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이야기

우리 쉼터는 남편의 가정폭력 때문에 집을 나온 국제결혼한 이주여성들을 위한 피난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부쩍 아이들과 함께 쉼터를 찾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자기가 나올 경우 아이를 마땅히 돌봐 줄 사람도 없고 아이 역시 폭력에 노출이 되어 위험하기 때문에 모성애가 강한 여성들이 집을 나올 경우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를 데리고 나오려고 한다.
최근에 쉼터에 몽골여성이 한명 들어왔다. 역시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큰 아이는 12살로 초등학교 5학년이고, 작은 아이는 생후 9개월 된 아이다. 큰 아이는 몽골 아이로 엄마가 몽골에서 몽골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아이다. 아빠가 죽은 후 엄마가 한국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서 엄마를 따라 한국에 왔다. 새 아빠는 다행히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새로 맞은 부인이 데리고 온 아이를 자기 호적에 입적시켰고 아이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지수라고 지어 주고 아이한테도 잘 해주었다고 한다. 아이 역시 한국인 새 아빠를 잘 따랐다. 얼마 후 지수에게 동생이 생겼다. 엄마가 아기를 낳은 것이다. 새 아빠는 물론이고 지수 엄마도 지수도 모두 아이가 출생한 것을 기뻐했다. 집안분위기도 더욱 좋아졌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아버지 직장이 문을 닫게 되어 아버지가 실직하게 되었다. 새로 직장을 찾느라 애를 썼지만 일자리 얻기가 쉽지가 않았다. 아버지는 점점 초조해졌고 급기야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더니 신경질이 늘고 성격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은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엄마에게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으로 이어졌고 손찌검도 점점 심해졌다. 견디다 못한 엄마는 큰 결심을 하고 지수와 아기를 데리고 집을 나오기로 했다. 이주여성 긴급전화  1366에 전화를 했고 우리 센터와 연결되어 상담을 한 후 쉼터로 가게 되었다.  지수네 식구를 만나기 위해  이주여성 1366센터로 갔다. 시간이 어중간해 저녁밥을 못 먹었을 것 같아 샌드위치 두 쪽을 지수에게 주었다. 지수는 자기 배도 고팠을 텐데 엄마에게 샌드위치를 건네주었고 엄마는 자기는 괜찮다며 그걸 또 지수에게 다시 건넸다. 참 보기가 좋으면서도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짐도 많고 아이 둘을 데리고 힘들 것 같아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는데  지수가 그 커다란 트렁크를 들어서 짐칸에 싣고 유모차를 접어서 챙기는데 무척이나 숙달되어 있었다. 덩치가 적은 지수가 끙끙대면서도 엄마를 도와 챙기는 것을 보고 택시 기사 아저시가 지수 대신 짐을 실어주었는데 차 안에서 연신 기특하다며 감탄을 했다. 집에서 1366센터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다 지수가 짐을 들고 왔다고 한다. 생활력이 무척 강한 것 같다. 어린 나이에 한국에 와서 생존하는 법을 터득했는지도 모르겠다.  
지수 엄마는 지금 쉼터에서 매일 일을 나가고 있다. 쉼터에서 숙식제공은 되지만 용돈이나 아이들 기르는데 필요한 경비는 제공되지 못하기 때문에, 또 쉼터 이후의 삶을 위해서도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일자리를 구해 돈 벌러 다닌다. 쉼터에서 지수를 동네 학교에 전학을 시켰고, 지수 동생은 어린이집에 무상으로 맡길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 그래서 엄마는 일을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일이 일찍 끝나는 것이 아니다보니 동생을 아침에는 엄마가 맡겨도 저녁에는 지수가 데리고 와야 한다. 이걸 지수는 아무런 불평이 없이 매일 해나간다. 어제는 골목길에서 지수를 만났다. 한 팔에는 아기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케이크를 들고 쉼터로 오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아기를 찾아오는 길이었다. 왠 케이크냐고 물었더니 어린이집 선생님이 주었다고 대답한다.  아마도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학부모들이 선생님들께 선물한 것일텐데 지수를 배려해서 선물로 준 것 같다. 맛있게 생긴 과일 생크림 케이크였는데 지수를 배려한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참 고마웠다.
얼마 전에 지수가 혼자 아빠 집을 방문하고 왔다고 한다. 쉼터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고 버스와 전철을 번갈아 타고 다녀야 하는데 한번 온 길을 헛갈리지 않고 찾아 간 실력을 보니 여간 머리가 좋은 게 아니다. 가보니 술병이 널려져 있었다. 지수가 그 모습을 보고 안타가워 하자 “아빠가 정신 차릴 게 옛날처럼 잘 살자!” 하고 말했다고 한다.  아빠도 알코올 치료를 받아보려고 병원에 가보았지만 치료비가 너무 비싸 엄두를 못 내고 돌아왔다고 한다. 아빠를 만나고 돌아와서 지수는 아빠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우리 아빠가 참 좋은데 아빠가 술을 먹어 건강이 나자지니 술을 먹지 않고 식구가 같이 모여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수의 기대처럼 과연 알코올 중독에 접어든 아빠가 술을 끊고 다시 옛날의 좋은 아빠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래서 가족이 쉼터가 아니라 집에서 같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날이 올까? 지수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