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존중하며 살아요.
원 옥금
“언니! 이혼 서류를 좀 써주세요. 한국어로 한 장하고 베트남어로 한 장이요.” 한국 생활을 견디다 못해 죽고 싶다고 며칠 전 나에게 메일을 보낸 베트남 여성이 보낸 이번 메일의 내용은 이렇다. 이 여성의 남편은 그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지체 장애인인데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데다가 남편이 자기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시한다고 한다. 한국으로 시집온 또 다른 베트남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시어머니가 자기를 며느리로 대접하지 않고 파출부처럼 대하는가 하면 심지어 전처의 아이들도 새엄마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에 국제결혼 중매업자가 급격히 늘어났는데 다른 나라보다 베트남 신부가 인기 상품이란다. 베트남 신부가 왜 인기 상품이냐 하면 한국 사람하고 피부색이 비슷하고 무엇보다도 남편과 시부모에게 순종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이가 젊은데다가 순수해서 어떤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대항할 줄 몰라서 결혼하지 못한 노총각이나 재혼하고 애가 딸린 사람, 심지어 장애인에게 돈을 주고 사올 만한상품이라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말을 모르고 한국문화, 풍습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핑계로 본인이 좋든 싫든 상관없이 “한국에 시집을 왔으니까 무조건 한국 관습을 따라야한다”라며 타민족의 문화와 관습을 통째로 무시하고 외면하는 한국남편, 한국시어머니가 대부분이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길거리나 공장,학교 어디서나 베트남 사람이라고 하면 달라지는 눈빛과 표정, 무시하는 말 한마디 때문에 한국에서 살아가는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모멸감을 느껴 한국 생활에 나날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연수생이나 근로자들은 저임금과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나마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도 불법체류자라는 신분때문에 하소연 할 곳도 마땅치 않다. 물론 불법 체류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지만 불법체류자라고 하여 인격까지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왜 일부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사람을 대할 때 열등하게 취급하는 걸까?
한국에 와 있는 미국이나 일본 사람을 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는 아주 친절한데 왜 베트남이나 다른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까?그것은 아마도 베트남이 한국보다 가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오직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베트남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 상품처럼 돈을 주고 사와도 된다는 일부 한국 사람의 생각이 과연 옳은 생각일까? 과연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문화와 관습을 따라 자기의 문화와 관습을 버려야 할 만큼 한국의 그것들이 그렇게도 우월한가? 과연 한국 민족은 베트남 민족이 게으르고 더럽다고 흉을 봐도 될 만한 훌륭한 민족인가? 우리 한 번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를 되돌아봅시다. 나는 한국 역사에 대해 그리 많이 알지 못하지만 베트남의 역사와 다른 점이 뭔지 알고 있다. 한국은 베트남처럼 끓임 없이 외국한테 침략을 당해왔고 그럴 때마다 자유를 얻기 위해 끈질기게 싸워왔다. 그 중에 대표적인 예로 임진왜란과 36년간의 일제침략을 들 수 있다. 이 두 사건을 보면 2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적군이 일본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이 남의 힘을 빌러 일본군을 쫓아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의 도움을 받았고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때는 미국과 소련의 연합군의 힘을 빌어 와야 했다. 물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훌륭한 애국자들이 있는 나라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은 스스로 민족을 지키는 데에 힘을 못 쓰고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카이로 회담에 참석하지 못한 채 나라가 반쪽으로 분단되어 수많은 비극을 겪어야 했던 불쌍하고 억울한 민족이다. 반대로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점에서 보면 베트남이 한국보다 분명히 나은 점이 있다. 베트남도 끊임없이 침략을 당했지만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적을 남과 북이 한 마음으로 단결해 혼자의 힘으로 끝까지 이겨낸 민족이다. 제일 강한 미국을 이기고 통일을 이룬 나라는 베트남 민족이 세계적으로 유일하다. 한국은 외세로부터 독립하는데 또 다른 외세의 힘을 빌어야 했지만 베트남은 세계 최강대국을 물리치고 자유와 독립을 쟁취한 민족이다. 한국이 전쟁의 같은 피해자로서, 과거에 같은 적을 가진 민족으로서 서로 이해하고 전쟁을 통해서 입었던 상처를 서로 달래주고 위로하며 살아가면어떨까?
베트남과 한국은 전쟁에서 서로 총을 겨누고 싸운 과거가 있다. 나는 베트남을 침략한 미국을 도운 한국에 대해 그것이 한국인들의 진심에서 나온 일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강대국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대다수 한국인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베트남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한국의 역사를 배우면서부터 아리랑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린다. 한국 아리랑이 왜 그리 슬프고 애절한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마도 그 속에는 억울하고 한 맺힌 민족의 혼이 담긴 것 같다. 같은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일부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민족을 무시하는 것은 그야말로 부끄러운일이고 자신의 민족의 혼에 다시 한 번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민족마다 독특한 문화와 관습이 있고 그것들은 긴 역사의 흐름 속에 생겨난 것이다. 각 나라의 문화와 관습사이에는 그냥 차이가 있을 뿐 우열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제적 차이나 민족적 차이 때문에 인종 차별, 민족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니까.나는 10년 전에 한국으로 시집와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한국과 베트남에 대해 모두 자랑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자라길 바란다. “사랑하는 한국인 여러분! 앞으로 우리끼리 서로 무시하지 말고 존중하며 사이좋게 지내요. 불멸의 이순신도 같이 보고 독도에도 같이 가고 베트남의 유명한 관광지 하롱베이에도 같이 가면서 우정을 나누도록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