 우리사회에서 이주여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막대한 물량이 아니라 바로 한바가지의 마중물이다.  센터를 지원하고 후원하는 사람들이 부어주는 한 바가지 물, 그 물이 센터의 마중물이 되고, 이 물을 받아 우리 센터가 이주여성의 마중물이 되고, 또 우리 센터에서 교육받은 이주여성들이 자국 여성의 마중물이 되고, 그래서 그 마중물이 끊임없이 이어져 마르지 않는 물줄기가 된다면 이주여성들이 살만한 세상이 오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