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대행기관 선정논의에 대한
인권 · 시민단체의 입장
정부는 고용허가제 대행업무 위탁기관으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현 중소기업중앙회) 대한건설협회 등 연수추천단체를 선정할 것을 결정하여, 제도 운영의 공공성 확보와 이주노동자 인권 및 노동권 보장이라는 고용허가제 도입의 근본취지를 스스로 묵살하였다. 더군다나 이러한 논의를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8차례에 걸친 비공개 밀실회의로 진행해 온 것이다. 정부가 도덕성마저 상실한 채 스스로 세운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음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국가적인 정책은 당연히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절차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절차를 도외시 한 채 고용허가제의 대행기관 선정논의를 밀실야합으로 진행해 온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대한건설협회 등 연수추천단체 가 누구인가? 지난 13년간 산업연수제 하에서 온갖 송출비리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로 언론을 장식하며 악명을 떨쳐 온 이권단체이다. 이들 이권집단에게 고용허가제의 운영 전반을 넘겨주기 위한 논의를 공개적으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스스로 세운 고용허가제 도입의 근본취지를 무시하고 산업연수제의 실패를 반복하는 정책적 퇴행이 진행되고 있음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국무조정실의 ‘산업연수제 폐지에 따른 고용허가제 운영체계 개선 방안’과 노동부의 ‘고용허가제 업무 대행기관 세부운영방안’ 이, 공개되면서 정부가 이미 지난해 말부터 밀실야합을 진행하며, 산업연수제하에서 송출비리와 인권침해로 악명을 떨쳐온 중소기업중앙회, 대한건설협회 등 연수추천단체를 고용허가제에 편입시키려 해왔음을 여실히 밝혀지면서 정부정책과정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르자 이를 무마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의 토론회를 그간의 밀실야합과 부도덕한 행정행태에 대한 비난을 무마하려는 졸속행정에서 발로한 기만에 다름 아님을 밝혀둔다.
우리는 오늘 다시한번 중기중앙회, 대한건협 등 연수추천단체의 비리와 이주노동자 인권유린을 고발하고, 정부의 밀실야합 · 졸속행정을 규탄하면서, 고용허가제를 제2의 산업연수제로 회귀시키려는 음모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1. 중기중앙회, 대한건협 등 연수추천단체의 노하우는 각종 비리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유린의 노하우이다.
“산업연수제의 연수추천단체를 고용허가제의 대행기관으로 지정하고자 하는 것은 오랫동안 외국인 근로자 업무를 담당해 왔던 산업연수제 운영단체의 노하우를 활용하여 외국인 근로자 도입업무의 원활한 추진과 서비스 제고를 위한 것으로서”(출처 : 고용허가제 일원화와 관련 공개질의답변서, 2006. 9. 26. 국무조정실)
“사업장 배정후 법무부에 외국인등록, 근무처변경, 체류기간 연장 신청대행, 출국 지원등의 일은 업종단체(연수추천단체)에서 대행하지 않고 산업연수생을 사용하는 업체에서 외국인노동자를 대신하여 직접 수행한다. 또한 외국인에 대한 고충상담, 이탈방지현장방문 등 사후관리업무는 업종별단체에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송출기관의 국내 지사가 주로 담당하고 있다. 송출기관의 국내 지사는 관련 비용을 외국인에게서 받는 송출수수료에 포함시켜 충당하고 있다. (중략)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산업연수제 대행 기관에서 사후관리 업무를 송출기관의 국내! 지사에 ‘위탁 관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주로부터 막대한 금액에 달하는 사후관리비를 징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처 :「외국인력제도통합에 따른 효율적사후관리 방안연구」 설동훈 외 4인)
정부는 중기중앙회, 대한건협 등 연수추천단체의 노하우를 높이 사고 있다. 그러나 설동훈 교수 등이 연구를 통해 작성한 글에 따르면 연수추천단체는 막대한 액수의 사후관리비만 챙겼을 뿐 사후관리에 관한 실제적인 일은 모두 송출업체에 떠넘겨 왔을 뿐이다. 즉 연수추천단체에 이주노동자 사후관리에 관한 노하우는 없다.
반면 매년 언론에 오르내린 비리양산의 노하우는 확실히 인정된다. 뿐만 아니라 송출업체의 국내지사와 함께 연수추천단체가 연수생에 대한 인권침해를 자행해 온 노하우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음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기협, 대한건협 등 연수추천단체는 매년 연수생과 연수업체로부터 수백억원의 사후관리비를 받아오면서도 모든 책임을 송출업체에 넘긴 채, 기본적인 사후지원은 고사하고 오히려 고충을 토로하는 연수생에 대해 상식이하의 인권억압을 저지르거나 강제출국 협박 등 온갖 횡포를 자행해왔다.
