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성명서>
이주여성이 가정폭력으로 계속 죽어도 반응이 없는 한국사회, 우리는 두렵습니다.
저희는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여성들입니다.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서 상상한 삶은 사랑하는 가족과 꾸리는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이렇게 죽으려고 오지 않았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3번째입니다.
지난 3월 7일에는 베트남 여성이 강원도 정선에서 정신병을 앓는 남편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6월 30일에는 강원도 철원에서 한국계 중국 여성이 남편에게 맞아 4일 동안이나 뇌사 상태로 있다가 7월 4일에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7월 2일에는 또 다른 한국계 중국 여성이 남편이 휘두른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자꾸만 발생합니까?
한국에 살고 있는 모든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이런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나에게도, 내 친구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나도, 내 친구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두렵습니다. 오로지 남편 하나 믿고 왔는데, 가장 가깝게 나를 지켜줘야 할 남편에게 죽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분노와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 이주여성들의 두려움과 다르게 한국 사회는 너무나 조용합니다.
이주여성이 남편에 의한 폭력으로 죽어갈 때마다 남편의 도움없이 이주여성 스스로 체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고, 국제결혼 하는 남성들의 신원을 확실히 하여 위험할 수 있는 남성의 결혼을 막아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가정폭력으로 신고해도, 경찰이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느낍니다. 전반적으로 한국사회는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낮습니다. 평소에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해도 이를 흔한 ‘부부 싸움’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큰 잘못입니다. 그런 인식이 퍼져있기 때문에 이런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이 계속 생겨납니다.
우리, 이주여성들은 다음과 같이 요청합니다.
이주여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 주십시오.
일부 한국 남성들이 결혼에 대한 책임의식 없이 결혼할 수 있는 상황은 막아야 합니다. 알코올 중독, 정신병력, 폭력 등 이주여성에게 위협이 되는 남성들의 결혼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결혼이주여성이 폭력 상황에서도 자신의 체류 문제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주십시오. 이주여성이 아무리 결혼에 대한 의무를 다해도 여성 스스로 체류권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은 바뀌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죽음을 묵인할 생각입니까?
가해 남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합니다. 가정폭력에 대해서도 부부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로 강력하게 대응해 주십시오. 한국의 법적, 제도적 절차를 잘 알지 못하는 이주여성들입니다. 한 번 신고하더라도 강력하게 조치하여 주고, 이주여성이 안전하게 상담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적극적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이주여성을 이웃으로 둔 한국 시민들께도 호소합니다. 주변에 이주여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이웃에서 폭력 상황을 알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신고해 주시고,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십시오.
더 이상 결혼으로 와서 남편에게 죽는 여성이 없어야 합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주여성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이주여성 관련 정부 부처는 물론, 한국사회와 시민여러분 모두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를 죽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2012. 7. 18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 추모집회 참가 이주여성들
<이주·여성 관련 단체 성명서>
또 다시 연이어 발생한 남편에 의한 결혼이주여성 살해 사건,
한국사회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습니까?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였습니다.
