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폭력’ 신고 재중동포 아내, 경찰 귀가조처 20분만에 피살

50대 여성, 남편 휘두른 흉기에 찔려

경찰이 지구대 온 남편에 행방 알려

작년 ‘강제 격리’ 도입 해놓고 안지켜

지난 2일 서울 강동구의 반지하 주택에서 한국인 남편 홍아무개(67)씨가 재중동포 아내 이아무개(57)씨를 흉기로 살해한 사건 당시 피해자 이씨가 사건 발생 직전 경찰에 신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경찰은 잠시 이씨를 보호하다 집에 데려다 줬고, 이씨는 20여분 뒤 남편 홍씨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됐다.

11일 서울 강동경찰서의 설명을 종합하면, 피해자 이씨는 사건이 발생한 지난 2일 저녁 6시54분 경찰에 가정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집 밖에 나와 있던 이씨를 저녁 7시15분께 성내지구대로 데려왔다. 이후 경찰은 40여분 뒤인 8시께 집 안에 남편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이씨를 집으로 데려다 줬다. 경찰은 남편이 다시 돌아오거나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다시 신고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남편 홍씨는 경찰이 이씨를 집에 데려다 준 시각에 성내지구대를 찾아와 아내의 행방을 물었다. 이때 경찰은 아내가 지구대에 왔었다는 사실은 물론 이씨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고 알려준 것으로 확인됐다. 가정폭력을 행한 홍씨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가정폭력이 재발할 우려가 있음에도 남편에게 아내의 행방까지 가르쳐준 것이다.

결국 이씨가 집으로 돌아간 20분 뒤인 8시20분께 다시 지구대로 신고 전화가 왔고 경찰이 바로 출동했지만 문이 잠겨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칼 소리에 놀란 경찰이 방범창을 뜯고 들어갔지만, 남편 홍씨가 이씨의 쇄골 부분을 칼로 찌른 뒤였다. 이씨는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숨졌다. 홍씨는 아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놓고 흉기를 휘둘렀다고 경찰은 밝혔다. 숨진 이씨는 식당 등에서 일하며 직업이 없는 홍씨의 생계를 책임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원춘 사건 등 112 신고에 대한 경찰의 안이한 대응이 잇따라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의 경각심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가정폭력 행위자를 경찰이 강제 격리할 수 있는 ‘긴급임시조치권’ 등을 도입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라는 지적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를 지구대로 데리고 온 뒤 고소 절차와 대응 방법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진정을 시켰으나 이씨가 남편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해 직접 집으로 데려다 주고 남편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철수했다”며 “고인이 안타까운 일을 당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통감하지만 대응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2195.html

한겨레 신문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