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의 그녀가 계속 행복하도록
                                                                            
                                                                       박찬숙(전북여성농민회연합 회장)

  친구집에서 가져온 김민기의 ‘백구’ 그림책을 정안(까오띠 베뜨를 그렇게 부른다)이 한줄씩 낭독한다. 한줄 읽고 나서 그림 보며 손짓발짓 보태 설명해주고, 또 다음 줄…….양희은이 부른 ‘백구’노래는 늘 콧가를 시큰거리게 만들었으나,  오늘은 4절까지 그 구구절절한 사연의 노래가사를, 나의 베트남 각시와 함께 다 읽고 나니 1시간 반이 후딱 흘러버렸고, 콧가가 시큰거리기는 커녕 목구멍이 뻐걱거렸다. 한글교재로 공부할 때보다 집중은 잘했지만, 이야기 흐름이 끊길까봐 쉬지 않고 해서 그런지 꽤나 힘들었나 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힘든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하고 내쉰다. 하긴 곧 아기를 낳을 배불뜨기인데다 나른한 봄날, 낮잠자기 딱 좋은 오후 시간이니.

  “이 책 잘 가지고 있어요, 나중에 노래도 가르쳐줄께요“ 하니 그림책을 가슴에 안고 흔들어대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한다.  ”재미있어요, 슬퍼요, 그림 예뻐요“를 연발하며 책을 거푸 쓰다듬는다. 내가 그녀의 말투를 흉내내며 ”노래는 더 예뻐요, 아, 기인 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음음음음—–“ 이번엔 양희은 흉내를 내며 폼을 잡는다. 물론 그녀야 모르겠지만. 백구 그 노랠 가르쳐주려면, 그녀가 잘 따라 부를 수 있게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까? 그래도 ‘학교종’ ‘산토끼’ ‘송아지’, 잘되지 않는 리을 발음에 끙끙대며 동요들을 열심히 불러재끼니 그때가 오긴 하겠지?

  정안은 북부 베트남의 작은 도시 출신으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대학에 가고 싶었으나 집에 돈이 없어서 대학에 못갔다고 했다. 스므살 어린 나이임에도 오빠의 권유로 국제결혼의 길을 택했다. 한국하고도 순창, 작은 농촌지역에 시집온 지 딱 1년이다. 그리고 6월말이면 아기엄마가 된다. 무엇이 제일 힘드냐고 했더니 엄마가 제일 보고 싶단다. 아기낳고 6개월쯤 되는 겨울에, 친정 베트남에 다녀오기로 신랑과 약속을 했단다.  그러나 한달후쯤 크게 실망한 표정으로 “베트남 못가요, 4년….가요,” 신랑 얘기로는 아직 한국사람이 아닌 베트남 국적이라 1년짜리 체류비자이고 베트남에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자면, 한국 비자를 새로 신청해야만 해서 시일이 걸리고 복잡하다는 이야기다. 정안의 등을 다독이며 위로한다. 아기와 가족 사진 예쁘게 찍어서 친정엄마께 보내드리라고….

  그 일이 있은 후, 두 달이 지난 어느날 뉴스에서 국제결혼이주여성에게 F-2비자가 아닌 의료혜택과 한국입출국이 가능한 장기취업비자로 바꿔준다는 내용을 들었다. “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중간보고서와 함께 정부에 제안을 한다더니 그게 된거로구나!”  당연히 제일 먼저 김안과 그 신랑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물론 김안의 신랑은 나와 동시에 TV를 보고 있었음인지 벌써 알고 있다며 걱정해줘서 고맙단다.

  정안의 신랑은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못간 농촌노총각으로, 결국 국제결혼을 결심하고 결혼상담소를 통해 갓 스믈의 베트남 각시를 데려왔다. 농촌노총각이 동남아시아 여성과 국제결혼을 하는 일은 최근 1-2년 동안 하도 많아져서, 이젠 눈총받거나 공연히 감추고 주눅들지 않아도 되지만, 그것은 최근의 일일뿐 바로 제작년까지만해도 사정은 달랐다. 국제결혼을 해서 말도 안 통하는 까무잡잡한 이국의 여성을 각시로 들였다는 사실은 당연히 그 가족을 폐쇄적으로 만들게 된다. 장가들어 한시름 놓긴  했어도, 말이 안통해 답답한 남편과 시어머니는, 돈주고 각시를 사왔다며 쑤군대는 동네사람들과 신기한 눈으로 힐끔거리는 읍내 장터 사람들의 눈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그러나 정안의 신랑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도 현명한 선택을 하려 애썼다. 비용문제에 집착하기보다는  고졸 이상 학력이 되며, 인물보다는 얼굴에 흐르는 기운이나 표정, 성격을 살폈다고 했다.

