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방문자의 편지
권기호
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활동하고 계신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사법연수원생 권기호입니다. 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일주일동안 봉사활동을 끝내고, 이제 다른 곳으로 옮겨서 여러분께 글을 씁니다. 제가 이주여성인권센터를 알게 된 것은 저에게 특별한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사법연수원 법률봉사연수 2주를 마치고 좀 더 봉사활동을 싶었던 저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사무국장님께 괜찮은 단체를 소개시켜 줄 것을 부탁하게 되었고, 박선희 국장님께서는 여러 군데(?) 알아보신 결과 바로 옆(!) 사무실이 가장 좋겠다고 하셔서 소개시켜 주신 단체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였습니다.
저로서는 노동운동이나 여성운동 쪽 일을 하는 단체에서 자원봉사활동하고 싶었던지라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요. 서로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이주여성인권센터 최진영 상담실장님의 “여성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라는 첫 물음에는 퍽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 그냥 여성운동에 대해 일고 싶었고, 또 인류의 절반이 여자이니 여성운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대답은 하였지만, 사실 그때까지도 여성단체에 대해 알고 싶다는 내 생각은 막연한 호기심이었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못했었습니다. 제 말을 들은 한대표님과 최실장님께서는 “그럼 잘못 찾아왔을 수도 있는데. 우리 단체 보다는 일반 여성단체로 가야 할 것 같은데.”라고 걱정스러워 하셨지요. 그래도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면, 맡기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주여성들을 위한 법률상담메뉴얼 작성을 위한 기초자료 목록’을 작성하는 것과 여력이 되면 ‘이주여성과 관련된 국제법’의 한국에서의 시행여부를 조사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에 대한 유엔 협약’을 비롯해서 한대표님이 줄줄이 읊으시는 국제법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저로서 망설여진 것도 사실입니다. “어차피 법계로 나가려면 일반법에서 가르치는 것 말고 이 기회에 이런 국제법도 있다는 걸 알아두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해보는 것은 어떠냐?”하는 제안이 그럴듯해서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제가 우선 시작한 일은 상담실무자들이 전화 상담이나 면접 상담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법률적 문제들에 관한 상담매뉴얼 작성이었지요. 주로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문제시 된 부분은, 국적, 이혼, 비자 문제였습니다. 실무자들이 상담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체류 연장 신청할 때의 제출할 서류는 무엇인가, 절차는 어떠한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기존의 상담파일들을 보면서 거기에 나타난 ‘절차’들을 요약 정리하는 작업이 주된 것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작업들이 불친절한 출입국관리무소나 법무부 공무원들을 상대하며 ‘절차’들을 직접 조사한 상담실장과 공익변호활동으로 ‘공감’에서 파견된 소라미 변호사에 의해 진행되어 있었기에 제가 한 일은 단순한 정리 작업이었습니다만, 상담파일을 보면서 이주여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매 맞은 여성, 외도하는 남편에게 구박당하고 모욕당한 이야기,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는 경우, 버젓이 부인이 같이 살고 있는데도 가출신고를 해서 고통 받는 경우 등, 이주여성들의 다난한 삶의 이야기가 그 상담기록에 드러나 있었습니다. 이런 파일들을 보면서 이들에게 적용되는 우리나라 법 현실이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원래는 2주 기간을 잡고 봉사활동 하겠다고 말씀드렸으나 개인적 사정으로 일주일 밖에 도와드리지 못하여 지금 생각해도 송구스럽고, 오히려 폐를 끼친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애초 여성운동에 대해 알고 싶다는 제 바람이 충족되지는 못했지만, 이주여성운동을 하는 사무실에서 여성단체의 분위기를 접할 수 있었고, 상담파일을 통해 이주여성의 문제를 부분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기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주일동안 센터 여러분들의 따듯한 배려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것도 여성단체의 일면이겠지요. 일요일에 작업을 마치는 관계로 미처 작별인사를 드리지 못한 센터의 다른 선생님들께 이 글로 작별인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센터의 여러 선생님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2005.7.27.
권기호님은 사법연수생 36기로 우리센터에서 일주일동안 자원 활동을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