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시집 온 자넷 실루나씨
살림집이 늘어서 있는 아차산 역 근처 골목길. “안녕하세요. 심심해서 나와 있었어요”라며 초등학교 아이처럼 또박또박 얘기하는 그녀. 아직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은 자넷 실루나씨다. 함께 나온 어린 두 딸은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인사해야지”라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한국 엄마다.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지 어느덧 7년을 넘어섰다.
한국에 시집오기까지
필리핀 키키 섬에서 8남매 중에 셋째로 태어났다. 필리핀 북부에 위치한 키키 섬은 농사가 생계수단인 시골이다. 영어권이 아닌 까타로그어권으로(?) 도시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가난하고 형제들도 많아서 중학교까지만 다녔어요. 한국에 오기 전까지 쭉 방직공장에서 일을 했어요.” 학업보다도 먹고 살기 바빴던 그녀는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한국을 전혀 몰랐단다.
남편 00씨와는 25살 때 통일교를 통해서 만났다. 통일교는 서로 다른 인종들이 모여서 세계 최대 규모의 합동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루나 씨 가정이 한 예다. 남편은 필리핀에 와서 만난 실루나 씨에게 직접 청혼을 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 했지만 그녀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0월 0일, 필리핀 고향집에서 식을 올렸다. 다음 날 남편은 서울의 직장 때문에 한국으로 먼저 떠났다. 함께 오지 못한 실루나 씨에게 “missing you”라는 연애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삼겹살이 가장 맛있어요
한국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처음에는 필리핀 시골처녀에게 맵고 짠 한국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지금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잘 해요. 김치도 만들 수 있어요”라며 신이 난 듯 자랑을 늘어놓는다. 남편과 함께 살기 전, 교회에서 유상으로 제공하는 3개월 과정의 교육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교육 기간 동안 배운 것은 한국 요리, 한국 예절, 한국말 등 한국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한국 생활에 적응해 갈 즈음 이들 부부에게 어여쁜 두 딸이 생겼다. 6살 난 희정이와 4살 난 은하이다. 6살 난 은하는 엄마를 쏙 빼닮았다. “엄마, 그게 아냐. 이렇게 하는 거야”라며 발음 교정을 해주는 희정이와 은하. 한국에서 태어나고 줄곧 자란 두 딸은 아직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은 실루나 씨에게 좋은 선생님이다. 그녀는 이제 동사무소에서 민원도 접수한다. 매주 한번 자원봉사로 오는 한국어 선생님과 딸들 덕분이다. “숙제도 잘 해 오세요. 매일 꾸준하게 하기가 힘들 텐데 잘 따라 와주어 즐겁게 하고 있어요. 벌써 노트도 두 권 째인 걸요.” 박정희 선생님은 한글로 가득 찬 노트를 보여준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선생님은 실루나 씨에게 한국어와 문화를 가르치며, 가정문제가 생기면 상담도 하고, 국제결혼 가정의 전반적인 생활에 도움을 주고 있다.
“시머니(시어머니)가 안 계셔서 그다지 힘들지 않아요”라며 결혼 생활 얘기를 시작한다. 그녀에겐 다른 가정들처럼 시집살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다. 당장 높임말을 써야 하는 부담감에서도 자유롭다. “남편이 넘버원이에요”라며 남편 자랑도 잊지 않는다. “새벽에 회사 나가는 남편을 못 봐요. 제가 아침잠이 많거든요. 내가 일어나려고 하면 남편은 괜찮다고 계속 자라고 해요.” 회사를 다녀볼까 하는 그에게 남편은 일보다 애들과 집에서 보내는 것을 권했다. 남편은 아직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부인을 위해 휴일이 되면 그녀 대신 아이들 유치원에 들른다.
저처럼 행복하진 만은 않아요
국제결혼 가정이 모두 행복하지만은 않다. 친구들 중에 캐롤 씨가 가장 힘들단다. 그녀는 필리핀에서 대학을 나온 소위 엘리트 출신이다. 하지만 한국 남편은 중학교 졸업장이 전부다. 권위적인 남편과 잘난 척 하는 부인, 둘은 항상 서로가 불만이다. 시집살이도 만만치 않다. 샤샤 씨는 종종 “어머니, 밥 먹어”라고 말한다. 공손하게 말하기 위해서 끝에 ‘요’를 붙인다는 한국어 교육을 받지만, 쉽지가 않다. 전라도의 한 시골에 사는 또 다른 친구는 태어나서 한 번도 농사를 지어 본적이 없다. 가족들은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는단다. 실수를 할 때마다 시어머님의 잔소리와 남편의 못마땅한 눈초리에 맘고생이 심하다. 통일교에서 제공하는 교육도 돈이 없다는 이유로 1달밖에 받지 못했다. 한국말도 못하고, 친구도 없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실로나 씨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녀는 서울지역에 사는 필리핀 친구들과는 자주 만난다. 원래 활달한 성격으로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서울지역 국제결혼 모임에서 회장을 맡을 정도다. 정작 아랫집, 옆집 아주머니들과는 아무 말을 못 한다. “불편해요. 그냥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만 해요. 집에 와서는 ‘이 거 하지마라. 저 거 하지마라.’ 잔소리만 하고 가요”라며 시큰둥해 한다.
필리핀보다 한국이 더 좋은 그녀
한국에 온지 7년, 필리핀에는 세 번 갔었다. “필리핀보다 한국이 더 좋아요. 고향 가는데 돈도 많이 들고, 갈 때 선물도 사가야 되잖아요.” 그 동안 한국형 짠돌이 아줌마가 다 됐다. 그녀는 딸들과 놀이공원에 가고 싶단다. “TV에 나오는데 재밌어 보였어요. 그런데 표 값도 비싸고, 가는 길도 힘들고 해서 아직 못 가봤어요.” 인터뷰 도중에도 말괄량이 딸들은 엄마 옆을 떠날 줄 모른다. 엄마 무릎에도 앉아 보고, 엄마 얼굴도 만져본다. 인터뷰가 거의 끝날 무렵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오자 모두 현관을 향해 간다.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실루나 씨, 행복하게 잘 살죠?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필리핀이나 태국 베트남 등의 제3세계 여성들의 국제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켜요.” 박정희 선생님은 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괜히 의심을 받는 것이 안타깝다는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문 밖까지 나와서 “안녕히 가세요”라며 인사하던 실루나 씨. 돈이 많은 것보다도 행복한 가정이 더 좋다던 그녀, 그의 밝은 미소에 행복한 가정이 보였다.
-디지털 이화월드의 웹진 http://www.ewhadew.com 에 올라온 우리센터에서 한글교육을 받고 있는 자넷씨를 인터뷰 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