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는 네팔여성이다.
대학에서 Arts History를 전공하다가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3년전 한국으로 돈벌러 왔다. 여러 공장을 다니면서 일하다가 남편을 만나서 작년에 결혼을 하였다. 가구공장에서 일하다가 임신을 하게되어 그만두고 집에서 쉬다가 아기를 출산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기가 식도와 기도가 뚫려있는 기형아로 태어났다. 포천의 개인 산부인과에서 수술하여 출산하였는데 아기가 심하게 이상이 있어 의정부 성모병원으로 옮기게 되었고 거기에서도 수술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여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 가서 수술하게 되었다. 다행히 수술결과는 좋은데 어쩌나, 심장에 이상이 있고 폐렴 증세가 있어 의정부 성모병원으로 다시 와서 입원했다. 또한 젖을 빨 힘이 없어 호스를 위까지 끼워서 우유를 호스를 통해 먹어야 한다. 주먹만한 아기가 호스를 입안에 물고 쌕쌕거리며 인큐베이터에 누워있으니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도움요청을 받고 의정부 성모병원에 가서 엄마를 만났다. 아기를 보고 나온 엄마의 모습은 처연하였다. 상태가 안좋아 좀더 지켜봐야 한단다.
한달여의 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9월11일 퇴원한다고 하여 병원에 갔다. 그런데 아직도 산소수치가 떨어져 일주일 더 병원에 두고 보잔다. 지금 상태로 퇴원하면 산소통을 가지고 가야하며, 가끔 숨을 쉴수 없는 상태가 되면 산소를 코에 불어 넣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주일 더 병원에 있도록 하고 그냥 나왔다. 아기엄마는 아기의 옷과 겉싸개를 가지고 왔는데 그냥 도로 가지고 가게 되었다. 가슴에 꼭 끌어 안은 모습이 아기를 꼭 끌어 안은 것 같아 마음이 찡하였다.
9월18일 다시 병원에 갔다, 다행히 산소 수치가 정상으로 되었고 퇴원해도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직 목에서 호스를 뗄 수가 없단다. 그래서 아기 엄마가 일주일동안 병원에 와서 호스로 우유먹이는 방법을 배웠단다. 가느다란 호스를 입안에 물고 있는 아기를 보면서 건강하게 잘 자라줄까 걱정이 되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아기갖기전에 다녔던 회사 사장님이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살던 곳이 아기키우기 힘들다고 작은 집을 마련하여 이사하도록 도와주었다. 방하나, 부엌달린 거실, 화장실, 작지만 깨끗한 집이었다. 아기는 방에 누이고 아빠는 바로 일하러 공장에 갔다. 버나는 네팔음식을 한가지 볶아서 밥과 함께 내왔다. 밥위에 음식한가지를 얹어 밥상도 없이 손에 들고 먹는데 맛있었다. 아기가 아직 호스를 끼고 우유를 먹기 때문에 2-3일에 한번씩 가정 간호사를 병원에서 파견하여 호스를 갈아끼우는 것을 돕고 아기의 건강상태를 돌보아 준다고 하니 좀 마음이 놓였다. 버나는 영리한 여성이었다. 아기를 정성껏 돌보면서 가정간호사에게서 호스를 빼고 끼우는 방법을 잘 배웠다. 가정간호사가 집에 오는 것도 돈이 들기 때문에 버나는 열심히 배우고 아기를 돌보면서 두주 지나면서 간호사를 오지 말라고 하였다.
추석에 아기보러 포천에 갔다.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아직 호스를 떼지는 못했지만 엄마와 아빠의 아기사랑은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것 같다. 네팔에서 유명한 가수가 와서 공연한다는데 아기를 돌보기 위해서 거기에 가는 것은 포기했다. 아기사진과 엄마여권을 일본에 있는 대사관으로 보내어 출생신고를 하고 여권도 만들어 왔다. 아기가 건강하면 고국에 보내어 할머니가 키우게 하고 버나는 돈을 다시 벌어야 한다. 아기수술비도 아직 다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보다도 아기는 아직 심장에 이상이 있어 계속 지켜봐야 한단다. 다음주에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 가서 심장을 체크해 보아야 한다. 초음파검사를 통해 심장이 어떠한지, 또 수술해야 할는지……….
우리센터에서 의료비를 일부 지원하기는 했지만 워낙 많은 의료비로 친구에게서 돈을 꾸어 썼고 아직 병원에 수술비도 다 갚지 못하였는데 심장수술은 안해도 될 정도로 건강해 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