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인권현장 이야기
호주의 <No to Violence_폭력금지>와
한국 이주여성 현장의 남성 연대들

 

허오영숙(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

  

 

#1 

피해 이주여성을 공격하는 남자들

– “아동성폭력으로 인한 출산 경험과 혼인취소 사건”

 

한 여성이 있었다. 베트남에서 나고 자란 여성이다. 그의 고향은 두 바퀴 탈 것은 들어갈 수 없는 고산지대 외딴 마을이었다. 베트남 소수민족이었던 그의 고향마을에는 베트남 주류 민족인 비엣족과는 다른 문화들이 종종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빳뻐였다.

 

‘빳’(밧)은 ‘잡다’를 뜻했고 ‘버’는 ‘아내’를 의미했다. 베트남어 빳버는 ‘끄업(강탈하다)버’ ‘깝버’ ‘빳꼭버’ 등으로도 불렸다. 아동기 여성을 납치·강간한 뒤 혼인 관계를 맺는 소수민족의 악습(베트남 형법과 가족법에서 ‘불법’으로 규정)이었다.

 

그는 빳뻐의 피해자로 열네살에 출산을 하고 고향을 떠났다. 성인이 되어 한국 남성과 결혼 후에는 남편의 계부로부터 성폭력을 경험한다. 성폭력으로 쉼터에 입소 한 후에는 베트남에서 있었던 납치혼의 출산 경험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 남편으로부터 혼인 취소 소송을 당한다. 그리고 두 차례나 대법원에 상고한 끝에 결국 혼인취소가 확정되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대법원 상고심에서 단순 출산 사실 미고지를 이유로 혼인 취소 판결을 내려서는 곤란하다는 판례를 이끌었던 기쁨도 잠시 파기 환송심에서 패배했고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기 때문이다. 혼인 취소 판결의 확정으로 결혼비자가 유지되기 어려운 조건이 되었고, 그는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2012년에 한국에 와서 2017년에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5년 가까이 되는 긴 재판 동안 그를 지원하고 응원하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활동가들, 공익변호사들, 그의 사연에 연대하는 시민들. 그런데, 지원하고 응원하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해자와 남편쪽에 선 강력한 남성들도 있었다. 그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일단의 남성들이 그를 응징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남성들로 국제결혼으로 인한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그들의 오프라인 활동은 공격적이었고, 공격의 방향은 이주여성을 지원하는 단체와 이주여성 피해자였다.

 

시작은 토론회 진행 방해였다. ‘출산 사실 미고지가 혼인취소 사유일 수 있지만, 성폭력으로 인한 출산이었다고 해도 같은 결론일까?’ 한국 사회에 처음 제기된 이 재판에 관련한 물음은 여러 측면에서 검토가 필요했다. 사건을 공론화하기 위해, 이 여성 사건의 문제의식을 명료화하기 위해 토론회는 공개적으로 여러 번 열렸다. 공개 토론회였으므로 누구나 올 수 있었고, 일단의 ‘남성연대’도 등장했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토론에는 관심이 없었다. 토론회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폭력적으로 방해할 뿐이었다. 처음 제기되는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온 대다수 여성 참가들은 남성들의 폭력적 언행에 두려워했다.

 

남성들의 연대는 재판 과정에서 더 강력했다. 재판이 열리는 전주지방법원까지 방청을 와서 재판정에서 그들을 마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때로 방청석에서도 소란을 피워 재판부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자신의 계부에게 성폭력을 당한 아내에게, 베트남에서의 아동기 성폭력으로 출산을 했던 아내에게 이혼 취소 소송을 제기한 남편을 지지하고자, 그리하여 그 베트남 여성을 한국에서 쫒아내고자 다각도로 지원했다. 그들은 자비로 베트남 여성의 현지 고향마을을 찾았고, 그 영상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나는 공격의 방향과 타겟을 날카롭게 피해자에게 돌린 채 그토록 성실한 그들이 두려웠다.

