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이주노동,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9월에 열린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에서 ‘이주의 여성화’ 문제를 다루면서 해당 국가에서 이주여성들이 직면하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주거환경, 특히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 등 인권의 문제가 드러난다. 인권문제 외에도 심각한 과제가 제기되었다. 그 하나는 여성의 이주에 끝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한 예를 통해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

  k는 네팔 여성으로 한국에 온지 6년이 되었다. 그녀는 5남매 중 맏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하다 다친 후 일을 못하고, 어머니가 시장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여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카펫 짜는 일을 해 가계에 보탰다. 결혼을 한 후에도 카펫 짜는 일로 시가의 생계를 책임지다가 1997년 12월 15일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비자형태: D3). 원래는 그녀의 남편이 한국에서 일하게 되어 있었다. 남편은 1996년도 6백만 원을 지불하고 산업연수 자격으로 입국했으나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몸이 아파 귀국했다. 연수비용이 이미 지불된 상태라 업체에서는 남편을 대신해 갈 사람이 있으면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제의했고, 남편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으니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녀의 친정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맏딸인 k가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k는 일곱 살 된 아들을 두고 남편 대신 한국에 돈을 벌려고 왔다.

  k는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 배치된 연수업체에서 9개월간 일을 했다. 월급은 총 50만 원 정도 받았는데 회사에서 적립금(15만원), 의료보험료(6천원), 연수생 위탁관리비(2만4천원)를 원천 징수하고 실제로 k가 받는 돈은 3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돈을 모두 집에 보냈지만, 한국에 오느라 꾼 돈도 갚을 수 없었다. 그나마 회사가 잘 운영이 안 되고 급여가 제때 나오지 않아 하는 수 없이 k는 연수업체에서 탈출해서 서울로 왔다. 서울로 올라와서 불법체류자로 어느 봉제공장에서 시다 일을 했다. 처음 받은 급여는 70만원으로 연수생 때보다 두 배가 많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일백만 원 정도 받는다. 그 돈으로 전기와 수도세 등 사용료를 포함해서 월세 20만원을 내고 친구와 자취를 한다, 3~4만 원짜리 전화카드를 사고, 아침과 쉬는 날 식사를 비롯한 식비로 7만 원가량, 용돈으로 10만 원 정도 쓴다. 몇 년 동안 남는 돈은 모두 고향에 다 부쳐서 가족들이 생활하였고, 연수비용으로 꾼 돈도 다 갚았다.  

  지금 k는 한국에 사는 것이 매우 힘들다. 한국정부가 고용허가제를 실시하면서 4년 이상 된 사람은 강제로 출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k는 e9비자를 취득하지 못한 불법체류자로서 일자리가 없어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업주도 한국말을 잘하고 성실하고 일도 능숙하게 처리해내는 k를 계속 쓰고 싶지만,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면 벌금을 내야 하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채용을 기피하고 있다. 일자리가 나올 때도 있는데 그건 새벽 1시나 두시까지 일하는 곳이라 감당하기 어려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k는 아들이 보고 싶어 집으로 가고 싶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k가 벌어 보낸 돈은 친정과 시집에서 다 쓰고, 모아놓은 것이 없어 돌아가더라도 살 일이 막막하다. 몸이 아픈 남편보고 들어가도 되겠냐고 물으면 ‘네가 알아서 해라’라며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k가 돌아오는 것보다 돈을 벌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일 게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 아들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그녀의 마음은 고향에 가 있다. 한 두 달이라도 돈을 더 벌어 작은 돈이라도 갖고 가고 싶은데, 언제까지 일자리 나오기 기다릴 수 도 없고….  k는 한국에서 언어문제로, 인종편견문제로 당한 고통보다  돌아갈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금이 더 고통스럽다.

아시아의 여성들이 다른 나라로 이주노동을 떠나는 것은 물론 나라가 가난하고, 가정이 빈곤해서다. 때로는 새로운 사람을 향한 욕구에서 이주노동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자기 나라에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고향을 멀리 하고 다른 나라에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처음에 떠날 때는 길게 잡아 5년, 그동안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돈을 모으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 가게를 얻어 장사를 하든지, 조그만 사업을 하나 할 수 있으려니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와보면 처음 생각처럼 돈이 모아지지 않는다. 한국에 나오기 위한 브로커 비용을 갚아야 하고, 또 집의 식구들이 먹고 살 것이 없으니까 생활비를 모내고, 자기 용돈 조금 쓰고. 브로커 비용을  갚고 이제는 저축을 해야지 하는데, “집에서 아이가 아프다”, “어머니가 아프다”, “그러니 돈을 보내라” 재촉하고…. 고향 집에서는 보낸 돈을 집을 짓고 가전제품 사고, 생활비로 쓰고. 그 생활비도 대부분의 아시아 나라들은 여전히 대가족제라 친정식구와 시집식구들이 다 이렇게 보낸 돈만 바라보고 사니…  한국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은 모래알처럼 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 버린다. 그래서 이들이 귀국 하는 게 쉽지 않다. 큰마음 먹고 귀국을 할 경우, 처음 한두 달은 환영을 받지만, 돌아갈 때 가져간 돈이 다 떨어지면, 가족들은 자기 딸이나 부인이 다시 외국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기를 바라며 압력을 넣는다. 결국 이들은 다시 이주노동을 떠날 수밖에 없다. 이주의 악순환이 시작되고, 여성의 끝없는 이주가 계속된다.  

   또 다른 심각한 과제는 가정 해체의 문제다. 이주노동을 떠나는 여성들은 대부분 한국에 올 때 어린 자식을 두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3년, 5년 아이들이 엄마를 떨어져 있다 보니, 엄마 얼굴도 잊어버리고 아예 엄마의 존재 자체도 기억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거리가 멀면 정도 멀어진다던가? 남편과 장기간 떨어져 있다 보니 남편의 애정도 식고, 부인에 대한 그리움 보다는 돈을 기다리게 되고, 부인이 돌아갈 의사를 밝혀도 반갑지가 않다. 부인이 돌아오면 부치는 돈이 없어 편한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다처제 문화에서 사는 남자는 심지어 부인이 뼈 빠지게 벌어 부치는 돈으로 다른 부인을 얻는 경우도 생겨난다. 집안의 가난을 구하기 위해 이주노동을 떠났는데, 가족해체 위기에 부딪친다.    

   이주의 악순환의 고리를 보노라니, 문득 대학 시절 본 “도망자”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아내 살해범으로 몰려 쫒기면서 진짜 범인을 찾기 위해 끝없는 방황을 하는 도망자 킴볼의 이야기다. 끝없이 쫒기는 킴볼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드라마는 언제나 이렇게 끝맺음을 하였다. “킴볼의 도망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주노동을 떠났으나 집에 돌아가 정착을 하지 못하고 끝없이 이주를 계속해야 하는 아시아의 여성들의 삶, 과연 그 악순환은 언제 끝날 것인가? 어떻게 누가 그 고리를 끊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