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의 지도력, 다문화사회의 바로미터다. 
                       

                                                                                                  한국염/대표

2011년 새해를 맞는 지금 한국사회는 바야흐로 결혼이주자 18만 명 시대를 맞고 있다. 그동안 결혼이주여성은 코리안 드림을 갖고 한국인과 결혼해서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소위 정상가족의 틀이 아니라 ‘다문화가족’이라는 별도의 호칭을 지닌 채 사회통합의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 이해를 공부해야 하는 교육대상자로, 사회복지 수혜자로, 인권피해자로 자리매김되며 한국사회에서 주변부로 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한국사회의 주변부에서 맴돌던 결혼이주여성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제는 한국사회 각계각층에서 지도자로 부상하며 중심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경찰관과 행정공무원을 비롯해서 도의원 등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도력을 배출하며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0년 다문화사회를 말하는 한국사회에서 눈여겨 볼 것은 이주여성의 지도력 진출이 눈에 띠게 가시화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큰 화두는 결혼이주여성이 도의회 의원으로 진출한 것이다. 몽골출신의 결혼이주여성 이라(33살)씨가 한나라당의 공천으로 귀화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6월 2일 실시된 지방의회에서 경기도 비례대표 도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귀화외국인 1호 정치인이 탄생된 것이다. 이라 씨 말고도 지방선거에서 5명의 이주여성이 도의회 의원으로 공천되었으나 당선권 밖으로 공천되거나 앞 번호로 공천되었으나 추천해준 당이 득점투표율이 저조해서 당선이 안되었다. 그렇지만 6명의 이주민이 정치권에 후보로 진출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비록 실패했지만 지난 2008년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인 쥬디스 알레그로 씨가 창조한국당의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공천된 것과 더불어 이주여성의 정치진출에 큰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이라 의원은 당선 후 소감발표에서 “결혼이주자들이 모두 내 행동과 말을 지켜본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다”며 앞으로 다문화가족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경기도 도의회 가족여성위원회에 소속되어 ‘다문화가족지원조례안’ 개정에 앞장서고 있다.

     

이렇게 정계진출뿐만이 아니라 이주여성의 관계진출도 한걸음 진전하고 있다. 필리핀 출신 아나벨 경장은 귀화인 첫 경찰관으로 안산단원경찰서 외사계에서 근무하면서 방송 공익광고에도 출연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아나벨 경장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실시하는 이주여성 당사자 훈련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경찰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주여성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힘이 솟는다.“고 말했다.  중국출신 김영옥(34살)씨는 전남 해남군의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다 지난 2008년에 해양경찰의 중국어 특별채용으로 목포해경에 배치되어 우리측 경제적 배타수역에서 불법조업하는 중국어선을 단속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에서 상담원으로 활동하던 몽골출신 아리용 씨는 경기도 공무원으로 특채되어 다문화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밖에도 지방자치단체에서 문화해설사로, 관광안내자로 활동하는 이주여성들이 상당수 있다.  


한편 2010년 이주여성 지도력의 진출에서 가장 폭넓은 영역은 이주여성의 특성을 살린 지도력의 배출일 것이다. 통번역상담원으로 활동하는 이들,  갓 온 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교사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또는 학교에서 자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다문화강사로, 일정 교육을 받고 학교에 배치되어 원어민교사나 다문화교육을 하고 있는 교사, 아동양육사 등 이주여성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이로다(29살)과 베트남 출신 누곡푸응(24살)씨처럼 은행에 정식직원으로 특채되어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해외송금이나 환전업무를 담당하는 이들도 있으며, 은행이나 기업에서 의 이주여성 취업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렇게 다문화 담지자로서의 특성을 살린 활동 이외에  요양보호사, 음식조리사, 제빵사, 미용사 등의 기능직 자격을 취득하여 자격증 시대인 한국사회에 발맞추어 자격증을 따서 자기의 일자리 영역을 넓혀가는 이주여성들도 있다. 또한 취미와 적성을 살려 이주노동자방송국에서 기자나 아나운서로, 성우로 일하거나 연극, 영화, 비디오로 영상만들기, 미술, 공예 등 예술방면에서 한국사회와 소통을 증진하는 이주여성들도 있다.  


한편 이렇게 이주여성의 지도력 배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이주여성들의 자원봉사활동이다. 러브인 아시아 출연자들이 중심이 된 물방울회나 법무부의 이주여성네트워크에서  자원활동 단체가 있는가 하면 개인적인 자원활동도 꽤 활발하다. 중국출신 안순화 씨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무료로 한국어를 비롯한 인권교육 등을 받았고 복지시설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한국사회에 보답하고 싶어 자원봉사활동을 한다고 피력하고 있다. 그는 후배 이주여성들을 지원하면서 ‘생각나무 BB센터’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국제결혼가정 자녀들의 이중문화 교육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안순화 씨처럼 자신의 경험을 거울삼아 어려움에 처한 후배 이주여성의 한국생활에 도움을 주는 봉사활동을 하는 이주여성들도 적지 않다. 도움을 받던 사람들이 돕는 사람들로 변해가고 있다.      

  

그런데 ‘상징성’과 ‘롤 모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이주여성 지도력의 한국사회 진입에서 살펴보아야 할 지점이 있다. 도의회 의원배출 등 이주여성의 지도력이 가시화되기 시작했지만 이 현상은 한국사회에서 제2기 국제결혼이 전개된 지  20년이 경과한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그리 괄목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상 한국사회에 표출된 이주여성지도력은 일부 성공한 사람들의 예이며 이주여성이라는 특성에 의한 인센티브 때문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주여성의 지도력은 다문화사회의 바로미터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국제결혼이 대안이 되고 있는 한국사회현실에서 결혼이주여성의 지도력 개발문제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사항이다.


앞으로 30년 후면 국민결혼 다섯 쌍 중의 한 쌍이 국제결혼을 하고 국민의 20%가 다문화가족이 되는 한다고 예상되어 있는 상황인데도 결혼이주여성들은 여전히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는 피교육생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 등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복지지원대상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며느리라는 존재로, 자녀를 출산하고 기르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다보니 지도력 개발이나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강화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주여성의 지도력이 상징성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이주여성을 저출산․고령화사회를 위한 출산이나 돌봄노동의 도구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미래 한국사회의 주역으로서의 전문인력양성과 역량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이 요청된다. 또한 이주여성의 지도력을 키우고 배치하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인센티브제도가 필요하다. 이주여성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 역차별 당한다고 분노하는 선주민들이  있는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말이 거북하거든 미래사회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이를 수용했으면 좋겠다. 이주여성이 선주민과 어깨를 걸 수 있을 때까지는.     

                    ( 이 글은 여성신문 2010년 1월 7일자 여성논단에 게제된 필자의 글을 손본 것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