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한국염/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앙드레 지드의 소설 제목처럼 무슨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출입국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출입국 문은 제삼세계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좁은 문이다. 한 예를 들어볼까? 한 네팔 이주노동자 부인이 어린 아기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오다가 공항에서 저지를 당했다. 그 부인은 아기가 태어나서 아빠 얼굴도 못 보았으니 공항에서만이라도 남편이 아기 얼굴을 보게 해달라고 하소연했지만, 종래 공항에서의 가족상봉 시도는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필리핀에서 알게 된 딸의 친구가 딸을 보고 싶어 한국에 오려했지만 직장이 없다는 이유로 비자가 나오지 않아 입국하지 못한 이야기,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국제회의를 하는데 초청대상 중의 일부에게 입국비자가 나오지 않아 참석지 못하게 된 이야기를 비롯해서 유학생이 비자 얻기까지 자존심 상한 과정의 이야기 등, 무비자 협정 전 한국 사람이 미국 비자 받기 어려웠던 것처럼 제삼세계 사람들에게 한국은 “너무도 먼 당신”이다. 반면 일세계 사람들에게는 불타기 전의 남대문처럼 열려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는 세계인권선언 1조나 “피부색, 성별, 종교, 언어, 국적, 갖고 있는 의견이나 신념 등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고 선언함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됨을 명시하고 있는 2조가 각 나라의 출입국 정책에서는 맥도 못쓴다.
전 세계적으로 일 년 이상 자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이주하는 사람들이 약 191백 만 명(2005년 기준)으로 세계 인구 6,470백만명의 약 3%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07년 12월 31일자로 한국거주 외국인 이주민은 단기체류외국인을 포함해서 1,066,273명으로 1백만 명을 돌파했다. 이중 외국인노동자가 47.1%를 차지하고 있으며, 결혼이민자가 10.4%, 외국인 유학생이 5.7%다.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이주민이 증가하는데, 국경을 넘는 이주민이 일차적으로 부닥치는 것은 각국의 출입국 정책이다. 이주민들에 대한 출입국 정책을 보면 마치 거미줄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은 곤충은 걸러내고 큰 동물에게는 무력한 거미줄처럼, 현행 각국의 출입국정책은 개발도상국의 민중은 걸러내고 통제하고, 일세계 사람들과 개발도상국의 엘리트, 전문인력은 환영하면서 그냥 통과시킨다. 이렇게 국경을 통제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보면서 묻게 된다. 누구를 위한 경계인가?
한국정부의 출입국관리 정책은 “질서 있고 안전한 개방정책”이라고 한다. 여기서 질서 있고 안전한 개방정책이란 개방에 따른 부작용( 즉 국익에 해가 되는 인물의 입국 가능성 증가, 불법체류자의 증가, 단순노무인력의 정주화, 외국인 범죄의 증가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 즉 국가안보적 측면에서 체류질서를 확립한다는 것이다. 이런 체류정책으로 인해 제삼세계 사람들에게 한국으로 들어오는 문은 바늘구멍이 되어 버렸다. 한국에서 외국인의 출입국정책은 체류자격과 연관되어 있는 바, 체류자격은 ‘취업할 수 있는 자격과 취업할 수 없는 자격’ 두 가지로 분류된다. 취업할 수 있는 체류자격은 단기취업, 전문기술, 연수취업, 비전문취업(E9), 내향선원, 관광취업, 거주 및 일정한 요건 하의 재외동포, 영주 등의 체류자격이다. 여기에 국민의 배우자와 영주권자의 배우자, 난민인정을 받은 자 등이 포함된다. 이런 체류자격마다 그 체류에 따른 조건이 있어 이 체류자격을 얻어 한국에 입국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데다 돌발변수가 있어 여러 가지 인권문제가 직면하게 된다.