 

 

#2 

가해자 남성을 직시하는 남성들

– No To Violence (폭력 금지)

 

호주 연수기간동안 많은 토론과 관련 기관 방문과 체험이 있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단체 중 하나가 No To Violence였다. 남성들이 주도하여 만든 가정폭력 관련 단체인 No To Violence는 가정폭력 가해 남성들이 자신의 잘못을 책임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렇게 쓰고 나서 이 말이 잘 와닿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처음 No To Violence에 대해 들었을 때 어떤 활동을 하는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남성들의 연대는 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여성과 소수자들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다른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상상력도 경험 안에서 제한되었다.

 

30여 년 전에 남성들이 주도하는 자발적 무급 봉사단체로 출발한 No To Violence는 연수기간 동안 방문했던 기관들과는 다른 특징이 뚜렷했다. 무엇보다 단체의 출발을 주도한 이들은 젠더기반 폭력 가해 남성들에게 관심을 가진 남성들이었다. 젠더기반폭력 피해자가 주로 여성이고, 가해자 관련 프로그램도 (여성들이 대다수인) 가정폭력상담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한국의 상황과는 다른 특성이다. No To Violence의 가장 큰 특징은 젠더기반 폭력 가해 남성들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전문화하였다는 것이다.

 

No To Violence의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멜버른시가 속한 호주 버지니아주의 젠더기반 정책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한국은 가정폭력 신고율이 낮고, 신고하더라도 기소되는 비율이 낮아 2023년 기소율이 7.4%다. 반면, 호주는 가정폭력 사건 기소율이 한국보다 훨씬 높아서 17% 수준이라고 한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처벌을 받아 형기를 마치더라도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No To Violence는 가해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단체의 설립 초기에는 법원의 교육 명령을 받은 의무 참석자보다 자신의 가해 행위를 바꾸고 싶어하는 자발적 신청자가 60~80%였다고 한다. 현재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 참석자는 법원명령 의무 이수자의 비율이 더 높아졌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가정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은 보호시설인 쉼터를 이용할 수 있다. 한국은 젠더기반 폭력과 관련한 지원체계가 선주민 여성 중심으로 편성되었고, 2000년대 이후 이주여성 지원체계가 별도로 구성되었다. 가정폭력 피해 선주민 쉼터는 64개소, 이주여성 쉼터는 28개소 수준으로 쉼터가 부족한 상황은 아니다. 이 쉼터들은 모두 비공개 시설로, 가해자 접근을 제한하고 피해자 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다.

 

피해자 쉼터 중심의 지원체계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집을 떠나 쉼터로 피신하도록 만든다. 반면, 버지니아주는 가정폭력 피해자는 거주했던 집에서 일상을 유지하고, 가해자가 거주지를 떠나야 한다(거주지를 떠나는 것을 선택한 여성들을 위한 쉼터도 존재한다). No To Violence는 거주지를 떠나야 하는 남성 가해자들이 더 나쁜 방식으로 가정폭력 문제에 대응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가정폭력 가해자라 할지라도 일상이었던 주거지를 떠나 생활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주거지 강제 분리처분을 받은 가해자가 직장 통근이 가능한 인근 지역의 숙소 등과 연계하여 최대 1개월까지 거주지의 안정성을 확보해 준다. 기한이 더 필요할 경우 임시 주거지를 모색하고 연계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을 위한 정기적인 전문상담이 이루어진다. 필요할 경우 폭력 가해 행동에 대한 개선 교육과 사후관리 등 가해자들이 또다시 폭력적으로 대응하지 않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접근을 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No To Violence의 교육 이수 등 프로그램 참여가 가해자 감형의 도구나 증빙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 No To Violence의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업무 원칙이 적혀 있다.

 

– 우리는 페미니즘에 친화적인 단체로서 가정폭력의 젠더적 성격을 인정합니다.

– 여성과 아동의 안전은 우리 일의 중심이며,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 남성의 폭력은 선택적인 것이며, 남성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 모든 여성, 남성, 아동이 가정폭력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 ‘가족’의 정의에는 동성 관계와 혼혈 또는 혼합 가족이 포함됩니다.

