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에게 희망이고 싶습니다!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지난 늦가을, 전북지역에 있는 여성단체들이 이주여성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어떻게 네트워크를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워크숍을 실시했습니다. 이 모임에서 국제 결혼한 이주여성들의 실태와 과제에 대한 발제를 맡아 전주로 내려갔습니다. 때마침 전북 농촌교회목회자들이 쌀 개방문제를 가지고 단식농성 중이라 그곳을 방문하고 저녁 집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집회를 보고 엄청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 3백명 정도가 모였는데, 참석자의 대부분이 할머니들이었습니다. 전주라는 도시에서 집회를 하는데도 말이지요. 그 모습을 보면서 머지않아 농촌문제 시위현장에는 이주여성들만 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들으니 전북 어느 마을에서 열 살 미만의 아기가 동네 통 털어 3명인데, 그 세 명의 어린이가 모두 국제 결혼한 가정의 자녀들이라는군요.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던 동네에서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리자 마을이 온통 축제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어느 마을에서는 몇년만에 아기가 출생하여 군수가 선물을 사들고 방문했다는 소리도 들리고요. 그렇다고 모든 동네에서 다문화가정의 아기들이 환영받는 것은 아니지요. 어느 마을에서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나가면 “튀기”라거나 ‘잡종“이라고 비웃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려대어 할머니들이 속상해서 아예 손자, 손녀들 외출을 못하게 한답니다. 놀려대는 아이들은 자기의 부모들이 하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것이겠고요. 머지않아 우리네 농촌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로 채워질텐데, 어느 때 가서야 이런 차별적인 언행이 멈출지 모르겠습니다.
그날 밤 정읍에 있는 친지 집에서 잤습니다. 다음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내장사를 들렸습니다. 지난주가 절정이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늦가을 단풍이 아름다웠습니다. 내장산 단풍 가로수가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단풍만 이어지는 숲길이 아니라 간간히 단풍 사이로 섞인 상록수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단풍만 있는 숲 보다는 초록과 노랑이 함께 섞인 숲이 훨씬 좋았습니다. 겨울이 되면 눈으로 덮인 산도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겠지요. 들녘에 피어있는 꽃들 역시 다양하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내장산에 사철 단풍만 덮여있다면 매력도 떨어지지 않을까요?
우리는 참 모순되게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꽃이나 풀, 자연은 다양한 것을 좋아하면서, 하늘의 무지개는 한 색깔이 아니라 일곱 빛깔 무지개를 좋아하면서 왜 인종은 한 품종만 선호하는 걸까요? 우리 역사에 한 번도 단일민족이던 때가 없었는데, 우리 안에 섞여있는 그 많은 중국성씨는 어쩌고 단일민족이라고 우기며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걸까요? 자랑하는 것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마는, 단일 민족임을 내 세워 다른 민족에게 배타적이며 차별을 하는 것이 문제겠지요.
작년 12월 10일, 제57회 세계 인권의 날에 이주여성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계인권선언 1조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우리 모두는 이성과 양심을 가졌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자매애의 정신으로 행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2조에는 “피부색, 성별, 종교, 언어, 국적, 갖고 있는 의견이나 신념들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고 선언함으로 어떤 경우라도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류의 평등성을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조항은 역설적으로 인류 사이에 차별이 있음을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차별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 30만의 이주여성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나와 인종과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 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와 차별을 당하며 삽니다. 이들은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코리안 드림을 갖고 온 이들입니다. 이들의 이주노동을 통해서 그들의 나라가 개발되고 그들의 가정이 보다 나은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단순히 돈 벌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나라 발전의 역군이며 자기 가정의 행복을 지켜내는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노동자들로 한국에 와서 일하고 돈 벌어 고향에 보내는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한국인과 결혼해 들어 온 이주여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과정이 인신매매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은 분명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꿈을 안고 한국에 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도착하면 이들이 꿈꾸던 한국은 이들에게 꿈의 나라가 아니라 상처를 주는 나라로 변해버립니다. 한국인들의 인종편견, 결혼 때 돈 든 돈을 “돈주고 사왔으니 내 맘대로 해도 좋다”는 남편들의 잘못된 인식, 우리나라 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함부로 해도 된다고, 돈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잘못된 가치판단 등등…이런 한국인들의 편견과 차별, 무시 속에서 고통을 느끼는 이주여성들 많습니다.
한 사회의 인권지수 평화지수는 그 나라에서 가장 차별받는 계층의 실태로 가늠한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주여성은 우리 사회의 인권과 평화의 잣대입니다.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 속에서 고통 받는 이주여성들의 짐을 가볍게 해주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비단 이주여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울림이 자연의 질서라면 우리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이들을 배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공동체적 사고를 하는 것은 지구화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기도 합니다. 이주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관심과 돌봄, 참여는 폐쇄적인 우리 사회를 열린사회로 구원하는 일입기도 합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이주여성들과 함께 조촐한 성탄축하행사를 했습니다. 성서에 의하면 아기로 오시는 메시야는 “어두움에 처한 이들에게 빛으로, 희망으로 오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저는 2005년 크리스마스에 예수께서 고통 받는 이주여성들에게 희망으로 오셨으면 좋겠다고 빌었습니다. “유대인과 그리스인이, 주인과 종이, 남자와 여자가 하나” 라는 갈라디아 3장 28절의 성서 말씀처럼 인종차별, 계급 차별, 성차별이 없는 차별없는 세상, 평화 세상이 열리기를 기도했습니다.
2006년 새해 벽두에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희망을 기원했을 것입니다. 저 역시 희망이 있습니다. 2006년에는 여성이주노동자들이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자기가 일한 만큼 대접을 받는 세상! 국제결혼을 하여 이 땅에 들어와 사는 이주여성들이 아내대접, 며느리 대접을 제대로 받는 세상! 성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여성들이 더 이상 착취당하지 않고 자기가 일하고 싶은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세상! 이주여성들의 자녀들이 기 펴고 살 수 있는 세상! 이주여성들이 꿈꾸었던 꿈의 나라가 한국 땅에서 현실로 이루어지는 그런 희망의 꿈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주여성인권센터가, 우리 한국인들이 이 땅에서 고통 받는 이주여성들의 “희망”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