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되지 않은 이주여성들의 삶 이야기

이야기모음집 <느린 언어로의 낯설지 않은 대화2>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희정  

<어느 집에서 양과 젖소 한 마리가 함께 살았습니다. 그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기 돼지가 주인에게 다리를 잡혀서 끌려갔습니다. 당연히 그는 막 비참한 소리로 꽥꽥거렸습니다.
돼지의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양과 소가 귀를 막고 입술을 길게 내밀고 비웃으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무섭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못 듣겠어. 우리도 여러 번 다리를 잡혀서 끌려갔지만 당신처럼 소리 지르지는 않았어.”
돼지는 차에 끌려 올라가기 전에 눈물을 쏟으면서 두 친구에게 말을 했습니다. “당신들은 잡혀가도 털과 우유만을 빼앗기지만 나는 잡히면 생명을 유지하지 못한단 말이에요.”>

▲ <느린 언어로의 낯설지 않은 대화2> 속 이주여성의 글과 그림

베트남 여성 스언이 들려주는 베트남의 동화(번역 레티마이 투) 속에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데 무지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찌르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드러난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펴낸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모음집 <느린 언어로의 낯설지 않은 대화2> 속 한 대목으로, 이주여성들이 각자의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동화를 소개한 내용의 일부이다.

비록 짧은 동화지만 우리는 이 속에서 베트남 사람들의 의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고, 이 동화를 선택한 이주여성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흔히 한국사회에서 이주여성 혹은 외국인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단편적이고 단면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내세우는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이주여성들의 모습은 얼마나 ‘한국적’이고 한국생활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가에 치중하곤 한다. 한국에서의 삶을 강조하는 반면, 그녀들이 ‘원래 속했던 곳’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

<느린 언어로의 낯설지 않은 대화2>와 같은 시도들이 환영 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는 이주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거칠고 소박한 날 것 그대로 담겨 있다.

책을 펴낸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센터를 찾는 이주여성들의 한국어 교육과 자기표현을 돕기 위한 일환으로 생애사, 정체성 찾기, 폭력경험에 대한 글쓰기 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엮게 되었다고 밝혔다.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글쓰기교육에 참여한 이주여성들

한국염 대표는 머리말에서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로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자기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데다 일종의 문화적 폭력”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 이주여성들이 온전하게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택했다고 말한다. 모국어로 글을 쓰거나, 구술하기, 그림으로 이야기하기 등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느린 언어”로 (이주여성들에게)“낯설지 않은”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주여성들은 저마다 사연도 제 각각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고, 끔찍한 가정폭력에 경험에 고통스러워 하는 여성들도 있다. 어느 사회든 사람의 삶은 다양한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주여성들의 행복은 ‘운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국적’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불안정한 신분, 서로가 속한 사회에 대한 이해부족 등으로 새롭게 맺어진 가족들과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큰 조건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또한 폭력과 갈등에 노출되었을 때 그 상황에서 탈출하는 것 또한 상대적으로 훨씬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한국 사회는 먼저 이주여성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의무’가 있다. 그것이 진정한 ‘다문화 사회’를 향한 첫걸음일 것이다.

<느린 언어로의 낯설지 않은 대화2>는 다양한 방법들로 이주여성의 삶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조금 더 넓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