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가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어느날 남편은 회사를 아주 그만두고
당당하게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일찍이 한번도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해 본 적도 없었다
좀 쉬다 다시 시작하려니…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강한 남편 성격에 오래 쉬지는 않을것이다 그리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편은, 내가 보기엔 너무 이른데도 돈버는 일이 아닌 노년의 삶을 당당하게 시작했다
그동안 내 일이었던 경제권도 당연히 그가 거두어 갔다
그 사이 노후대책으로 사 놓았던 집들도 다 팔았다
팔고 난 후 강남의 그 집값은 춤추듯 뛰어 오르고
우리 주머니 사정은 한없이 초라해졌다
내가 쓰는 용돈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언쟁을 하고…
구차하고 쓸쓸했지만 우린 새롭게 서로 적응해야 했다.
하나밖에 없는 언니는 태어나서부터 결혼 30년 세월을 고향에서 살다
두번의 사업 실패를 겪고 2001년 가을
막막한 중년의 나이에 서울로 단봇짐을 싸들고 오더니
암까지 걸려 2002년 봄 수술을 받았다
먹고 사는 것도 수술비도 막막한 언니, 방사선치료 항암치료 갈 길이 먼데
언니에겐 낯선 서울이라 난 언니의 길잡이요 길동무였다
정혜숙의 권유로 따라 나선 길
이주여성인권센터 모성보호팀 회합에 별 결심도 없이 참석했다
그저 뭔가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간간히 해 왔었으므로.
집안에서 교회안에서도 내가 할일은 많고도 많았는데
주어진 내 몫의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또 무슨 새로운 일을 할거라고 ㅊㅊㅊ
혀를 찰 노릇이었다.
어느모로 봐서도 내가 이여인터에 발 디딜 사정이 아니잖는가
누가 등 떼밀었을까 그저 해야 할 일이지 싶었다
한집 두집…..그렇게 서서히
어려운 베트남 엄마와 아기들을 만났다
작은 쪽방에서 눈이 크고 초롱초롱한 아기들이 크고 있었다
불법체류자라는 걱정을 가슴에 안고 있으면서도
어린 나이의 엄마들은 참 씩씩했다
아기를 가진 일도, 낳아서 키우는 일도,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그러나 그들에게 한국은 희망과 꿈을 얻는 나라였다
옛날 독일에서, 그리고 지금도 미국에서 일본에서 우리가 그랬던 것 처럼.
너무 말라서 한 열댓살로 보였던 베트남인 레몬이 아들 바나나를 얼마전 고향으로 보내더니
딸기는 불법체류 단속이 무서워 8개월된 딸 버찌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남편을 두고서.
그 작은 방 두쪽 창문조차 사람이 없는듯 가리고
방문을 닫아 걸고 지내는 두려운 불법체류자인 엄마들
문제는 부부 둘 중 한사람이 불법체류자일 때이다
그중 한 사람이(대부분 일하고 있는 남편) 체포되어 강제 소환되면
갓난 아기와 엄마가 홀로 남게 되는것이다. 이게 옳은 일인가?
30년이 지난 독일에서 일 할때 그곳에서 만나 결혼해 사는 한국 근로자, 학생들도 꽤 많았다
그러나 독일에선 외국인 노동자 혹은 학생 부부 중 한사람이 정상적인 노동 허가서가 있을 경우
그 가정은 보호받았다. 가정은 보호받아야 하는 인권의 가장 기본 핵심 아닌가
부부 중 한사람이 연수 기간이 끝나도
다른 일자리를 구해 단란한 가정을 두려움 없이 꾸리는 걸 보았다
그 사회의 필요한 사람으로 대우받고(특히 실업,산재,건강보험 혜택)
그 사회에 도움을 주는 당당한 소비자로 인정받기도 하던데….
그리고 더욱 독일에 대한 좋은 감정을 지니고 돌아와
다시 그 나라로 여행을 가고 그 나라 물건을 사는 고객이 되었는데….
우리나라는 지금 이땅에 와 있는 외국 노동자들에게 왜 그럴 수 없을까
장미와 국화, 그리고 네팔인 수련이 애기를 고향으로 보냈다
건강한 아이라면 무슨 걱정이랴
베트남인 나리의 아들 똘밤이는 구개파열(언청이)이 너무 심한 3개월된 아기인데
난 그렇게 심한 언청이는 처음 보았다
그러나 수술받고 몰라보게 좋아져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감격하고 한국 만세를 외치는 똘밤이네.
그리고 새로운 친구 보라과 하양을 만났다
이제 임신 3.4개월인 수줍고 두려움이 많은 임산부들
말이 제대로 안 통해 비싼 특진을 받고 의료보험이 없으므로
임신 초기 진료비로 한달 봉급의 절반 가까이를 내고 온 보라
첨 만났을 때 3개월 애기에게 돐지난 아기들이 먹는
이유식을 먹이고 있던 레몬은 또 어떻고…
젖이 부족하다고 신생아에게 홍차를 먹이는 엄마가 있다고
최국장이 놀라던데….
돌아 보니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있는 종교단체, 인권위단체,
무료봉사하는 전문직 의료진들,비전문직 자원봉사자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몸으로, 마음으로, 또는 후원금으로.
정부가 합리적이고 인도적이며 뭔가 명쾌하게 일하지 못할 때
다행히 우리 주변에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가 빛으로 살기를 원하기만 하면 어렵지않게 작은 빛으로 살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여러가지가 다 막막한 일인데도 나는 감사하고 평화로왔다
축복은 어려움과 고통의 옷자락 끝을 잡고 따라온다 했던가…
내 작은 일 손을 반기는 이여인터의 모성보호팀을 일구는 한국염목사님 최진영국장
그리고 정혜숙팀장 우리 모성보호팀, 자원활동가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