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음의 무서움
세상 팔자 좋게 보름동안 잘 놀다 왔습니다. 그것도 외국에서. 원래는 올 4월에 네팔의 포카라에 있는 원불교 교무님이 지으신 선방에서 푹 쉬다가 오려고 했었지요. 작년 6월에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국회 앞 노상 단식, 11월부터 석달 동안 성공회성당 뒷 뜰에서 천막농성 후, 좀 쉴 필요가 있어서, 마침 격려차 들리신 원불교 교무님과 이야기가 되었더랬지요. 그랬는데, 예정한 4월에 쉴 팔자가 못되어 어영부영하다가 큰 마음먹고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태국 치앙마이에 아는 집에 들렸다가, 버마와 라오스, 태국의 세 국경이 함께 만나는 골든트라이앵글에서 라오스까지 배를 타고 가서 다시 방콕에서 네팔로 가기로 했었습니다. 그랬는데, 치앙마이에서 열흘을 지내게 되었지요. 매일 아침, 아침식사를 밥 대신에 종류가 다른 과일로 배를 채우고 입맛을 즐긴 호강을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곳에서 만난 고산족이 난민의 일종이라기에 이주 여성문제가 연상되어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난민의 실상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덤으로 길들음의 무서움에 대해서 각인을 하고 돌아왔지요. 다음은 여행일기를 옮긴 것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어서요.
“태국의 고산족 중에서 카렌족과 이수족, 타이야이 족을 만났는데, 우리가 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데는 태국 북부지방에 살고 있는 고산족의 대부분이 태국 원주민이 아니라 라오스나 미얀마, 중국 등지에서 피난 온 난민이라는데 있다. 이들이 고국을 버리고 태국으로 넘어와 사는 이유는 정치적으로부터 경제적 이유까지 다양하다. 국경을 넘어온 난민들을 태국이 받아들여 일정한 거주지를 주고 그곳에서 살게 하고 있는데, 이들은 제한된 지역에서 살수는 있지만,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어 자기가 사는 마을을 벗어날 수가 없다. 이들은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데, 태국정부의 관광정책에 의존하여 이들은 그 부족의 여인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관광객에게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카렌족 중에는 여성들은 ‘목이 긴 족속’이 있다. 이 부족의 여인들은 한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방영된 적이 있다. 이 부족의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목에 금빛으로 된 굴렁쇠를 감고 산다. 일 년에 하나씩 개수를 늘려간다고 하는데, 한 나이 많은 여자는 26개를 하고 있었다. 일정한 굵기의 굴렁쇠를 목에 감고 있으니, 목이 가늘어지면서 길게 늘어났고, 얼마만큼 많은 개수를 하고, 얼마만큼 목이 늘어났느냐가 미의 표준이라고 한다. 목은 길게 늘어날지 모르지만, 일정한 굵기의 굴렁쇠로 목을 고정시키고 있으니, 목의 움직임이 자유롭지가 못하니까 이들의 움직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여인들 중에 그림엽서에 소개된 이를 만날 수 있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렌족 여성들은 다섯 살이 되면 목에 굴렁쇠를 끼기 시작한다. 지금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다고 하는데, 다섯 살에 꼈다고 하더라도 이년 후인 일곱 살이 되면 다시 한 번 의사를 물어 계속 길지 안 낄지 기회를 준다고 한다. 그러나 다섯 살에 무엇을 알고 결정하겠는가? 그 여인보고 왜 굴렁쇠를 하겠다고 선택했느냐고 물었더니, “어릴 때 머리를 장식하고 목에 번쩍거리는 금붙이가 멋있어 보여서” 라고 대답했다. 목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익숙해져서 괜찮다. 오히려 편하다”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길든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각인할 수 있었고, 전율이 왔다. 익숙해져서 괜찮다? 그러나 이들은 목에 굴렁쇠가 없는 사람들의 자유로움에 대해서 경험한 바가 없으니, 지정 무엇이 편한지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이다. 막상 이 굴렁쇠를 끼고 있는 사람들은 그 피폐에 대해서 모르지만, 이걸 끼도록 만든 사람들은 그 피해를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여인들 중에 바람을 피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남편이나 가족이 목에서 굴렁쇠를 벗겨내는 벌을 주었기 때문이다. 굴렁쇠를 낀 여인들에게 일정기간 지나 받침대 역할을 하던 굴렁쇠를 벗기면 목을 가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고통스럽게 지내야 하고 심지어 목이 부러져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니 굴렁쇠를 벗기는 것은 이들에게 자유가 아니라 징벌이 된다. 그런데도 이 여성들은 그 상태가 편하다고 하니, 이들에게 이런 굴레를 씌운 무리들에게 화가 나고, 자유를 누려보지 못한 이 여성들이 한없이 가엽게 느껴졌다. 이제는 그 여인의 목에 씌워진 굴레가 관광 상품이 되어 자신의 생존뿐 아니라 가족의 생존을 이어가는 생활수단이 되어버린 마당에, 설혹 카렌족 여성들이 원한다고 해도, 자기에게 딸린 식구들의 생계 때문에 쉽게 굴렁쇠를 벗을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이 여인 옆에는 역시 목에 두 줄 굴렁쇠를 달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가 배시시 웃고 있었는데, 그냥 한숨을 쉬며 물건을 사주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여인을 보면서 방콕 공항에서 본 모슬렘 여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눈만 내놓고, 온 몸을 까만 천으로 감싼 늙은 여성의 모습! 80년도였을까? 안상님 목사님이 눈까지도 가려버리고 지팡이를 진채 장님처럼 다른 안내자에 의해 비행기에 오르던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장면을 목격한 셈이다. 그래도 이 여인은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어 문명의 혜택은 보는 셈인데, 망할 놈의 가부장적 종교는 여전히 성성을 옥죄이며 기승을 부리고 있건만, 이 여성도 익숙해져서 괜찮을라나?
이 카렌족의 여성을 생각하며 화를 내다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도 길들어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습헌법을 들먹이는 세상에서 나는 어느 곳에서 관습의 노예로, 길드는데 익숙해서 갈아가고 있는가? 카렌족 여인들이 목에 감고 있는 굴렁쇠처럼, 분명 굴레인데도 그것에 익숙해져서 떨쳐버리기가 왠지 불안해서 차라리 그것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것들이 있지 않는지? 카렌족 여인들에게서 보듯이 굴렁쇠를 벗기가 힘든 것처럼, 묵은 관습이나 고정관념들을 깨드리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버팀목이 끊어지는 고통이 따를까 두려워서. 자유를 얻기 위한 고통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길들어 편하게 사는 걸 택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