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주말 아침


일요일 아침, 이 날은 보통 때와는 다른 특별한 주말 아침이었다. 오래 전부터 엄마께서 태국이주여성들의 정기모임이 있는 날이니 시간을 비워두라고 말씀하셨던 것. (엄마께서는 이주여성센터에서 자원봉사로 상담을 하고 계신다.)

예정대로라면 남한산성으로 향했겠지만 아쉽게도 전날 비가 내린 탓에 이주여성센터로 향했다. 참여자들에게 나누어 줄 옷가지 등의 물건들을 잔뜩 들고 건물 4층까지 힘겹게 올라가서 처음 만난 사무실. 솔직히 내가 머릿속에 그려온 모습보다는 많이 작고 조촐하다는 느낌이었다.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최진영선생님 덕분에 이내 낯선 기분은 사라지고 곧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할 사람들을 기다리며 남은 준비를 돕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드디어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런데 너무나 익숙한 한국말. 누구지? 뒤를 돌아보니 태국여성들과 아이들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실 처음 이 모임에 함께 참여해 사진도 찍어주고 아이들과도 놀아주라는 부탁을 받았을 땐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는데,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사실. 아이들은 이름부터 차림새 그리고 말투 하나하나가 모두 말 그대로 한국인이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간단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둥글게 모여 앉아 작은 물풍선을 서로 던져 가며  사왓디캅(안녕하세요), 커쿤캅(감사합니다) 이라는 태국어로 인사하며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종의 게임이었다.

여기서 내가 의아했던 것은 그 간단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라는 태국 말을 아이들이 낯설어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엄마가 살아온 나라의 말인데 잘하진 못 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는 내 생각이 선입견이었을까. 그래도 내가 엄마라면 왠지 서운할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 얼마동안 외국인노동자무료진료소에 봉사활동을 나간 적이 있었다. 봉사활동을 하며 다양한 나라의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당시에는 멀리까지 와서 의지할 곳 없이 몸이 아픈 사람들, 악덕한국인들에 의해 인권이 짓밟히며 착취당하는 불쌍한 노동자들을 보았다면, 이 날은 그 때 발견하지 못 했던 또 다른 이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먼 타지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 그리고 아이들의 어머니로 살고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많이 잃고 사는 것은 아닌지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이주여성들이었다. 서로 준비해온 태국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오랜만에 모국어도 끊임없이 대화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많이 정겨워 보이면서도 평소 저렇게 마음 나눌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외로울까하는 생각이 앞섰던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아이들과 놀아줄 동안 이주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고 그렇게 시간은 예정된 시간을 어느새 훌쩍 넘어버렸다. 사람들이 돌아간 뒤 정리하는 시간, 최진영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이들을 꽤 편안한 축에 속하며 다른 곳에는 더 많이 힘들고 고통 받는 이주여성들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아직 부족하지만 종종 언론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실정을 고발하곤 하는데 여성이기에 더욱 힘든 문제에 당면하는 사례, 곧 이주여성문제를 따로 다룬 경우는 접하기 쉽지 않다. 머나먼 한국 땅에 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한 인간 한 여성으로 존중받는 삶을 살고 있지 못 하는 사람들의 의지할 곳 없는 마음을 생각하니 이 문제에 있어 사회적인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 역시 무관심했던 한국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졌으며 여기서 일 하고 계신 분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졌다.

건강한 이들이 보다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만남을 주선하는 일부터 그리고 어렵고 마음이 병든 이들을 밝은 양지로 함께 끌어줄 수 있는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소외된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얼마든지 많다. 아직 아는 것도 너무 없고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막연하기도 하지만 모두 작은 관심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중요하고도 놓치기 쉬운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보았다. 이런 소중한 경험의 기회를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이 글은 지난 7월 10일 가졌던 태국여성가정모임에서 일일 자원활동가로 참여한 차수진 님이 써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