94년 중기협 연수협력단장이 송출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처벌되었고, 98년에는 중기협 회장이 연수생 관리업체 선정 청탁 대가로 2천만 원 상당 물품을 받아 기소되었으며, 2001년에는 국정감사를 통해 104억에 달하는 연수생 적립금 등으로 차량구입, 퇴직금 지급 심지어 콘도를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2002년에는 중기협의 전 상근부회장 등 간부 2명이 50여명의 브로커와 결탁하여 필리핀과 중국으로부터 300여명의 불법 입국을 알선하고 5억여 원을 받아 구속되었다. 한편 올 해 7월말에는 연수추천단체 중 하나인 대한건설협회를 통해 산업연수생을 고용한 건설회사가, 건설협회의 지침에 따라 사업장 이탈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연수생 41명에 대해 강제적금을 들게 하고 이에 대해 은행으로 하여금 예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 求?인권침해 사건도 있었다.
이와 같이 비리와 인권침해의 노하우만을 축적하고 있는 연수추천단체에 해외 현지에서의 면접 · 선발부터 입국 후의 사후관리에 이르는 전반적 과정의 대행업무를 맡긴다는 것은 온갖 비리와 인권침해로 얼룩진 산업연수제의 실패를 다시금 반복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면서 원활한 업무추진과 서비스 제고를 기대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 아니고 무엇인가?
2. 이익집단인 연수추천단체의 고용허가제 대행기관 편입은 한국정부 스스로 송출국과의 MOU를 깨고, 송출비리의 만연을 묵과하겠다는 것이다.
“필리핀 노동부(DOLE)는 본 양해각서에 따라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노동자를 모집, 선발, 송출하는 책임을 가진 정부기관이다. 본 양해각서를 이행함에 있어 필리핀 노동부와 한국 노동부는 필리핀 노동부 산하기관으로서 필리핀 정부예산으로 재정이 충당되고, 필리핀법에 의해 해외송출을 규제하도록 규정된 POEA(필리핀해외취업관리청)가 송출기관으로서 모집, 선발, 송출에 직접 참여하는데 동의한다.”(출처 : 「필리핀과 체결한 MOU 내용 일부」)
이를 분석하면 인력송출에 관한 업무를 맡아야 할 기관으로 첫째, 노동부의 산하기관일 것, 둘째, 정부법에 의해 해외송출을 규제하도록 지정된 기관일 것, 셋째 필리핀 정부예산으로 재정이 충당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이 같은 세가지 조건이 고용허가제 인력송출기관의 최소조건임을 양해각서를 통해서 합의하였으며, 이 같은 기준으로 다른 송출국과도 유사한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이는 단순히 송출기관에 대한 기준을 정하는 것을 넘어 고용허가제 운영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정이다. 그런데 노동부의 산하기관도 아니고, 법률에 의해 규정되지도 않았을 뿐만아니라, 정부의 예산에 의해 운영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사업주와 이주노동자로부터 사후관리비를 받아 부당한 폭리를 취해 온 중기중앙회, 대한건협 등 이익단체를 대행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은 한국정부가 스스로 공공운영의 원칙을 깨는 것이 될 뿐이다. 이는 향후 현지 송출국들의 MOU 해당조항의 수정 및 자국 송출시스템을 노동부 관할하의 경쟁체제로의 변환하겠다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정당한” 요구에 부딪혀 공공송출의 근거를 상실하게 될 뿐 아니라, 실제 송출국내 유사한 이익집단의 참여로 이어져 고용허가제의 기본전제인 공공송출원칙이 무너지면서 송출비리의 만연으로 이! 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야말로 산업연수제하에서 송출비리를 통해 배를 불려 온 이들이 가장 바라는 바가 아니겠는가?
3. 예산 · 인력의 부족을 이유로 이익집단 편입을 정당화하며 사후관리비 징수를 운운함은 이익집단의 이권보전을 위한 기만일 뿐이다.