우선 한국남편과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의 경우를 보자. 이들이 한국에 체류하기 위해서는 자기 나라에서 발급한 여권에 더하여 한국정부로부터 입국과 체류에 필요한 사증을 받아야 한다. 한국인과 결혼한 사람이 사증을 발급받으려면 우선 자기 나라에서 혼인신고와 더불어 해당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결혼 사증을 신청해야 한다. 이때 이 여성을 초청하는 남편의 서류가 필요하다. 해당국에서 일단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마친 남편이 한국에 돌아와서 필요한 서류를 구비하여 아내에게 보내면 그 아내가 본인의 서류와 함께 해당국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신청을 해야 혼인사증비자가 나온다. 이 혼인사증이 있어야 신부가 한국에 입국할 수 있다. 이런 절차를 거쳐 혼인사증을 발급받은 여성이 한국에 들어오면 남편이 90일 이내에 체류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국민배우자 등록(F-2-1) 등록을 한다. 이 등록을 마치면 국민배우자로서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데 국적이나 영주권을 얻기까지 일 년마다 한번 씩 채류연장을 해야 한다. 이 체류 연장을 위해서는 한국인의 신원보증이 필요한데, 이 체류연장을 위한 신원보증 문제가 결혼이민자 인권침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때로 남편들이 신원보증을 안 해주기도 하도 신원보증을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혼인입국사증과 관련해서 국제결혼한 신부들이 겪는 심각한 어려움이 하나 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외국인 신부가 혼인입국사증을 받기 위해서는 한국인 남편들이 보낸 서류가 필요하다. 그런데 일부 남편들이 현지에서 결혼식과 혼인신고까지 마쳐놓고 한국에 들어와서는 아내를 초청하지 않는 일이 간혹 발생한다. 결혼입국사증이 없으면 그 여성이 한국에 입국할 수 없고, 남편을 찾을 수도 없는데 현지에서는 이미 결혼을 했으니 이 여성은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신세가 돼버린다. 이런 사정을 해결해 달라고 여러 건의 부탁을 받았으나 상대 남편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고, 사생활 개입이라는 이유 때문에 속수무책이다. 이런 사람을 사기결혼으로 단속할 법망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혼인빙자 간음죄 내지 사기죄를 적용해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빈곤 때문에 국제결혼을 택한 여성들에게 그 재판비용을 감당한다는 것은 도저히 무리다. 이런 여성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남편을 찾고 그 남편을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 출입국정책은 불가능할까?
결혼이민자가 국적을 얻기까지는 외국인의 신분이다. 따라서 고향을 방문할 경우 한국재입국허가를 출입국관리소에서 얻어야 하며, 이 허가서가 없을 경우 다시 입국하기가 어렵다. 우리 센터에서 이주여성긴급전화에서 상담원으로 있는 베트남 여성과 함께 필리핀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영주권자도 재입국허가서가 있어야 하는 것을 모르고 재입국허가서를 받지 않았다가 필리핀 공항에서 낭패를 당한 일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오는 비행기를 탈 수가 있었다. 아무튼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의 결혼이민자들은 한국에 머문 기간에 상관없이 외국인으로서 출입국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한국에 드나듦이 결혼이민자들에게도 까다로운데 이주노동자들은 어떠랴! 앞에서도 보았듯이 한국에 체류하기 위해서는 체류자격을 얻어야 하고 그에 따른 입국절차를 마쳐야 한다. 그러나 체류 절차를 밟아 입국했다하더라고 체류조건에 위배되었을 경우 즉 기간을 넘는 장기체류,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경우, 혼인생활파탄, 성매매 업소에서 일등으로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게 되고, 거주 이전의 자유와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 제약을 받는다. 이 땅에서 장기간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고향에 가고 싶어도 잠시 다녀올 꿈도 꾸지 못한다. 미등록노동자들의 경우 불법체류한 경력 때문에 일단 한국국경을 넘으면 다시 들어오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속에 걸릴 때까지 버틴다. 그렇다고 나가는 것도 쉽지가 않다. 불법 체류한 기간을 상정해서 내린 벌금을 내야 한다. 개인 사정에 따라 정상참작이 되어 범칙금이 깎이는 경우도 있긴 한데, 그 벌금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는 임신 8개월의 요주의가 필요한 임산부가 단속에 걸려 서울출입국관리소에 보호?되어 있는 것을 이주단체들이 항의해서 풀려난 적인 있는데, 아무튼 미등록노동자가 단속에 걸리면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외국인보호소로 이송된다. 그 속에서 출국할 때까지 대기하고 있다가 출국을 하게 된다. 여기서 더 딱한 것이 부모가 불법체류 단속에 걸려 추방당하게 되면 남는 아이들의 문제가 심각해진다. 국제고아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미등록노동자의 자녀들은 태어날 때도 부모가 미등록이라 출생신고조차 할 수 없는 무국적신세가 된다. 부모가 한국에서 아이를 기르기 힘들 경우 다른 인편에 아이를 고향의 부모에게 부내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자기 아이를 다른 사람의 아이로 출생신고를 해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원래 자기 출생신고와 빈 칸으로 되어 있는 출생신고 2장이 필요하게 된다. 빈칸의 출생신고 기록을 갖고 아이가 다른 사람을 따라 출국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주노동자 출입국에는 별별 사연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뜻 있는 사람들이 지구화 시대에 지구시민을 말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경계를 넘는 이주민들의 안전보장을 국가안보를 넘어 개인안보 측면에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하워드 진의 말처럼“인종이라는 장벽과 국가주의라는 장벽을 허물어뜨리고 국경 없는 세계를 향해 나가야 한다.”(conversations on History and Politics, 2008 Random House Korea)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2008년 제3회 이주노동자 영화제(The 3rd Migrant Workers Film Festival)의 꿈처럼 모든 이주자와 원주민이 같은 지구촌 시민으로서 인권을 보호하고 받으며, 인간안보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