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들과 함께 한 창덕궁 나들이

-이지현 선생님 글

초등학교 때 아빠가 창경원 데려가준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이미 예~~~전에 궁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뜻하지 않게 들어가게 되었던 창경궁..

국사 교과서에 나온 사진이랑 똑같은 건물이 많아서 놀랍기만 했던 덕수궁…

국립박물관이 허물어지기 전 처음 가봤던, 만원짜리 뒷 그림인 경회루의 아름다움에 더욱 즐거웠던 경복궁…

서울의 궁들은 지방에서 유학생활을 온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꼭 한번은 가봐야 한다는 나 혼자만의 역사적 의무, 그리고 왠지 그곳에 가면 정신적으로 평안함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서울 상경 첫해 안에 가볼 수 있는 궁들은 다 가 보았던 것 같다.

항상 책을 통해서나TV로만 봐왔던 모습들을 실제로 본다는 즐거움도 즐거움이거니와 그 고즈넉한 분위기, 깨끗하게 정돈된 주위환경은 충분히 감동스러웠으며 지긋하게 나이드신 커플들, 한손으로는 유모차 끌고 다른 한손으로는 팔짱을 끼고 걷는 젊은 부부, 아들 딸 둘 쯤 데리고 소풍나온 가족들, 궁의 정적을 깨뜨리는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던 웨딩촬영 중인 예비부부들의 모습에서 전해지는 행복감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창덕궁에 가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언젠가 누군가의 창덕궁은 아무때나 들어갈 수 곳이 아니라는 ! 말에 아예 가볼 작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인 듯 하다. 그래서 이번 창덕궁 나들이는 나 역시도 기다려지는 행사였다.

나들이 날인 11! 월 7일은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더 맑을래야 맑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아름다운 날이였다. 조금 늦게 오신 분들이 계셔서 ! 계획했던 약속시간보다 약 한시간 반가량 일정이 늦어졌지만, 나와 우리 태국 아줌마들 4명, 센터의 게로피씨, 이화여대 봉사동아리 친구들 그리고 중국에서 오신 홍씨 커플과 세겹의 옷으로 중무장한 그녀의 아이인 보휘 이렇게 먼저 출발하였고, 베트남 분들은 이후에 창덕궁 안에서 만나게 되었다.

다른 궁들과는 다르게 궁에 들어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또 아름다운 안내원이 장소 곳곳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 한 곳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다. 아쉬웠다면 아직 한국말에 익숙치 않은 우리 학생분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건데,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조차 아름다운 풍경들이 이를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았을 듯 싶다.

한 시간 반 남짓 궁궐을 돌아보고 모두는 인사동으로 이동하였다. 우리의 이쁜 에이브 언니들이 식당까지 이미 정해두었다고 해서 고픈배를 잡고 즐겁게 인사동까지 걸어갔다. 식당 메뉴는 여러가지였지만 보리밥과 순두부찌개로 통일하였고, 보리밥에는 갖가지 나물이 먹음직스럽기 그지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원하는 장소로 이동함으로써 그 날의 일정은 끝을 맺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함께 했던 태국 학생분들에게 그날의 야외수업에 대해 물어봤더니 그 전에 다른 궁궐들을 본 적이 있었던지 솔직히 그분들께는 그다지 새로운 경험은 아니였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수업 시간때 서로 체육복 차림에 아주 편한 모습만 보다가 화창한 야외에서 산뜻한 복장으로 만나서 함께 나누었던 시간은 확실히 새로운 즐거움이였다.

이화여대 에이브  친구들 덕분으로 원만하게 모든 일정이 진행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우선 시간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모든 일정이 한 시간 넘게 지연되었던 점, 그리고 한 시간 이상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분과는 함께 일정을 진행하지 못했던 점, 처음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였음에도 서로 간의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시간과 사귐의 시간이 부족했던 점, 출산이 얼마 남지 않은 분이 두 분이나 계셨는데 그 분들에게 1시간 30분 이상 걷는 것이 무리인 듯 보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아름다웠던 창덕궁의 정원, 울긋불긋 완벽 그 자체였던 단풍, 깔끔하고 정갈했던 비빔밥이 나로 하여금 다시 한번 다음 나들이를 기대하게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