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한마디도 못하는 몽골 여성이  쉼터에 들어 왔다.  이모가 소개하여 한국에 시집가면 서울에서 잘(?) 살 줄 알고 늙은 신랑을 따라 시집왔다.  몽골에서 서울에서의 삶은 아가씨들이 동경하는 삶인 것 같다.  26살의 그녀가 비행기에서 내려 따라간 곳은 살기좋고(?)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서울이 아니고 어느 시골 한 구석이었다.  조용하고 별로 다닐 곳도 없고, 말도 안통하고…….  이것이 아닌데…. 내가 꿈꾸던 곳은  이런 곳이 아닌데…… 결국 도망치게되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혼을 하게 되었다.  어느 교회의 도움으로 우리 쉼터에까지 오게되었다.  말이 안통해서 통역을 세워 상담을 하고 일상의 대화도 전화 통역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먼저 와 있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과 러시아어로 떠듬거리며 의사소통을 하고 살고 있다.  쉼터에 적응이 안되어 서로 다투기도하고,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으니 오해도 하면서 쪼르르 사무실로 내려와 가슴을 치며 전화통역을 해 달라는 손짓을 하면 통역자에게 전화를 걸어 바꾸어준다. 그러면 얼마나 많이 말을 쏟아내는지 정신이 없다.  통역자가 확인을 위해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하는데 듣지도 않고 나에게 바꾸어준다.  자기이야기를 빨리 내가 알아서 해결해 달라는 뜻인 것 같다. 성질도 급한 것 같다.  몽골인들의 성격이 한국인들과 많이 닮은 것 아닌가싶다.  
몽골에는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여기 남아서 돈을 벌고 싶어한다.  몽골사람들을 어찌 어찌 알게되어 여기저기 전화로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쉽지가 않다.
추석전에 안산의 어느 공장에서 아르바이트자리가 났다.  몽골친구와 전화하면서 나에게 바꾸어주는데 전철을 태워보내면 3일간 일할 수 있단다.  4호선 종점 안산 오이도 전 정거장에서 내리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저녁 8시 30분경에 도착하도록 하란다.  말도 안통하고 핸드폰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  가다가 길을 잃으면 어떻게 쉼터로 다시 올까?  걱정이 되었으나 가는 방법을 설명하고 가는 정거장을 물어보는 한글문장을 써서 주고 갔다 오도록 했다.  3일동안걱정이 되었다.  연락할 길도 없고……… 그 친구 전화번호를 적어 놓았어야 했는데 이 친구가 그냥 훌쩍 가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3일후에 열심히 일하고 일한 댓가를 받고 돌아 왔다.  아 결국 말이 안통해도 살아 갈 수가 있구나……… 일자리만 있으면 충분히 살아 갈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경기가 안좋아 흔히 이야기하는 3D업종의 외국인노동자들만 쓴다는 분야도 일자리가 없다.   그녀는 매일 사무실로 내려와 친구 혹은 아는 몽골사람들에게 전화한다.  취직은 고사하고 며칠간의 아르바이트라도 알아본다.
가슴을 친다.  답답한가보다.  
한국어 교사를 붙여 주었다. 일주일에 2번 한국어를 배운다.  처음에는 일하려면 한국어를 잘해야 한다고 하니까 열심히 하더니 요즈음은 마음이 불안한지 공부를 대충하려고 한단다.  공부하는 태도가 안좋다고 한다.  한달넘게 한국어 공부를 하더니 단어 사용이 늘었다.
나만보면 돈 없다고, 아르바이트 해야 한다고 하면서 가슴을 친다.  이제 추워지는 겨울이 돌아오는데 이 친구의 앞날은 어찌 될 것이가?  우리 쉼터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 나도 걱정스럽다.  당분간은 쉼터에서 있다손 치더라도 장기적으로 대책이 세워져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향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단다.  결혼하고 이혼한 여성은 받아 주지 않는 사회이다.   아시아 전 지역이 다 똑같은 것 같다.  이혼한 여성들에게 보내는 편견이 고향에서 잘 살아갈 수 없도록 한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고, 타향에서 살아가는 것도 막연하고………  이일을 어쩌나……가슴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러나 본인이야 오죽할까?   기본적으로 먹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려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