– 우리는 조직 내 다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호주 멜버른에서 No To Violence를 방문하기 전까지 나는 “빳버” 피해자 공격에 열을 올렸던 남성들의 연대를 잊고 있었다. 종종 고향으로 돌아간 그 베트남 여성을 떠올리긴 했지만, 험악했던 남성들까지 기억에 담아두진 않았다. No To Violence 방문은 전혀 다른 결로 그들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경험하는 매일의 한국 남성들의 연대는 권력을 가진 가해 행위를 개인적, 집단적으로 때로 즐기고, 때로 방조하고, 때로 직접 행사하는 모습들이다. 나는 아직까지 한국에서 남성들의 폭력성을 성찰하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실천하는 지원 그룹을 만나보지 못했다. 30년 전에 No To Violence같은 단체가 설립될 수 있는 멜버른 사회와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3 

베트남 여성 ‘박제방’을 만든 남성들

 

호주 연수에서 돌아오고 피해자, 소수자와 연결되는 남성들의 연대가 한국사회에서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간혹 있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한국 사회였다. 딥페이크로 떠들썩했던 것도 잠시 온라인 성폭력 이슈가 사라지고 있던 지난 9월 말, 이주여성인권센터에 제보가 접수되었다. ‘베트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 남성들에 의한 베트남 여성 대상 성·인종 착취 텔레그램방’을 고발하는 내용의 연락이었다.

 

제보와 언론보도에 따르면 베트남 여성의 신체 사진, 성관계 영상 등 불법 촬영물과 피해자의 신상을 공유하고 혐오와 조롱을 일삼는 이른바 “박제방”이 5년 넘게 활성화되어왔다. 이 채팅방에는 베트남에 거주하거나 베트남에 일, 여행 등의 목적으로 오가는 한국 남성 1,750여 명이 참여하고 있었고, 3,230여 개의 성·인종 착취 게시물이 공유되고 있었다. “박제방”의 관리자는 ‘한국인을 상대로 사기 치는 베트남 여성들을 박제하기 위해’ 그룹이 만들어졌음을 주장했다. 제보자는 베트남 현지에서 마사지업소, 성매매업소, 술집, 데이팅 앱 등의 경로로 성을 구매하는 한국 남성들이 많고, 이들에 의한 강간, 임신, 성병 등 피해 사례가 이미 베트남 여성들 사이에서 문제적인 이슈임을 전했다.

 

채팅방에는 피해자이거나 피해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글도 있었다. 이들은 가해를 멈추어달라고 호소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신상 박제와 성희롱, 인종차별이었다. 2024년 8월 29일 이 사건이 기사화되기 직전 “박제방”은 말 그대로 ‘폭파’되어 사라졌다.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성 착취 채팅방이 생존하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룹을 확장하고 유지하며 활성화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경로로 비슷한 방이 생성되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사건에 대해 알면 알수록 깊은 분노와 절망감이 동시에 엄습했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한국 남성들이 사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 나라 여성들에 대한 ‘박제방’을 만들었을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한국에서도 규제가 거의 안되는 상황에서 한국 밖 한국 남성들의 행각을 규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박제방 사건을 경험하면서 다시 No To Violence를 떠올렸다. 남성연대의 실천성이 유해한 방식으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앞으로도 한국의 이주여성 현장에서 여전히 대다수가 가해자인 개별 남성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적극적으로 집단화한 가해 그룹으로서 남성 일단을 직면할 것이다. 그 사이 어느 과정에서 No To Violence와 비슷한 단체가 한국에도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This work has been supported by the Faculty of Arts, Monash University, via the Australia-Korea Foundation grants from the Australian Department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이 글은 지난 7월 13일부터 24일, 한-호재단의 지원으로 호주 모나쉬대학교에서 주관한 ”성평등 정책과 연구 교류 프로젝트“의 참여 후기입니다. 이 프로젝트로 호주 멜버른 현지의 젠더기반 현장활동 단체 4곳(Intouch / AMES Australia / No to Violence / Family Violence Simulation Centre) 을 방문하고 10일간 호주의 7개 단체 활동가, 5명의 연구자와 한국 3개 단체 활동가, 5명의 연구자와 함께 한국-호주의 성평등 이슈와 활동을 교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