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폭력에 눈물, 차별 대물림에 통곡”
결혼 이주여성 한맺힌 사연 ‘느린 언어…’ 책으로
황춘화 기자
몽골 출신 건체(25·가명)는 지난 2월 중개업소를 통해 만난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 땅을 밟았다. 현지에서 법대를 졸업한 엘리트였지만, 경제난으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선택한 길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임신을 하자 남편의 태도는 확 달라졌다. 남편은 “여력이 없다. 돈이나 벌어라”며 아이를 지우라 했고, 이를 거부한 건체는 날마다 남편의 폭력과 욕설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지난 6월 집을 나와 쉼터에 정착했다.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지만, 남편은 전화번호도 바꾼 채 연락을 끊었다. 그는 “어떻게든 한국에서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15명의 결혼 이주여성이 한 맺힌 자신들의 사연을 글로 풀어냈다. 이주여성인권센터가 최근 출간한 <느린 언어로의 낯설지 않은 대화>라는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주 여성들은 한국에서 겪은 결혼 생활에 대해 “기대와 희망에서 출발했지만 오래지 않아 폭력과 차별로 몸서리쳤다”고 돌이켰다. 2004년 결혼한 베트남 여성 레티 룽(25·가명)은 “남편은 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안일을 시키고 애를 낳기 위해 결혼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남편의 숱한 폭력에 시달리다 이혼 얘기를 꺼내자 시댁 식구들은 ‘돈을 주고 데려왔으니 일을 해야 한다’며 놓아주지 않았다고 했다.
자식들에게 대물림되는 차별은 더 견디기 힘들었다. 베트남 여성 응우옌 티 차우(27)는 두 해 동안 다섯 차례나 어린이집을 옮겼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아들을 불공평하게 대할 때마다 별다른 방도가 없어”서였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남편이 퇴근하고 와서 같이 밥 먹을 때’ …. 책 속의 주인공들이 바라는 행복은 소박했다. 꼭 하고 싶은 일은 ‘한국말을 잘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염 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책 속의 이주여성들의 이야기에서 우리 사회에 적응하려는 강한 의지와 꿋꿋함을 엿볼 수 있다”며 “우리 사회가 이주여성들을 주변인이 아니라 시민권자로 인정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응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