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인권센터를 통해 9월 24일부터 28일까지 서울에서 실시한 이주여성 국제포럼에 자원활동가로 참가를 했다. 포럼 일정은 매우 빡빡했지만, 이주여성들이 모여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페스티벌, 아시아의 이주여성활동가와 대표들이 모여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주의 여성화에 대한 실태 보고와 대책을 논의하는 워크숍등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 나는 영어 통역과 사무 보조를 하였는데 대회 참가를 통해 많은 경험과 문제들을 인지할 수 있었다.
낯설었던 주제: 이주의 여성화
포럼에 참가하기 전까지 나에게 있어 ‘여성’, ‘이주 노동자’와 같은 단어들은 상당히 낯선 것이었다. 훗날 국제 NGO에서 종사하길 희망하면서도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던 ‘이주여성’보다는 다른 분야에 관련해 활동하고 싶었다. 때문에 ‘이주의 여성화와 이주여성들의 인권’을 다룬 이번 국제포럼이 내가 그 어떤 형태로든 참여한 최초의 포럼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늘 나이와 학력, 경험 등의 부족에 시달리던 나이기에, 이번 자원 활동과 같은 기회는 유달리 특별하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4박 5일간의 힘듦과 지침, 그리고 그보다 컸던 보람이 이주여성에 관한 측면들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 역시 되돌아볼 수 있도록 일깨워준 시간이었음을 알고 있다. 17살이라는 겉모습으로 나를 재단하는 세상의 편견과 틀을 넘어 배우고, 느끼고, 변화하기 위해 오랜만에 서울을 찾았다.
국경과 계급을 뛰어넘는 용기가 필요
이번 포럼의 취지를 떠나서 ‘아시아’라는 지역 내의 많은 이들이 공통된 주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 논의하고, 나름의 결론으로 도달하려 모였다는 것 자체에 나는 큰 매력을 느꼈다. 어찌 보면 ‘여성학’ 자체가 정작 피해를 받고 있는 송출국, 혹은 제 3세계 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보다는 제 1세계 여성들의 소위 고급학문으로 작용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첫날 발표된 기조발제문의 번역작업을 하면서 알 수 있었던 이주여성의 다양한 실태들 역시 나를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기존에 내가 생각해온 여성문제가 가정 내 폭력, 직장에서의 차별대우, 남아선호사상 등이었던 반면, 이번 포럼을 통해 그를 다루는 범위와 흐름이 국제적으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국제결혼을 통한 혼인이주 이후 여성들이 겪는 인권유린과, 인신매매 등을 통한 노동력 착취 등의 문제들은 산업주의와 자본주의가 팽창함에 따라 여성문제가 한 가정이나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제 사회의 일원인 우리 모두가 풀어나가야 할 주제가 된 것이다.
그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하고 분노케 한 것은 그 누구의 보호도, 지원도 받지 못하는 힘없는 여성들의 생활조건이었다. 스스로 제 몸을 팔고, 타국에서의 결혼과 뼈 저리는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현실이 너무나 마음 아팠다. 테레사 수녀는 이 세상의 가난과 빈곤을 퇴치할 수 없는 이유는 가진 자들에 나눔의 정신이 없기 때문이라 했다. 같은 여성임에도 소외되고 잊혀져가는 이들에게, 여태껏 무관심했던 나와 사회집단이 왜 그렇게 창피했는지 모른다.
앞서 적은 것처럼 국제포럼은 처음이라,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주제발표나 전략토의 같은 회의 방식을 그려보며 내내 기대에 부풀었다. 해결책이 논의되는 과정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 포럼의 성과가 하루 빨리 여성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되기를 바랐기에 더욱 그랬다. 여성은, 도대체 몇 세기 동안이나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온 걸까. 아직도 차별이라는 억압의 벽에 부딪혀 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의 끝은 언제쯤 오는 것일까.
제 3세계 여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들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제 1세계에 더 종속되고 지배당하며,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억압받고 있다. 최근 제 1세계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에 살면서 당장에 내가 입고 있는 값싼 옷 한 벌, 가끔가다 먹는 초콜릿 등의 일상생활품목도 사실은 제 3세계 노동자들의 땀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왜 항상 잊는 걸까. 정작 이들의 고통을 머리로만 이해할 뿐 내 삶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기득권 및 사리사욕과, 경제적으로 성장한 한국인으로써의 거만함을 결코 떨쳐 버릴 수 없는 양면성을 들여다보며 나는 자괴감을 느꼈다. NGO 활동을 하며 이타적인 마음을 나누는 데 있어, 국경과 계급을 뛰어넘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자원활동가로서의 보람느껴
포럼의 내용 이외에도 나는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실무자와 자원봉사자의 일을 직접 경험하면서 NGO의 특성과 인상들이 가슴에 새롭게 와 닿았던 것이다. 주로 전체적인 틀을 총괄하는 실무자의 역할과, 보다 세세한 일들을 담당하는 자원봉사자의 역할을 통해 내가 갖고 있던 NGO에 대한 시각이 간간히 변화함을 느꼈다. 그와 더불어 업무처리능력 및 언어구사정도에 따른 역할의 차이는 내가 앞으로 이뤄내야 할 것들을 분명하게 각인시켜줬다. 개인의 능력이 발휘하는 커다란 힘을, 직접 목격한 셈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포럼기간 동안 나의 작은 도움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어서 뿌듯했다. 불과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맺어진 참가자들 간의 강한 연대와 그 속에 결속된 여성들의 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실무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우리 모두의 노력이 있었다 말하고 싶다.
자원봉사라는 일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만만하지 아니함은 육체적인 고단함이나 정신적인 힘듦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이 일은 무엇보다 내 능력과 재능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하는 겸손 되고 따뜻한 마음가짐이 우선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것에, 소유하는 것보다는 나누는 것에 행복해하라고 했다. 나로 인해 작은 도움이나마 받을 수 있는 이들을 생각해보며, 순수한 의미에서의 ‘봉사’와 ‘나눔’을 뒤로 제쳐둔 우리 사회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김민주