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들 모임에서 김선배를 만났다. 언제보아도 학을 떠올리게 했던 선배는, 이젠 품위 있는 중년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여리고 고운 심성을 아는 터라 무턱대고 ‘도와주세요’하고 손을 내밀었다. 선배역시 어려운 사정인데도(선배의 언니가 암투병중이었다) 거절하지 않고 쉼터일을 도와주시겠다고 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비탈지고 구불구불한 거미줄같은 창신동 골목을 혼자 걸을때보다는 이젠 한결 힘이 덜 든다. 출산한지 일주일밖에 안된 아이를 안고 쉼터를 찾아온 산모가 있었다.
선천적 기형아였다. 얼마나 당황하고 절박한 심정이었을까. 산후 엄마건강은 생각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처음 아이를 보는 순간 얼굴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만 보였다. 윗입술과 입천장 목젖 까지가 없는 상태인데 아이가 울고 있었으니 얼굴의 반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모유를 빨 수가 없는 상태여서 특수하게 만든 젖꼭지로 바로 식도로 넘어가게 해서 분유수유를 했다. 다행이 다른곳은 건강하고 정상상태여서 수유만 잘하면 자라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조그만 우유가 많이 넘어가도 사례가 들려서 기침을 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허둥대고 당황하는 나보다 산모는 침착하게 아이에게 분유를 먹일 줄 알고 있었다. 참 잘생긴 사내아이었다.
아직은 너무 어려서 3개월쯤 지나야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병원비걱정에 쉼터식구 모두 얼굴이 어두웠다 (약 2천만원쯤 소요될 것이라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얼굴 모습이 지워지지 않아 며칠 밤을 잠만 깨면 아이 생각이 났다. 아이가 잘 자라야 수술도 가능하므로 선배와 함께 정규적으로 방문해서 보살폈다.
아이는 감기에 걸리지 않고 겨울을 맞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수술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 별별 생각을 다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아주 커다란 교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교회다. 날씨가 조금만 누그러지면 아이 엄마는 아이를 안고 나는 “도와주세요” 라고 쓴 피켓을 들고 교회 앞에 서 있어야지 하는 생각도 하고,
그렇게 걱정하는 동안 기쁜 소식이 있었다. 다일공동체에서 하는 다일 천사병원에서 무료로 수술을 해 주기로 한것이다. 수술날짜가 잡히고 아이 상태가 나빠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가슴 졸이는 시간이 흘렀다. 김선배와 나는 아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이 썼다. 잘 자라는 아이도 예쁘고 아이를 잘 키우는 엄마도 고마워서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선배는 네 살짜리 손자를 키우는 중이라 그래서인지 아이를 바라보고 만지는 모습이 나와는 사뭇 달랐다. 선배가 아이를 만지고 보살필 때 나는 천사를 본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한번도 감기를 앓지 않던 아이가 예정된 수술을 앞두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안타깝고 온몸에 힘 죽 빠지는 듯했다. 다행이 며칠을 기다려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은 잘 되고 이젠 아이가 울 때 커다랗게 보이는 구멍은 없어졌다.
아이의 웃는 얼굴이 너무 예쁘다. 겨울을 보내면서 혹독한 추위도 있었지만 따뜻한 천사(선배) 옆구리에 팔짱을 끼고 걸을 때면 나는 너무도 행복했다.
지난 한 해 동안 10명의 아이들이 우리팀원들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참으로 가슴 저리는 일은 아이가 한참 예쁜 짓 할 때쯤이면 자국으로 보내져 친정이나 시댁에 맡겨지고 엄마들은 다시 일을 해야만 한다. 그 아픔을 잘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팀 모두가 독일에서 살았던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