  여성단체 일각에서는 최근 어느 농민단체가 베트남과 국제결혼을 알선하는 일에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결국 국제인신매매를 드러내놓고 공식화하는 것이 아니냐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그 농민단체를 뻔히 알고 있는 나는, 순간 쥐구멍을 찾아 뒷벽을 두리번거린다. 맞는 이야기다.  정당한 반박의 근거를 찾아낼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우려에  동참하여 그 농민단체에 손가락질을 해댈 수는 없었다.
  없는 농촌형편에 빚까지 내어 남에 나라에서 각시를 사오고 싶은 농민이 어디에 있으랴? 무슨 대안이 있는가? 시집오려는 여자가 도무지 없는 촌구석에서 그대로 앉아 총각귀신으로 늙어가라는 결론으로만 들리니 그것은 너무도 가혹하지 않은가?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의 시대에 우리나라 농촌총각은 장가를 못가고, 세계화시대에 더욱더 가난해진 동남아시아 농촌의 가난한 농부는 딸  덕에 살림 좀 펴보겠다고, 자신의 딸들을 대도시 부자 노인의 첩으로 팔거나, 국제결혼시장에 신부감이란 상품으로 진열대에 올린다.

  일본의 감귤농업은 한국의 감귤 때문에 망했고, 한국의 감귤농업은 미국의 오렌지 때문에 몰락했다.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시장의 확장을 위해 중국과 미국의 쌀을 수입해 들여와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정부가 목청을 높이는 동안, 세계화의 그늘은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들에게 어쩔 수 없으니 당신들이 희생하라며  족쇄를 채웠다. 올해로 쌀수입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WTO의 마지막 협상이 끝나고 나면, 밀려들어 올 중국과 미국의 값싼 수입쌀 앞에   우리의 농업, 농민들은 과연 얼마나 오래 버텨낼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나의 생계이자 직업인 농업의 미래를 점쳐볼 수가 없다. 그래도 우리나라 농민들은 트럭 한대쯤은 굴리고 삼시 세 때, 끼니 걱정은 안한다니 가난한 동남아시아 농민의 딸들은 감지덕지한다.

  우리나라 귀신 중 제일 무섭고 위력적인 귀신이 처녀귀신이다. 총각귀신이 위력적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쪽팔릴 뿐이다. 그래서인가? 처녀귀신 면해야 한다는 말은 드물어도, 총각귀신 면해야 한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흔하다. 우리의 농촌총각이, 말 많고, 탈 많고, 돈 많이 드는 국제결혼을 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간절히 바래보지만, 눈앞의 현실은 세명 중, 한 명이 국제결혼을 한다. 우리농촌의 후계는 앞으로 어쩔 수 없이 러시아를 포함한 동남아 여성이 30%, 아니 절반 이상을 감당할지도 모르겠다.  깊게 드리워진 세계화의 어둠이 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의 농촌을 몰락시켜가는 한, 물건짝처럼 팔려나가는 아시아 곳곳의 가난한 딸들의 결혼풍속도는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다. 한국농촌이 동남 아시아화될 지도 모르겠다는 것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기분 나빠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정안은 지금 행복하다. 정안만이 아니고 투이(이웃의 베트남여성)도 행복하다. 한글교사를 하는 중, 전북대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실시한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복지실태와 요구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수행하였다, 대상자의 모국어로 된 설문지여서 정안과 투이가 스스로 작성하는 동안, 곁에서 여러가지 사실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가난한 동남아시아 농촌의 딸로 도시의 부자노인의 첩으로 팔려가지 않은 것은 분명 그녀들의 행운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고향에 비해 좋은 환경, 좋은 옷, 풍족한 밥상이라는 기본 의식주의 충족에 우선 만족스럽다. 이것은 막연한 나의 추측이 아니다. 신혼이라서 그럴까?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매우 행복하다. 그렇다면 한국에 오게 된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그녀들의 이러한 행복이 당분간이 아니라 쭉 지속될 수 있도록만 된다면 인권의 문제는 해답이 있는 것 아닌가?

  혹여 말이 어눌한 이주여성이라 하여 차별당하고 무시당하지 않도록, 안간답고 가치있는 주체적인 여성의 삶으로, 농촌지역사회의 미래를 감당해나갈 진정한 구성원으로 적응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 아닌가?  여성농민조직건설 초기에, 어성농민 대중이 남편의 부속 노동이 아닌 당당한 농업주체로서, 차별당하지 않는 평등한 인격으로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 당당히 서게 하기 위해, 한사람 한사람 이웃의 여성농민을 만나고 교육하고 조직화하였듯이, 이제 나는 내 이웃의 젊은 그녀들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대안은 전지구적으로 사고하더라도 실천은 내지역의 한사람으로부터 라는 말이 있지 아니한가?

  정안에게 마지막 교육을 하던 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한국말공부 열심히 해서 남편과 열심히 대화하고, 서로를 잘 이해하고 아껴주는 부부가 되라고 , 아기에게 정확한 발음으로 한국말을 가르쳐줄 수 있는 야무진 엄마가 되라고, 그리고 이후에 너처럼 시집오는 베트남의 각시에게,  베트남 말 한마디도 몰라서 쩔쩔매며 가르차던 나처럼 말고, 정말 훌륭한 한국어선생님이 되어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