지난 6월 30일, 강원도 철원의 한국계 중국여성(김영분 31세)이 남편의 폭력으로 4일동안 뇌사상태에 있다가 7월 4일 사망하였고, 지난 7월 2일에는 한국계 중국여성(리선옥 59세)이 서울 강동구에서 남편의 칼에 찔려 살해당했습니다. 이 두 사건을 보면 결혼이주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인권침해의 실상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첫째, 일부 결혼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남성이 국제결혼을 하여 결혼이주여성을 괴롭히는 경우입니다. 피해 여성 故리선옥씨는 2005년 9월 가해 남편과 재혼으로 한국에 입국하였습니다. 7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남편은 술을 먹고 지속적으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또 다른 피해 여성 故김영분씨는 자녀 4명과 시부모와 생활하면서 무직인 남편을 대신하여 식당, 가게 등에서 일하여 가족을 부양해 왔습니다. 이 두 여성은 실질적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헌신적으로 살아왔습니다. 반면 이들의 남편들은 모두 무직으로 알코올에 의존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아내에 대한 폭력을 지속적으로 일삼아 왔습니다. 이는 결혼이주여성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착취와 폭력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둘째,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조선족 여성에 대한 일그러진 상입니다. 살해당한 두 여성은 모두 한국계 중국인으로, 한국어가 가능했기 때문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지원기관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 고립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故리선옥씨의 가해 남편은 여성이 외부 접촉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심지어 한국에 살고 있는 아내의 동생과 연락하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아내의 휴대폰 사용까지 통제하여 아내가 사용한 통화 내역을 감시하는 등, 아내의 생활 일반을 통제하며 폭력을 행하였지만, 이 여성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소위 ‘조선족 여성에 대한 혼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분위기에 밀려 자신의 성실한 혼인 생활을 증명하기 위해 경제적 착취와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故김영분씨 역시 친언니와 남동생이 한국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생활에 충실하고자 자신의 어려움과 학대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무참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셋째, 남편에 의해 자격을 보장받는 체류와 국적 시스템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기위해서는 국적이나 영주권을 취득해야 하는데, ‘국적’이라는 말만 꺼내도 이를 빌미로 여성을 통제하고 학대하는 남편으로 인해 故리선옥씨는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기간이 충분이 지났음에도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습니다. 결혼이주여성 스스로 안정적인 체류와 국적 취득을 할 수 없게 만든 한국의 국적 ·체류제도가 오늘 故리선옥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또 다른 가해자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넷째, 가정폭력 피해에 대처하는 경찰들의 잘못된 대처행위를 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故리선옥씨가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것을 알게 된 동생은 언니가 폭력을 당했을 때 두 번이나 경찰서에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경찰은 동생에게 “가해자 구속을 원하느냐, 부부 관계에서 동생은 제3자이니 빠지라.”는 말을 했을 뿐,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지원받을 수 있는 관련 기관이나 이주여성 폭력 피해 쉼터 안내 등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다섯째, 가정폭력에 대한 주변 이웃을 비롯한 한국 시민들의 무관심입니다. 故김영분씨의 가해 남편이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마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웃 주민들은 물론, 같이 살고 있는 시부모는 故김영분씨의 상황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가정폭력을 ‘부부싸움’으로 사소하게 인식하는 한,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없습니다.
피해 여성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직면한 셈이었습니다. 평소 결혼이주여성이 학대 사실을 말하지 못하거나, 설령 드러내더라도 관련 기관, 이웃에서 적절한 대응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결과적으로 오늘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3월 정선에서 한국인 남편에 의해 베트남 여성이 살해당한지 불과 세 달 후에 또 다시 2명의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국 정부의 다문화가족 지원 정책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까?
이번의 사건은 한국사회 국제결혼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모순을 망라하여 보여줍니다. 초혼의 젊은 이주여성이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한국인 2세를 낳고, ‘다문화 가족’을 형성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에 두고 있는 한국의 다문화정책에서 고연령의 재혼 이주여성은 또 다른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음을 故리선옥씨 사건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계 중국인의 재혼 비율이 40%대를 육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여성들에 대한 막연한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를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는 한국계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사회에 정착해서 잘 살 수 있도록 하기보다는 이번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끌 여지가 많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실질적으로 한국인 배우자를 통해서만 국적이나 영주권, 체류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불평등한 제도는 결혼이주여성이 안전하게 한국에 살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다문화가족’의 불안정성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단속하고 경계하겠다는 기조로 만든 제도 하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은 ‘가족’에 함몰되어 경제적 착취와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위장결혼’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한국인 배우자가 우선이라는 입장에 서서 결혼이주여성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방관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가정폭력으로 사망하는 이주여성의 가해자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모순을 내버려둘 것입니까? 더 이상 남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이주여성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2년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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