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여성화와 성산업 현장의 이주여성
                                        
한국염(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지난 6월 30일에서 7월 3일까지 방콕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 여성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1995년 북경 세계여성대회 이후 10년 동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여성의 위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북경 여성행동강령을 각 국이 얼마만큼 시행했는지를 점검하고 이후로의 여성의 과제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아태지역은 전 세계인구의 60%가 살고 있으며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다. 자연히 그 종교와 문화의 색깔만큼 여성의 자리매김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 대회에 모인 여성들의 외침은 하나! 성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여성단체연합을 중심으로 북경여성대회행동강령 평가 작업을 실시하였고, 북경대회에서 다루어진 12개의 여성관련 주제 외에 가족, 이주, 장애, 동성애 문제가 새로운 주제로 청가되었다, 이주여성노동자에 관한 주제는 이미 북경대회 행동강령에 빈곤, 경제, 교육, 인권, 폭력 등 5개 사항이 들어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주노동자의 문제가 뒤늦게 부각되었기 때문에 한국여성단체의 공식적 자리에서 한번도 논의된 바가 없는 주제였다.  우리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는 내년이 북경대회 10년을 맞는 해라서 이 부분에 관한 평가 작업을 하려고 계획을 하던 차에 여성단체연합이 이주여성문제를 새로운 이슈로 다루기로 함에 따라 자연히 그 작업을 맡아 하게 되었다. 이주여성과 관련한 북경행동강령 평가작업은 우리 센터 독자적이 아니라 이주여성인권연대, 새움터가 같이 공동작업으로 실시했다. 처음 모인 자리에서 이주여성의 영역을 노동분야, 국제결혼가정, 성산업에 유입된 여성 세 분야로 영역을 나누었다. 노동 분야는 우리 센터가, 국제결혼 분야는 이주여성인권연대가, 성매매 분야는 새움터가 맡아서 장장 17쪽의 평가 자료를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여성단체연합이 이주여성분야를 새로운 주제로 다루기는 했지만, 언론에서 다루어진 위상이나 빈도를 보면 한국에서 이주여성문제는 여전히 소외된 주제임은 틀림없는 듯하다.  

   그런데 아・태 지역 여성대회에 참석해보니 이주여성문제는 매우 뜨거운 사안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주여성과 관련한 워크숍에 참석하면서 두 가지 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나는 ‘이주의 여성화’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성산업 노동자’문제였다.

  ‘이주의 여성화’라는 문제는 지구화와 빈곤, 경제, 인권문제를 다루는 거의 대부분 분야에서 제기되었다. 이미 Year Book 2000에 이주의 여성화가 통계로 언급되었듯이, 아시아에서 이주의 여성화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나드는 여성들이 전체 이주노동자의 65%에서 75%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주의 여성화’문제는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이주의 여성화’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생산직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비율이 35% 정도 되고,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여성의 수는 2만 미만이고, 성산업에서 일하는 이주여성들의 통계가 파악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주의 여성화’라는 말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학자들도 있지만, ‘이주의 여성화’를 말하는 것은 아직 이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여성화’라는 단어와 맞물려 ‘이주의 여성화’라는 말에서 가난한 아시아 여성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이 대회에서 ‘이주의 여성화’와 맞물려 대두되는 논의는 ‘성산업여성노동자’ 문제였다. 이미 우리나라의 경우 연예인 비자를 갖고 들어오는 여성들의 대부분이 성산업에서 일할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고, 실제로 항구도시나 이태원 등에는 러시아 여성들이, 기지촌의 70-85%가 한국여성에서 필리핀이나 구 소련계 여성으로 대치되고 있다는 통계를 접하고 있는 실정에서 성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 여성의 문제는 심각한 주제일 수밖에 없다. 필리핀, 태국, 인도, 버마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의 여성들이 나라의 가난과 자기 집안을 살리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가서 성산업 현장에서 일을 한다. 아시아의 여성들이 타국의 성산업현장으로 가는 이유도 다양하다. 일차적으로는 가난과 직결되어 있다. 어떤 나라들은 외화를 벌기 위해서 국가가 이 일을 암묵적으로 장려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박정희 시절 일본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기생관광이라는 걸 장려한 적이 있었으니 남의 일이라고 욕할 수도 없다. 어떤 나라의 경우는 군사독재 때문에 언제 잡혀갈 줄 모르는 불안한 상황 때문에, 또 어떤 나라는 종족 간의 싸움과, 종교 간의 갈등으로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강간을 당하고 억압을 받으며 살고 있는데, 자국에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외국에 나가 몸이라도 팔며 생존하는 게 났다.” 하는 절박한 심정에서 성매매 이주를 하는 경우 등, 많은 사례들이 오고 갔다. 빈곤의 여성화, 종교적 정치적 억압 장치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여성들을 성산업 이주로 몰고 간다.

   문제는 성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 여성들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 하는 점에 대한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다는 것이다. 성산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로 ‘Sex-Worker’라는 말이 노골적으로 오고 갔으며 이 ’Sex-Worker’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들은 이 일을 직업으로 인정하고 노동자가 갖는 권리를 획득하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위안부 제도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남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으로 성산업은 오히려 없어져야 할 일이니 ‘위안부’를 여성의 직업으로 인정하는 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공창제가 성산업여성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음으로 양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간간히 나오기도 하지만, 아직 우리 여성학계나 여성운동 계에서 성산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노동자로 보아야 한다는 이론은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오히려 성매매 추방운동을 벌이고 있고, 성매매방지법까지 통과시킨 마당에서 처음에 ’Sex-Worker‘라는 말을 듣는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연이은 충격은 ’이주의 여성화‘를 이야기 할 때 그 대상이 바로 이 ’Sex-Worker‘를 겨냥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주의 여성화‘를 논하면서 간간히 가사도우미나 국제결혼가정의 문제가 간간히 언급되었을 뿐, 생산직에서 일하는 이주여성들의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이주 여성노동자 관련 워크숍 분위기는 한국의 이주여성 상황과 매우 다른 분위기였다. 우리는 생산직 여성 노동자, 국제결혼이주여성, 성산업 이주여성으로 이주여성을 분류하고, 각 분야에서 여성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 지를 모색하는 데 비해, 이 대회에서는 성매매 이주여성 문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실상 아시아 나라에서 생산직 이주여성노동자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대만을 비롯한 소수의 국가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봉제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든 시점에서 어쩌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성산업에로의 이주가 주류를 이룰지 모르겠다. 아니면 첨단산업에서 여성이주노동자의 섬세한 손길이 더 필요하게 되어 이주여성노동자가 증가하는 분위기로 갈까?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여성의 빈곤화‘,  ’이주의 여성화‘란 말과 아울러 머리 속에서 ’이주여성의 성산업화‘라는 신종 용어가 떠올랐다.

   아무튼 이렇게 ‘이주 여성의 성산업화’ 란 용어를 써도 무방할 만큼 성산업에로의 유입이 주류를 이루는 아시아 여성 이주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아시아의 여성들과 연대하며 이주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 일할 수 있을까? 이번 아시아-태평양 지역 여성대회를 통해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성산업에서 일하는 이주 여성들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가?  이주여성노동자로? 아니면 성매매 피해자로? 그도 아니면 어떤 눈으로?  추방해야 될 성매매와 생존방식으로서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성산업에서 일하는 아시아 이주여성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길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