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하는 한국에서의 삶

베이글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돈을 벌기 위하여 한국에 온지 5년이 되었다.

고향에는 남편과 두 딸이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처음 서울에 도착하여 메리야스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는데 기숙사가 없어 방을 얻어 있었다. 공장에서는 하루 한끼의 식사만 제공되었다.  55만원의 낮은 임금으로 방값과 식비를 제하고 나면 고향에 부칠 돈이 얼마 남지 않아 70만원을 주는 공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공장에서는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긴 시간동안 일을 시키면서도 근무 초과수당을 주지 않았다.  그곳에서 2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후 남편이 일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 왔다.  그는 부산으로 가게 되어 함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석달 후 남편은 작업중에 등에 골절상을 입게 되었고 보상 한푼 받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베이글과 남편은 안산으로와서 함께 지내면서 새로운 일터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1년 반을 일할 수 있었고 그 이후 천안과 군산에서 공장을 다니며 돈을 벌었다.  베이글은 무리하게 일하면서 허리에 디스크가 와서 건강이 안 좋았으며, 남편도 계속 허리가 아파 고통스러워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난 2003년 12월 베이글은 허리가 몹시 아파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남편이 병원으로 데리고 갔을 때 수술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둘이 살면서 고향에 아이들과 부모님을 위해 생활비를 보내야 했던 그들은 손에 현금이 없었다.  친구들에게 돈을 꾸어 170만원이나 되는 수술비를 감당해야했다.  그러나 수술후에도 계속 병원에 다니며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다. 베이글이 아파 일할 수 없으므로 남편 혼자 돈을 벌어야 했는데 치료비가 계속들어가 아프지만 재활치료를 그만두고 일해야 했다.  병원비 때문에 진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이 허리를 도저히 쓸 수 없을 정도로 아파했다. 남편도 수술해야했다.  이 두 부부는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워했고 금전적인 문제로 마음 고생을 해야했다.  어느날 친구를 통해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에 대하여 알게되었고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 곳에는 남성쉼터가 있었고 또한 이주여성인권센터 여성쉼터가 가까이에 있었다.  베이글은 남편과 함께 여성쉼터와 남성쉼터로 나누어 들어가 생활하게 되었다.  가까이에 있으므로 낮에는 만날 수 있었다.  

  그 센터에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여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 2주간 입원하여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 후에 남편도 같은 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게되었다.  베이글은 허리가 아직 다 치유되지 않았지만 남편을 간호해야 했다.  그래서 허리가 계속 아프면서도 남편간호하느라 병원에 다시 들어가야 했다.  남편의 수술이 성공적이었는데 남편은 계속 쉼터에서 쉬면서 재활치료를 받게되었다.  베이글은 돈을 빨리 벌어야 빚진 것을 갚고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아직 허리가 좀 아프지만 취직하기 위하여 친구집에 가서 지내게 되었다.  빨리 돈을 벌어 빚을 갚고 고향에 돌아가 5년동안 보지 못했던 아이들과 부모님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면서 열심히 일자리를 알아보는데 한국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쉽게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남편은 아직도 아프다며 남성쉼터에 있다.  

   하루속히 남편과 아이들을 만나서 함께 오손 도손 살아갈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일자리를 알아보고 다닌다.

-사진으로 보는 이주여성 삶이야기 ‘꿈의 나라에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