“업무대행료 및 취업교육비는 사업주, 사후관리비는 사업주 및 근로자가 각각 부담하는 것을 원칙. 수수료 산정은 사후관리비 등을 포함하여 구성 항목별 금액 및 징수 방법 등 세부사항 별도 마련.”(출처 : 산업연수제 폐지에 따른 고용허가제 운영체계 개선방안, 2006. 8. 국무조정실)
“고용허가제 운영은 당연히 국가의 관리감독사항이라고는 하겠으나 기업 등에서 필요한 인력을 도입하는 과정을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들여 국가기관을 설립하여 국가가 직접 관리 운영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지 의문이며” (출처 : 고용허가제 일원화와 관련 공개질의답변서, 2006. 9. 26. 국무조정실)
위의 정부주장을 요약하면 ‘국가에 의한 공공운영의 필요성은 당연히 인정되나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민간 이익단체에 이를 맡기고 사업주와 이주노동자에게 사후관리비를 받아 이익단체의 이권을 보장하면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도 운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일면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중기중앙회, 대한건협 등 이익집단의 이권보전을 위한 억지논리에 불과하다. 즉, 수수료 등의 책정을 통해 비용을 충당하고 이를 통해 사후관리 등을 함에 있어 당연히 인정되는 정부기관을 통한 공공운영 방식이 아니라, 그간 비리와 인권침해로 악명을 떨쳐 온 이익집단에 맡겨 산업연수제에 이어 고용허가제하에서도 지속적인 이권을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다.
고용허가제의 기본취지는 제도 운영의 공공성 확보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이다. 그런데 정부는 공공성을 뒤로하고 이주노동자의 인권침해를 방조하면서 이익집단의 이권을 챙겨주겠다고 한다. 오히려 사후관리비를 받아 정부기관의 인력을 충원하고 필요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고용허가제 도입의 기본 취지에 맞는 것이 아닌가?
4. 눈가리고 아웅하는 정부의 위선과 안일 속에 외국인력제도의 파행이 계속된다.
정부는 고용허가제로의 일원화에 대한 결정이 확정되었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결정대로라면 2007년 1월 1일부터 한국 땅에 연수생이라는 이름의 이주노동자는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내년에도 산업연수생은 존재한다. 중기중앙회, 대한건협 등 연수추천단체와 송출업체들의 연수생을 대상으로 한 인권침해 노하우 경쟁도 계속된다. 정부가 자신있게 발표한 일원화는 사실상 없다. 그저 산업연수생의 도입만 정지될 뿐이다. 정부는 기존 정책에 의해 결정된 연수생 도입인원이 남아있고, 연수추천단체 및 송출업체 그리고 연수업체 사업주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정부는 남아있는 쿼터를 통해 마지막으로 도입된 연수생의 체류기간이 1년이 지나는 시점이 되면 모든 연수생의 체류지위는 고용허가제하 노동자로 편입되어 산업연수제 하에서 관리되는 연수생은 없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주장이 신뢰를 잃은지 이미 오래다. 오히려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을 넘어 안일하기 그지없는 정부의 태도에 고개가 내둘러진다.
산업연수제하의 시스템에 따르면 연수생은 1년의 연수와 2년의 연수취업 노동자의 신분으로 노동을 하도록 되어있다. 연수기간 1년은 연수추천단체와 송출업체의 관리를 받지만, 연수취업기간인 2년은 분명 국내법상 노동자로써 이들에 관한 업무는 당연히 노동부의 소관이어야 한다. 그러나 연수기간 1년은 물론이거니와 연수취업기간인 2년의 기간 또한 연수추천단체와 송출업체의 관리를 받고 있는 형편이다. 기존의 정책결정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법적인 신분상의 변화가 있음에도 기존의 부당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마지막 연수생이 도입되고 1년이 지난 후에도 반복될 수 있음에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고용허가제로의 일원화를 확정한 시점에서도 기! 존 질서의 유지에 대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정부에 대해 단호한 의지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산업연수제와의 병행과 그로인한 외국인력제도의 파행은 2007년 이후에도 계속되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의도하는 바는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제의 운영을 중기중앙회, 대한건협 등 연수추천단체에 맡김으로써 ‘제도운영기관의 이익집단화’를 실현하자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용허가제 시행 2년, 정부에 의해 고용허가제가 죽어가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과 제도운영의 공공성 확립을 내세우던 정부가, 스스로 세운 기본적인 원칙마저 무시한 채 밀실야합을 통해 고용허가제를 ‘제2의 산업연수제’로 변질시키려는 획책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오늘 우리는 모든 이주노동자와 인권 · 시민사회단체의 의지를 담아 부도덕한 이중성으로 이익집단의 이권보전에 급급하며 공정한 제도운영과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묵살하는 정부를 다시금 규탄하며, 다음의 사항을 강력히 촉구한다.
1. 정부는 밀실야합 · 졸속 · 기만행정을 즉각 중단하라!
2. 중기협, 대한건협 등 이익집단의 고용허가제 대행기관 지정을 즉각 철회하라!
3. 제도 일원화 결정 기만이다. 산업연수제를 완전 폐지하라!
4. 고용허가제 운영을 정부기관으로 일원화하고 이익집단의 개입을 배제하라!
5.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보장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라!
2006년 10월 2일
고용허가제 사후관리업무 중소기업중앙회 등
연수추천단체 편입 반대 공동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