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와의 재회는 지난 겨울, 집에서 쫓겨났다며 커다란 가방과 아기를 안고 나타난 것으로 시작되었다. 다시 만나 반가운 이가 있는가하면 어떤 이와의 만남은 긴장을 갖게 하기도 한다. Y는 내게 긴장감을 갖게 했다. 이번엔 또 뭔 일이….

지난해 여름이었다. 커다란 배를 내밀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 센터로 찾아온 Y. 한국에 온 지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임신했는데 이혼하자는 남편의 손에 끌려 강제로 법원에 다녀온 뒤 놀란 Y는 무작정 집을 나와 친구 집을 전전하다 우리센터를 찾아왔다.
남편의 이혼요구를 받아들이자니 자신의 처지가 심란하다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을 잇지 못하던 Y…
꿈의 나라 한국으로 시집가는 Y를 부러운 시선으로 보낸 고향사람들 앞에 이혼하고 아기와 함께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라고 했다. 이혼한 여성을 쉽게 생각하기에 더욱이 한국에 갔다 온 여성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을 감당하며 살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Y는 어떻게 하든 한국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키우겠다고 결심했다. 허나 남편은 Y에 몽골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돌아가는 조건으로 아기의 양육비를 삼년간 매달 미화 백 달러를 보내주고 돌아갈 때 비행기표를 사주겠다고 했다. Y는 그 돈으로는 몽골에서 아이를 키우기에는 턱없이 힘들고 차라리 자그마한 아파트라도 장만해주면 아이와 함께 살아보겠다고 요구했다. 삼년간 백 달러씩 줄 돈을 목돈으로 주면 돌아가 살아보겠다는 것인데 남편은 Y의 요구를 거절하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아기는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냈고, 우선 급한 건 무사히 아기를 낳는 것이었다. 아기 낳는 일은 Y가 원하는 대로 하기로 남편과 합의하고 Y에게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더니 남편이 자신을 받아주면 남편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태어날 아기와 함께 다시 잘 살아보고 싶다는 희망을 안고 Y는 남편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가 태어난 후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Y나 남편, 그리고 시모 모두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를 보며 기뻐했다. 아기 낳기까지 무수한 얘기가 오갔으나 모두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외국인여성이 남편과 이혼하지 않게 도와달라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동사무소 복지담당이라고 했다. 인상착의가 영락없는 Y였다. 센터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기다렸으나 연락이 없던 Y가 4개월 만에 쫓겨났다고 들이닥친 것이다. 연락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