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너는 한국의 아기엄마야

                                                                                 박찬숙(전북여성농민회연합 회장)

  한글도우미 8회차를 끝내고 9회차를 하기로 한 날이던가? 정안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오늘 안와요?” 한다. 왜 안 오냔 말인가?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아, 오늘 오지 말라는 소리구나, 깨닫는다. 한국어교사를 하려면 학생이 메주처럼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내공이 쌓여야 하는 법, “김안, 어디 가요?” 하고 물으니 “신랑 같이 시장 가요, 병원가요” 한다.

  다음날 정안에게 칭찬을 퍼부어주었다. 남편 이외의 한국 사람에게 하는 최초의 전화였던 것이다. 그 전에도 걸려오는 전화는 제법 잘 받았다. 상대방의 말은 못 알아들어도 무조건 “신랑 없어요, 논에 갔어요, 다시 전화해요, 핸폰번호000,,,전화해요” 자기 스스로 남에게 첫 전화를 한 용기가 대단하지 아니한가? 마구마구 칭찬을 해준 후에 말을 고쳐준다. “선생님 오늘 오지 마세요. 남편하고 같이 시장에 가요, 병원에도 가요” 라고. 그리고 내가 안 받았으면 어떻게 할거였는지 물었다. “박찬숙 선생님 바꿔주세요” 백점짜리 학생이다.

  한글 10회차를 남겨두고 아기엄마가 된 정안의 츨산도우미를 해주기로 했다. 아기엄마가 된 그녀는 갑자기 수다스러워졌다. 어디서 말이 갑자기 튀어나오고 있는걸까? 아기 낳기전 어느날 한글교육하러 갔을 때 앉아있기가 괴로운 표정하길래 아프냐고 물었더니 “배가 아파요, 여기 아파요”, 했었다. 그저 그런 정도였다. 그런데 아기낳을 때 많이 아팠냐고 물으니 “아파서 죽었어, 왜 그리 많이 아파서 나 죽었어, 의사선생님 하나,둘, 셋 하는데 나 아파 죽었어” 짧게 물었는데 길게 대답한다. 다시 고쳐준다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왜 그리 많이 아픈지 아파서 혼났어요“  

  한글교육을 할 때는 내가 주로 물었고 그녀는 짧게 대답하는 역할이었었다. 학생과 선생의 관계여서 그랬을까? 그러나 아기를 낳고 나니 궁금한 것, 말하고 싶은 것이 봇물터지듯 했다. “아기 배꼽 피나요, 큰일나요, 아기 아파요, 문(물) 들어가면 안돼, 신랑이 아기이름요, 배꼽, 배아파, 배고파, 배신자… 그중에 한대요 깔깔깔. 우리 신랑 아주 웃겨요” (정안은 배신자의 뜻을 알고나 웃는걸까?) “아기 추워요, 선풍기 안돼요, 에어컨 안돼요”. 선생님 우리 아기 예뻐요? 코가 팍 퍼졌어,나 닮았어, 안 예뻐요. 머리는 기쭉해요,,,,김동혁(아기이름), 엄마 닮으면 안돼, 안 이뻐, 아빠 닮어야 돼“, ”베트남 학교 가면 학교에서 연필, 노트 책, 공짜로 줘요, 한국도 공짜로 줘요?”(이젠 학교 보낼 걱정까지 한다.) 그녀는 길게 말하고 나는 짧게 대답한다. ”바덩어니, 투이 언제 애기나요? 바덩어닌 음 아직도 곤부해요?“(이웃면에 정안보다 두 살 많은 베트남각시 투이도 한글교육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다시 말해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 발음 정확히 하고 천천히…바덩 뭐라고? 바덩언니? 으응, 팔덕의 투이 언니 아직도 공부 하냐구?“ “선생님, 청소 쪼금 하고 여기 누워요” (그래 정안, 너는 한국의 아기엄마가 되었구나)

  이상했다. 한글교육을 할 때는 생활이야기를 해도 그리 활발히 말하는 편은 아니었으며 그리고 거의 두음절의 문장 뿐이었었다. 교재 중심으로 진행하다보니 낭독은 잘하는데 제대로 이해된 것인지 확인이 잘 안되었고 어려워했었다. 은,는, 을,를의 구분이나 각종 어미 조사들의 변화가 어지럽고 두려움을 주었던 것 같다. 틀려도 좋으니 자꾸 말하고 물어보라고 해도 대답은 늘 짧았었다 그런데 교재로부터의 감시가 없어서일까? 어미나 조사는 생략하거나 좀 틀려도 말이 훨씬 자유롭다. 그리고 전에 없던 아기가 새로 생기니 부부간에 자연히 관심꺼리, 이야기꺼리가 많아지고 절실한 소통의 필요성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러한 동기가 정안을 수다스럽게 만들었음에 틀림없다. 남편에게 부탁을 한다. 부부간에 아무리 이심전심이라 해도 메주같은 김안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착한 남편으로 끝내지 말고, 꼭 발음을 정확하게 고쳐주고 틀리게 말하는 것은 그 즉시 고쳐서 다시 말하게 하라고…

  국제결혼여성의 남편들이 모두 정안의 남편만큼만 노력한다면 어쩌면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을텐데, 그러나 다른  남편들은  한 1-2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어느날 갑자기 자기 각시가 한국사람처럼 저절로 줄줄 말이 되서 나오는 것을 기대하는 듯하다. 팔덕의 투이의 가족들이 그러하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왔는데 유등의 각시는 말을 잘한다는데 우리 며느리는 아직도 입을 못 뗀다고 시어머니는 걱정이 태산이다. 그 가족은 걱정과 조바심은 냈지만 선생님이 되어 말을 가르치려는 노력을 그 누구도  하지 못했다.

원래 말없고 조용한 성격의 냅은 그저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였고, 지금의 생활에 대단히 만족하여서 부족한 것도 필요한 것도 힘든 것도 없다. 자기의 고향에서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였다니,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저 베트남에서의 생활에 비해 넘치는 풍족함에 감사할 뿐인 듯하다. 그런 투이도 아기엄마가 되면 자신의 아기에 대해 궁금한 것, 걱정되는 것이 분명 생겨날 것이다. 소통에 대한 절실한 욕구가 생겨났을 때, 누군가 곁에서 조금만 도와준다면 “네” 또는 고개를 살래살래 젖는 것 말고, 시키지 않아도 제 스스로 몇 단어 , 두 음절의 문장쯤은  충분히 엮어낼 것이다. 가을 농번기 막바지인 11월 초가 되면 투이도 아기엄마가 된다.

  초여름날 농번기, 혼자 모 심는 남편을 내팽개치고 집에 들어와 작업복 벗어던지고 씻고 옷갈아 입고 다시 땀을 줄줄 빼가며 1시간반의 한글교육을 위해 가정방문을 나서던 일이 너무도 힘들어서, 농번기에는 절대 할 일이 못되는구나 생각했건만  그 생각은 언제 어디서  실종된 것인지, 나는  말이 안통해 걱정이 태산이라는 냅의 시어머니에게 얼마전 덜컥 산후도우미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